SAM 7.8 plus pen 이야기

나는 이미 이 블로그 글에 적은 것과 같이 주로 전자책으로 독서를 한다. 국내에 전자책을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데, 초반에는 여기저기서 한두권씩 구매를 하다가 최근에는 대부분의 책을 리디북스에서 구매를 하고 있다. 리디북스에 없는 전자책에 한해서 교보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좀 있는 정도이다. 리디북스에 대략 3천권 가까운 책이 있으니 당연히 주력 기기는 리디페이퍼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전화기나 아이패드에서는 적은 수의 만화책을 보는 정도이고 아마존에서 구매하거나 무료일 때 받아놓은 영어 책을 읽는 정도였다. (사실 영어 책을 읽기 위해서 킨들도 하나 가지고 있다. 킨들은 아마존 책을 읽는데는 최고이지만 아마존을 벗어나면 의미가 별로 없다)

리디페이퍼는 6인치여서 좀 아쉬움이 있었고 리디페이퍼 프로는 7.8인치여서 훨씬 나은 독서 환경이었다. 다만 가장 아쉬운 점은 리디페이퍼는 루팅을 하지 않는 한 다른 서점의 책을 이용할 수 없고, 루팅을 하더라도 다른 서점의 앱들이 그렇게 원활하게 구동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난 1월에 미국 출장을 갔을 때 엄청 붐비는 컨퍼런스 미팅 장소에서 봤던 전자책 기기는 어떤 제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펜으로 쓰는 것이 가능해서 굉장히 마음에 들어 보였었다. 아마도 보위에나 오닉스 기기 중에서 펜을 지원하는 기종이었겠지. 그건 아이패드 크기였으니 10인치 정도 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런 크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펜으로 필기까지 되는 이북 리더는 가격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게 아쉬운 점이다.

결국 교보에서 sam 7.8 plus pen이라는 제품이 나왔을 때, 이게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온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이 기기가 배송되어 있었다. 예판 때 구매를 한 것이어서 할인은 물론이고 전용 케이스나 sam 무제한 6개월 같은 혜택도 받았다. 사실 전용 케이스는 무게가 늘어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커버를 열고 닫는 것을 인지하여 켜지고 슬립모드로 들어가기 때문에 배터리를 아끼는데 도움이 되고 펜 수납도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은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 기기가 갖는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안드로이드 8.1 기반: 교보는 물론이고 리디북스와 킨들을 모두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다. 알라딘이나 예스24 책도 있기는 한데, 크레마 앱에서 제대로 구매목록을 불러오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서 지금은 쓰고 있지 않은 상태다. 서점 앱 말고도 갓피플 성경이나 영한 사전 같은 앱도 쓸 수 있는 것이 안드로이드 사용의 장점이다.
  2. 펜 사용 가능: 필기 목적으로의 사용은 기본 제공되는 메모장 정도에서만 할 수 있지만 그것만 해도 꽤 쓸만하다. 그리고 각종 서점 앱에서도 페이지 넘기기나 형광펜 같은 기능을 위해서도 펜을 쓸 수 있으니 좋다. 펜을 충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펜이 가볍다는 것도 애플 펜슬에 비해 좋은 점이다.
  3. 7.8인치 화면 크기: 이 크기는 보통의 문고판 서적을 읽는데 최적이고 휴대에 적합한 크기이다. 영어 서적을 읽을 때 킨들이 좋다는 언급을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킨들 페이퍼화이트 3세대에 비해 샘에서 읽는 킨들 책이 더 좋게 보였다. 앱의 빠릿빠릿함도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고. pdf 문서, 특히 논문을 보는데는 10인치 이상의 크기가 최적이기는 한데 논문의 경우에는 보통 텍스트만 중요한게 아니고 그림을 봐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이럴 때는 전자잉크의 흑백화면은 한계가 있다. 내 경우에는 논문은 그냥 아이패드로 읽는다.
  4. 블루투스 지원: 리모컨을 쓸 수 있다. 물리 키가 없는 단점을 어느 정도는 메워줄 수 있는 점이다.
  5. 스피커 지원: 오디오북을 쓸 수 있다. 사실 오디오북은 자차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을 때 유리한 것인데, 내 경우에는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므로 거의 쓰지 않는 기능이기는 하다. 그래도 블루투스 지원까지 되니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6. Micro SD 지원: 적지 않은 책을 구매했기 때문에 기기 자체의 용량만으로는 책을 모두 넣어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대부분의 기기처럼 micro sd 지원이 되니 책을 모두 다운로드 받아서 가지고 다닐 수 있다. 64GB 한 개 넣으면 리디북스, 킨들, 교보문고와 구입한 책들을 모두 넣어도 용량이 남는다.

단점도 없지는 않다.

  1. 물리키가 없다: 물리 키가 있다는 것이 리디페이퍼 프로 기기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있다가 없으면 그게 꽤 거슬리기는 하다. 그래도 적응 되면 좀 낫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중.
  2. 아이리버 기술지원: 사실 이게 단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리디페이퍼 기기들의 경우는 꾸준하게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기기를 관리해 주었는데 아이리버에서도 그렇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대체적으로는 걱정하는 분위기가 더 많은 듯.

전자책 기기는 책을 읽기 위한 보조 도구이다. 책 자체는 아니니 많은 돈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이패드라는 훌륭한 태블릿에 비하면 속도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한참 뒤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 잉크의 매력은 눈이 편안하다는데 있다. 책을 넘기는 속도는 아무리 빨라도 아이패드같은 엄청난 성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태블릿이나 전화기는 신경을 빼앗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하다못해 알림이나 유튜브 같은 것들이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이런 기기에서는 일정 시간 이상 책에 집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좋은 전자책 기기는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된다. 눈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책 이외의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환경은 책 자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최소한 몇 년 간은) 샘이 내 독서 생활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춘추전국이야기 1 춘추의 설계자 관중

관중의 사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경제학의 입장에 서 있다. 그것도 오늘날의 협소한 경제학이 아니라 방대한 스케일의 정치경제학이다. 관중의 사상은 유학의 사상보다 밑바닥을 훨씬 잘 이해했다.

232 페이지 (리디북스 기준)

관중은 분업과 클러스터를 통해 지식(사), 농업(농), 공업(공), 상업(상)의 생산성을 동시에 늘리자고 주장한다. 농업을 위주로 하되 공업과 상업도 국가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경제이론의 일대 전환이다. 그 이면에는 관중식의 ‘노동가치이론’이 있다. 관중은 노동생산성을 국력의 척도로 보았다. 농업을 위주로 하되 공업과 상업을 천시하지 않는 것이 관중의 이론이다. 공업은 생산성을 발달시키는 도구였으며, 상업은 물가를 조절하는 도구였다.

302 페이지 (리디북스 기준)

관중은 착하지만 당하며 사는 사람보다는 강하지만 덜 괴롭히는 사람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자 제나라의 주변국들은 관중의 관대함을 칭찬했다. 국제관계에서 그는 민족 간의 평등이 아니라 존왕양이를 주창했다. 그러자 공자는 “관중이 없었으면 중국이 다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칭찬했다. 차선을 행하면서도 이렇게 칭찬받는 것이 관중의 특징이다.

378 페이지 (리디북스 기준)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의 사상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의 사상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다양성이 최고로 발휘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와 맹자를 포함한 유가 사상이 (다른 사상들과 경쟁하며 혼합 변경되기는 했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동아시아 전체의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지만, 그 날것의 사상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의 시기에 배태된 수많은 생각들 중의 하나였으며 백가쟁명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그 사상들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기도 하는 관계였다.

이 책은 (이전에 이 시대를 다룬 대부분의 책들이 그랬듯이) 단순히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로부터 단순한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위에 언급된 것과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갖는 의미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재해석하고 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관중을 정치경제학에 기반을 둔 사상가로 본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노동가치이론이 있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이런 해석은 춘추전국시대를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 역사의 배경이 되는 중국 지역의 지리적인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지리적인 특징을 어떻게 이용하고 극복하는가가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의 이야기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곳에 살고 있지도 않고 가보지도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 부분에서 이 책이 갖는 가치가 있다. 나도 나름대로는 중국의 역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본 축에 든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처럼 각 나라들이 어떤 환경에 있었고 그 지리적인 특징이 어떤 대응을 만들어냈는지를 명확하게 풀어서 설명해 준 책은 없었다. 좀더 구체적인 측면에서는 삼국지의 제갈량이 스스로를 관중에 비교했다고 했을 때 그 의미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 책만큼 명확하게 설명해 준 책은 없었다.

모두 11권이나 되는 긴 시리즈이지만 첫 책에서부터 이렇게 설득력있는 방식으로 시작을 하니 나머지 10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나머지 10권을 모두 읽고 나면 중국의 (아니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선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1권을 모두 읽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그냥 1권만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코스모스

짧은 평: 중요한건 생각하는 방식이야!

들어가는 말

칼 세이건이 쓴 이 책은 유시민이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가져가겠다’고 했다는 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주의 광대함, 그리고 인간의 보잘것 없음, 그리고 그 인간의 위대함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태양계의 바깥쪽을 향해 우주 탐사선을 쏘아올리던 시대에, 2020년에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해 고생하고 있을거라고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우주로 가는 노력들은 충분한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서 좀처럼 뉴스에 나오는 일이 없고, 우주를 향한 위대한 도전을 아낌없이 지원하던 미국 정부 대신 테슬라의 괴짜 CEO가 상업용 우주 여행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가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관계가 없다.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이야기하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이 스스로의 한계와 약함을 깨닫게 되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가설의 장점을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것이다.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

물론 오래 전에 쓰여서인지 구체적인 부분에서 동의하기 힘든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내용들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정확하게 따지기는 힘든데, 내 전문 분야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잘못된 표현들이 꽤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100억개가 넘지만, 이 중에서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약 50종 뿐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약 몇 억개 수준이다. PubChem에는 현재 대략 1억 1100만개의 화합물 구조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무기 분자도 있으니 유기 분자의 수는 이보다 적다고 볼 수 있다.”알려진”을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으로 바꾸면 100억개는 너무 작은 숫자가 된다. 이 논문에서 C, N, O, S 그리고 할로겐 원소 17개까지만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화합물의 개수가 1664억개 정도로 보고하고 있고 (이 화합물들의 데이터베이스가 GDB-17이다), 사용 가능한 원소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숫자는 엄청나게 커지는데다가 P(인) 같은 원소를 더 넣으면 숫자는 더욱 커진다. 단순한 enumeration으로 가능성 전체를 세는 것은 참으로 큰 숫자를 따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약 50종 뿐이라는 것도 사실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아마도 DNA나 RNA의 기본 조각인 핵산과 단백질의 기본 조각인 아미노산, 지방에 사용되는 지방산, 탄수화물의 기본 조각인 당 정도를 합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유기 분자는 이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일 것이다.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와 양성자의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enumertion하면 우주에서 셀 수 있는 어떤 것의 숫자와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 달려있는 “유용한”이라는 형용사이다. 핵산을 단순히 조합하는 것만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겠지만 그것이 유용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특징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용함”의 정의가 달라질 것이니 지구에서 유용한 것만이 유용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환경에 따라 특정한 문법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힌두교가 이야기하는 순환적인 우주론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대의 서구인들이 고대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동경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시대에 칼 세이건이 이 책의 내용을 수정한다면 아마도 이 부분을 가장 손대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정보를 한때는 귀하게 여길지 모르겠으나,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세대를 거쳐 반복해서 구전되는 동안에 점차 변질되게 마련이고, 결국에 가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퇴색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시간 구전되어 내려오며 그 생명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경전, 설화, 신화 같은 것들인데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변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사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사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도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구전이 아니라 활자의 형태로 정확하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면 새로운 세대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반면, 어떤 (사실 대부분의) 책들은 활자의 형태만 남을 뿐 인류의 기억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 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이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더 이상 도서관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롭게 생성되는 정보의 양은 이제 도서관 같은 것으로 보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인간이 유용성을 평가하는 시대를 넘어서 인공지능에 의해 이해되고 해석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빅데이터의 시대에는 개별 사건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고, 그런 수많은 개별 사건 사이의 비선형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인공지능이 활약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의 가치, 기억을 모으고 보존하는 것의 가치는 절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과율이 초래한 진화의 결과는 얽히고 설켜 있다. 우리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해한 것 같으면 이해하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인간이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자만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자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자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수백년 후에 지구는, 그리고 인류는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랜 기억과 역사에 기대어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연과 다른 인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잡하다’는 현실이지만 ‘그러므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해석이고 철학이다.

맺는 말

철학책을 읽으면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시를 읽으면 감성적이 되고 과학 책을 읽으면 분석적이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그 내용이 철학이건 과학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상관없이 종합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구체적인 어떤 부분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삶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종합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은 좋은 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여러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은이의 생각과 스스로의 생각을 비교하며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그 다른 부분은 내 삶의 어떤 요소에서 기인했는지 생각해 보고 책의 내용과 스스로의 생각 모두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더욱더 훌륭한 독서의 태도이다.

디지털 피아노 구입 후기

나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다. 국민학교 6학년 1년 정도 학원을 다녔고, 대략 체르니 30번의 초반 정도까지 치고나니 중학생이 되어 까까머리가 되었는데, 까까머리 하고 피아노 학원 가는게 싫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어머니가 “너 평생 후회한다”며 말리셨는데, 역시나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는 일이다.

집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하나 있었는데, 오랫동안 잘 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가 팔아버려서 집에 피아노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좀더 오랫동안 피아노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었고, 세 아이 모두 피아노 학원에 보내서 잠시라도 피아노를 배우게 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셋째가 피아노 학원을 막 다니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집에서라도 연습을 시키는게 좋겠다 싶어서 가지고 있던 25키 크기의 작은 건반을 컴퓨터에 연결해서 연습을 하게 했다. 25키는 사실 프로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쉽게 작업을 하는 용도라서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는데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시 61건반인 Roland JV-30을 꺼내서 사용하게 되었다.

Roland JV-30은 오래 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usb connection이 없는 관계로 usb-to-midi 케이블을 구매하고, 아이패드와 연결을 위해 라이트닝 usb 카메라킷을 구매한 후 이 둘을 연결해서 사용했다. 원래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IK multimedia의 iGrand Piano같은 앱을 사용하였다. 사실 소리로는 다른 비싼 악기 못지 않은 소리를 내 주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습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민하다가 어차피 지금 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으니 그 돈을 아껴서 좀더 앱에 투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Simply Piano 앱을 써 보기로 했다. 사실 막내가 이걸 꽤 좋아해서 열심히 연습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보드의 거치와 악보 거치 같은 자잘한 것들이 좀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애플 정품이 아닌 usb 카메라킷이 말썽을 부리기도 했고.

결국 그냥 디지털 피아노를 한 대 사는 것으로 결정. 이 시점에 일본 제품을 사기는 싫었기 때문에 야마하나 코르그 등은 자동 탈락했고 결국 커즈와일을 사기로 했다. 관련 제품들을 살펴보던 중에 M130W라는 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중급형 라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국내 전용 모델이기는 하지만 나무 건반이라는 장점이 있고 홈페이지에 게시된 가격이나 다나와 최저가에 비해서 많이 싸게 살 수 있는 루트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좋은 가격에 구매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저녁에도 다른 집에 피해갈 것을 신경쓰지 않고 헤드폰을 끼고 연습할 수 있으니 도리어 내가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하농, 체르니 100번, 부르크뮐러 25번 정도를 치다가 요즘에는 진도가 좀 나가서 체르니 30번, 쿨라우의 소나티네, 슈만의 젊은이를 위한 앨범 같은 것들을 연습하고 있다. 악보 책을 산건 아니고 이 정도는 이미 모두 public domain에 나와 있기 때문에 IMSLP 같은 곳에서 스캔된 pdf 파일을 다운받아서 아이패드 piascore 앱을 이용해서 보고 있다. 이제는 손가락도 많이 굳고, 그동안 내 마음대로 피아노를 치면서 나쁜 습관도 많이 들어서 그걸 고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차피 앞으로 평생 할거라고 생각하니 급한 마음이 있을리도 없고 그냥 속 편하게 연습하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의 교회에 대한 생각

치킨집과 교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치킨에 관한 한 우리 나라만큼 다양한 치킨들이 경합하는 나라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입하기도 쉬운 편인데다가 수요도 많기 때문에 가격이건 맛이건 아니면 다른 어떤 점이든 특별한 점이 있어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만 하다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꽤 있는 시장(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고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 어디에서 살아도 치킨을 먹고 싶다면 최소한 몇 가지의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치킨집은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고 경쟁도 심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교회 역시 기본 구조는 창업이 쉬운 자영업자이다.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은 사실 일부 큰 교단을 제외하면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교단은 잘 구별을 못하니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신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독교인의 수는 적지 않다 (물론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 수보다는 적을거 같다). 교회의 수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점은 아닌 것이, 다양한 교회가 있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꽤나 높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가 멀리 있어도, 셔틀 버스로 친절하게 모시고 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가 많다보면 전체적인 퀄리티는 상향 평준화될 가능성이 높다.

교회의 특징

치킨집과 교회의 결정적인 차이는 정치적인 영향력이다. 사실 치킨업주협회 같은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협회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에 비하면 교회의 협회라고 할 수 있는 교단 아니면 교단 연합 단체 같은 것들은 아주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향력은 여러 가지 요소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큰 것이 교회의 사회적 역할이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단지 특정 요일에 한두번 방문하는 종교 시설이 아니다. 이른바 X세대인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정도에는 교회의 문화적인 수준이 다른 곳들에 비해 높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노래, 피아노, 기타, 드럼, 인형극, 연극 등) 교회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교회가 단순히 예배 장소가 아니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만 인간 관계를 형성해도 다양한 삶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하고만 모든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교회도 동일한 측면에서 그 안에만 있어도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채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 그러니까 산업화 세대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삶의 공동체이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거기에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도 교회를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평생 동안 사귀어온 친구들이 있고 삶의 모든 부분을 나누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점이기는 한데, 교회는 이 분들의 심리적 안정, 복지, 건강 등 다양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 기관의 운영은 상당 부분 신자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지니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은, 사회의 대부분의 기관들이 빠르게 인터넷으로 그 창구를 바꾸고 있을 때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관계성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 교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물론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해서 노년 세대의 상당수가 카톡에 익숙해지기는 했다)

이런 공동체성과 오프라인 모임의 특징이 세대간 대결이라는 정치적인 구도 속에서 특정한 정치색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의 실체이다. 동일한 채널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한 쪽으로 의견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반대로 이야기해서, 교회 안에서 그런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치킨집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생각날 때 주변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 시켜먹듯이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잠시라도 종교적 분위기를 느끼고 오는 것이다. 이왕이면 큰 교회가 좋은 것이, 귀찮게 이름과 전화번호 적고 주중에 연락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기 때문이고, 목사님과 눈이 마주치는 것보다는 그럴듯한 직위를 가진 잘 나가는 분들을 우연히라도 만나는게 더 기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사님이 마음에 안드는 말을 하거나 운영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이 보이거나 하면 교회를 옮기는데도 별 거부감이 없다.

위기 상황에서의 교회

이런 상황에 비해 천주교는 훨씬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체험해 본 것은 아니지만 레시피가 상당히 표준화되어 있고 중요한 의사 결정은 본사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다. (잘 모르니 이 부분은 짧게 쓰는게 맞겠다)

평상시의 상황이라면, 그래서 개인들이 최대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교회가 장점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위기이다. 그래서 이런 위기가 되면 위기 대응 능력이 드러난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영세업자의 모임이기 때문에 일사분란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위기 대응 능력이 큰 것처럼 천주교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더 일관적이고 상식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것과 대조되는 지점이다.

특정 교회의 문제가 교회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는 표현이 들어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임을 고백하는 이 고백이 교회의 고백이라면, 적어도 일부 교회의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은 스스로의 신앙 고백을 부정하는 내용일 수 있다. 최소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교회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신학적인 작은 문제에 있어서조차) 통일된 의견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공동체이든 관계없이 적용될 수 있으며, 교회의 경우 그 사실이 교회됨의 (거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긍정적으로도 또는 부정적으로도 발현될 수 있다는 면에서 지금 교회가 보여주는 위기 대응 능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맺는 말

마르틴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을 기반으로 천주교에서 분리된 기독교는 그 영세업자성을 버릴 수 없다. 그리고 큰 위기가 닥쳐 왔을 때 그 영세업자성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되는 것을 2020년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이 갖는 장점을 생각하고 논하기에는 아직 교회는 위기의 시작점에 서 있을 뿐이고 지금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래도 교회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은 통일된 생각으로 국난을 극복해야 하는 시기도 있지만, 다양한 생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작은 씨앗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필요할 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춘궁기에도 파종할 종자씨는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독서일기

창세기 설화

개신교 교회와 지도자들은 창세기가 설화로 되어 있다는 지식에 반대하여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이 지식이 없다면 창세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짧은 평: 창세기를 ‘설화’라는 단어로 해석해낸 책. 창세기 뿐 아니라 성서를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관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하다!

성서의 시작이면서 태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세기.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도 믿음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을 대할 때 가장 일반적인 태도라면, 이 책을 다른 책들과 다를 바가 없는 동일한 기준으로 읽는 것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일점 일획도 바꿀 수 없는’ 방식으로 읽게 되면 이 책을 일종의 관찰 보고서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책을 모세가 기록했다는 전통적인 이해와 책 안의 연대 기록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더라도, 요셉의 이야기는 모세로부터 최소한 400년이 지난 이야기이고 노아의 이야기나 그 이전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지금 시대로 생각을 해 봐도, 수백년 전의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역사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일어난 일로 생각한다는 것은 지나친 오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궁켈은 몇 가지 중요한 분석을 통해서 창세기를 모아서 편집한 편집자가 서로 다른 종류의 전승으로부터 수집된 자료를 솜씨있게 배열하였으며, 자신의 생각에 배치되는 자료라고 하더라도 널리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포함을 시키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가장 분명한 예라면, 아마도 서로 다른 두 가지 창조 설화를 그대로 실어 놓은 창세기 1장과 2장일 것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교양 필수 과목인 ‘성서와 기독교’라는 수업을 들을 때, 문상희 교수님 (1998년에 돌아가셨다. 내가 1993년에 수업을 들었으니, 그 분의 거의 마지막 강의를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께서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설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논하는 숙제를 내 주신 것이 기억이 난다. 누가 보아도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세오경이라면 3천년을 읽어온 책인데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오면서 이에 대한 의구심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이런 질문은 ‘신약에서 서로 다른 네 개의 복음서가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질문이 된다.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단 한 가지 시선과 해석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그것은 해석되어야 하며, 그 해석은 해석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생명력이 있는 이야기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심적인 가치는 유지된다는 것이 또한 그 생명력의 놀라운 점이다. 그것이 바로 궁켈이 ‘설화’라는 단어에 담은 뜻이며, 시대와 장소에 상관 없이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원형적인 이야기들이 설화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야기가 바로 창세기인 것이다.

이 책은 궁켈이 쓴 ‘창세기 주석’의 서론을 번역한 것이다. 성서를 깊이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주석 전체를 읽고 싶겠지만, 이야기의 상세한 해석보다 창세기 (또는 성서)라는 책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로서는 이 서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말씀으로 읽는 욥기

그러므로 제 잘못된 말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에 관한 생각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욥 42:6, 저자의 번역 제안)

짧은 평: 욥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지혜서로 해석하면서 이 책의 특징을 잡아낸 점이 신선하다.

욥기 42장 6절을 개역개정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로, 새번역에서는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로, 공동번역에서는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로 번역하였다. 모두 후반절의 내용을 ‘회개’로 번역한 것이다. (NIV, KJV 등의 영어 성경에서도 모두 repent를 사용함) 이렇게 하면 욥기 전체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던 욥이 하나님의 연속적인 반문을 듣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원문을 다시 해석하여 “티끌과 재에서 회개”가 아닌 “티끌과 재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티끌과 재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의미하므로, 결국 욥은 하나님과의 질의 응답을 통해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두번째 응답에서 베헤못이나 리워야단에 대한 찬사는, 인간이 그런 존재들보다 못하지 않은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욥이 인과응보, 상선벌악, 또는 신명기적 신학에 대해 묻고 따지는 그 행위 자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패망과 포로됨이라는 역사 앞에서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현실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우리의 죄 때문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신명기적 해석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이해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욥의 이야기를 통해 교리적인 순종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항변에 가치가 있음을 말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성경을 관통하는 신학이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룻, 요나, 욥, 아모스 등은 이른바 이스라엘의 정통 신학에서 벗어나 있을지 모르지만, 숨막히는 교리와 기계적인 인과응보에서 벗어난 곳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생각과 외침 속에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은 단순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을 보게 되는 역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런 이해 없이 한 곳에 머무르는 신학은 욥의 친구들로 표현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궁금증은 현대 유대교에서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의 내 생각의 지평을 많이 넓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페라 투란도트 2006 취리히 공연 감상기

호세 쿠라와 파올레타 마로쿠가 각각 칼라프와 투란도트 역을 맡은 2006년 취리히 공연을 유튜브로 봤다. (화질이 360p인 것은 함정) 이제 투란도트도 1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오페라라서 어지간한 해석은 다 나오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사실 류의 죽음 이후 마지막 장면을 베리오가 다시 작곡한 경우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기사 참조) 이 공연에서 호세 쿠라가 보여준 해석은 그 동안 본 적이 없었던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푸치니의 투란도트라는 오페라에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그걸 푸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상징과 해석을 사용할 수 있는 장면인데 음악으로는 아주 짧게 표현되고 있으니 그 긴장감을 몰입도 있게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이 장면을 드라마틱 소프라노와 드라마틱 테너의 소리 대결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유명한 비르기트 닐손과 프랑코 코렐리의 대결), 이 소리 대결이 어려운 플라시도 도밍고는 자신의 연기력을 활용해서 이 장면에서의 어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호세 카레라스는 도리어 변함이 없는 표정이 “미스테리한 왕자”라는 해석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연기를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수께끼는 세 개, 죽음은 하나’를 외치는 공주와 ‘수수께끼는 세 개, 삶은 하나’를 외치는 왕자의 high C 대결은 두 주인공의 대립을 가장 격렬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므로, 3막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이전에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에 비하면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는 장면은 엄청나게 격렬한 수수께끼에 비해서 왕자가 너무 쉽게 정답을 맞추기 때문에 이미 왕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고 조운 서덜랜드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주역을 맡은 데카 음반에서는, 수수께끼를 맞춘 이방인에게 자신을 넘겨주시겠나며 왕에게 탄원하는 공주의 두 번의 high C를 왕자가 무시무시한 단 한 번의 high C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왕자의 high C는 악보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가수의 (또는 지휘자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왕자에게 주도권이 넘어와 있는 것을 무대 장치나 연출이 아닌 노래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이게 내가 이 녹음을 최고의 투란도트로 꼽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호세 쿠라의 푸치니 아리아집에서 Nessun Dorma는 내가 들은 이 아리아 중에서도 거의 수위를 다툴 정도로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 오페라 실황을 흥미롭게 본 것인데 (게다가 호세 쿠라 정도면 최근 테너 중에서는 가장 드라마틱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의외로 수수께끼 장면을 도리어 너무 위트있게 해석을 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검색을 하는 칼라프 왕자에게 그깟 수수께끼 세 개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노트북을 들고 쉽게 답을 맞춰 버리는 왕자라면 이제 수수께끼를 맞추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리고 (앞에서 언급한 파바로티의 high C는 쿠라에게는 필요 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이제 공주를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만 남게 된다.

푸치니가 가장 고민했다던 마지막 사랑의 이중창 부분. 가장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공주가 배경을 알 수 없는 떠돌이 왕자와 한 번의 키스로 (그것도 그 왕자의 아버지의 종을 고문으로 죽이자마자) 사랑에 빠질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걸 표현해 내려면 도대체 어떤 음악을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그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다. 키스는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으로 해석되고, 성인의 일은 성인의 방식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공주는 빨간 원피스를 드러내고 왕자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건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처럼 그냥 취미로 음악을 듣는 사람과, 관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성공시켜야 하는 프로페셔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직업이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최소한 아마추어 애호가보다는 뭔가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2020년 5월 독서 일기

이번 달에는 모두 13권의 책을 읽었다. 가능하면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지만 이미 구매한 많은 책들 중에서 ‘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위주로 읽고 있고, 그런 의무감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면 일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도 꾸준히 읽어 나가려고 한다.

  1. 소설: 호수살인자, 쇠못살인자, 쇠종살인자 이 세 권은 지난 4월에 읽었던 황금살인자에 이어서 디런지에 시리즈의 나머지에 해당된다. 서구인이 쓴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회에 대한 설명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서양 추리소설의 문법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동서양의 안좋은 점을 합쳐 놓은 셈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추천할 정도는 되지 않는 듯. 양쯔강은 ‘대지’ 3부작 시리즈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등을 수상한 펄 벅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대지’ 시리즈도 너무 어릴 때 읽어서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서야, 사실 펄 벅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지’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도리어 퇴보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거나 펄 벅이 스스로를 ‘정신적인 동서 혼혈인’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지만,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서양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청년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가족과 이웃의 기대와 역사적인 소명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아편에 손을 대고 마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 변혁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로 이야기되는 아Q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그러나 그보다 더 그 시대의 중국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2. 역사: 지난달에 시작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4권까지 읽었다. 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이야기이고, 4권은 4.19를 포함한 4월혁명에 관한 내용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치열한 역사 전쟁을 기억하는 면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현대사에 관한, 그것도 이승만 정권에 대한 긍정적인 역사 서술이 나올 수 있으며 그것이 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될만큼 격렬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국내의 상황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환경과 좀더 긴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그런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었을 것 같고, 작년에 읽었던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50년대의 내용을 겹쳐서 생각하면 195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들은 거의 섭렵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인문: 수축사회는 리디북스에서 진행한 메디치미디어 무료 대여 행사 덕분에 읽게 된 책이다. 엄청나게 성장하는 경제를 배경으로 자라온 내게 수축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와닿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10대 혹은 20대를 이해하기 위해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장이 정체된다는 말은 결국 모든 활동이 제로섬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문화와 생활을 영위해온 유럽인들 또는 북한 사람들에게 도리어 더 익숙하고 유리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대한 진단은 같아도 그 대처 방법은 생각의 방향에 따라 정 반대로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인데,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들은 그 기본적인 생각의 뿌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최소한 나 자신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역전은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국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의 저자가 각 분야에서 힘의 역전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부분은 피해자 우선주의로 바꿔라는 이수정님의 글과 수도권 중력에 맞서는 메기시티 구상이라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글이었다. 증거의 오류는 내가 구매할 때 생각했던 데이터증거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에 대한 생각을 주로 가지고 있지만, 저자는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특히 설문조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4월 6일에 읽기 시작해서 5월 16일에야 다 읽을 수 있었으니 꽤나 오래 걸린 셈이다. 그래도 읽는 중에 실제로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에 직접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읽기가 가능하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아마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것 때문에 더 유명해진 책일 것이다. 사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그 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른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공허’ 또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믿고 있었던 것의 공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공허 또는 공백의 문제가 삶의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내 자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4. 경영: 애자일,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의 비밀이라는 이 책은 애자일 경영에 대한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내가 느끼기에 조금 번잡하게 쓰여진 측면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시작된 애자일이라는 개념과 문화가 어떻게 경영에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깊이있게 설명한 것은 분명하다. ‘애자일’하지 않은 조직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애자일’이 필요한 것인지,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애자일’인 것인지, ‘애자일’ 방식으로 경영을 하면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등 생각해 볼만한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애자일’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행동의 원칙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구체적인 행동 양식보단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이 애자일하기 위해서는 애자일을 교육하는 것보다는 애자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일거라고 생각한다.
  5. 종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버트런드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학자로서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만을 놓고 보면 왜 그를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번역이 엉망인 것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는 지성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관점에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역사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이다. 그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이 읽기 힘들고 (이북이면서도 가독성을 올리기 힘든 편집도 한 이유일 수 있지만), 모호하고 어려운 많은 단계를 지나가야만 간명하게 정리되는 결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중간의 어려운 단계를 충실하게 따라오지 않았더라도 부정하기 힘든 매력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그의 책을 자꾸만 읽게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에수를 죽음의 자리까지 끌고 간 것은 로마의 잔악함이 아니라 그 정상성(normalcy)이었다.

2020년 4월 독서 일기

이번달에는 모두 12권의 책을 읽었다.

소설

이것 저것

람세스 시리즈를 모두 읽었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네 번째 책으로 완결이 되었다. 황금살인자는 네 권으로 구성된 디런지에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중국을 배경으로 관원인 주인공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이다.

탕자 돌아오다

앙드레 지드의 (정말) 짧은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성서의 탕자의 비유를 도전적으로 다시 쓴 우화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그가 1907년에 연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지드의 나이 38세에 쓴 소설이다. (최근에는 작가의 나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아래에 적을 비유의 위력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도전적인 비유에 대한 예로서도 훌륭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다시 재창조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멋진 예라고 생각한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일정 정도 이상 상상력을 동원해서 열심히 따라가야만 하도록 하는, 그러면서도 그 길이 힘들거나 소득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유도하는 지드의 솜씨는 칭찬할만했다.

비소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이 책은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 중에 거의 가장 위에 있는 책이다. 그런데 4월 중에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두 권의 책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이벤트가 있었고, 이런 기회에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을 대여해서 읽어보기로 하고 이 책을 빌려서 읽었다. 읽고 나서 내가 쓴 평은 이렇다.

이런 책이 인기를 끄는 지금 시대란… 그렇지만 나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내가 무뎌진건가 아니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인가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베스트셀러는 예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서평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전작과 비교해서 이렇게 평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전작인 다윗과 골리앗이나 아웃라이어같은 책의 인기는 어디서 온걸까? 결국 그 책들이 주는 (또는 준다고 믿어지는) 핵심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가 중요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앞의 두 책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 또는 평균을 뛰어넘는 상위 1%의 비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반면에 타인의 해석의 경우에는 낯선 이를 신뢰하지 말라와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작들이 믿을 수 없이 성공적인 사례들을 보여 준다면 이번 책은 믿을 수 없이 어처구니 없는 사례들을 보여 준다. 누가 뭐라도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사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에서 끝나지 않고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행동 수칙들을 개선해야 한다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직 내에 또는 개인적으로라도 이런 잘못된 가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조직 또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권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현대사로 넘어간다. (물론 그 중에 들어 있는 일제시대를 다룬 박시백의 35년도 읽어야 하지만, 이 시리즈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으므로 뒤로 미루기로 했다. 2019년 중순에 나온 5권이 1935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아직 완결되려면 시간이 꽤 남은 듯 하다.) 언제나 역사란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견이 갈릴 수 밖에 없지만, 현대사는 그것이 현대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분야이다. 지금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가 어렵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현대사를 일관된 시각에서 꿰뚫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저술한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덕분에 쉽게 잘 읽힌다는 장점도 얻었다. 이제 1권을 읽은 것이니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긴 했지만, 해방 후 3년의 시간을 막연하게 혼란의 시기라고만 평가하는 많은 책들에 비해서 어떻게 그 시기에 그렇게 풍성한 논의들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주요 사건과 논의들을 잘 정리해 두어서 좋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과거 시대를 혼란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비유의 위력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은 내게 도전적이고 좋은 내용과 그에 못지않게 읽기 힘든 문체, 이상한 번역으로 기억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전에 내가 읽었던 그의 책들을 모두 김준우가 번역하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판했다 것을 감안하면 그게 작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즐거운 책읽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깨달음과 의미들이 너무 분명하기에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국내에 ebook으로 나와 있는 그의 책이 이제 몇 권 남지 않았으니 몇 번 더 이 정도의 고생을 하는 것은 뭐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예수가 가르친 비유들을 수수께끼 비유, 본보기 비유, 그리고 도전하는 비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동하도록 도전하는 비유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정의를 복음서 자체에 적용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전통적인 복음서 해석자들이 들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오래된 텍스트를 전통대로 읽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생각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사유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배움의 발견

이 책은 읽으면서 참 희귀한 경험을 했다. 책의 절반까지는 정말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는 것이 힘들어서 책장을 넘기기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절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조울증과 이상한 종교적 신념에서 오는 망상에 빠져있는 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가족들, 그 안에서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 아버지의 신념이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앞 부분은 정말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억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성찰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지은이가 이제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에 내가 꼭두각시로 이용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좀더 마음을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 자아. 타라 웨스트우드는 그것을 교육(educated)이라고 불렀다.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읽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을 어떻게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눈부신 반면교사로 읽었다. 그리고 어떤 환경도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간증으로 읽었다.

내 도메인으로 이메일 서비스 이용하기 – Zoho Mail

오래 전에는 지메일에서 자신의 도메인을 사용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 기능이 G Suite의 기능이 되면서 유료 사용자에게만 허용되는 기능이 되었고, 이제는 이메일만 생각해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은 넘어서게 된 상황이다.

개인이 보유한 도메인으로 이메일 계정을 발급받고 이걸 무료로 호스팅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무료 서비스라면 다음 스마트워크 정도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홈페이지의 호스팅을 Boxne로 옮긴 이후에 이메일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호스팅 회사에서는 cpanel을 쓰고 있었는데, boxne는 directadmin을 사용하고 있고 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메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호스팅 회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라고 해 봐야 roundcube 웹메일 정도인데, 이건 10년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2020년에 사용하기에는 많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SpamAssassin도 지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로컬에서 스팸 차단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그나마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외부 메일 호스팅 서비스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첫번재로 시도한 것은 다음 스마트워크였다. 이걸 사용하려면 도메인을 보유하고 DNS에서 MX record 두 개를 설정해 주면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설정을 하고 쓰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문제가 있었다. MX record를 잘 설정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스마트워크에서 MX 설정 변경을 인식 못하는 것이다. 고객센터에 문의 글을 남겼는데, 처음에는 성의없는 답변이 붙고 [답변완료]를 만들더니, 다음에 다시 한 번 문의 글을 남기니 (다음 고객센터에서는 답변이 달린 글에 다시 내용을 추가하는 식으로 글타래를 만들 수가 없다), 이번에는 확인을 해야 한다는 답변이 남겨지고 [답변진행중]이 3일 정도가 흘렀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기는 포기하는 것으로 결정.

이제 쓸만한 곳이 있나 생각을 해 봤는데, boxne의 MX record 설정 기능 중에 gmail, ms365와 함께 zoho mail 설정이 있는 것이 기억이 났다. Zoho는 사실 이메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산성 도구를 원스탑으로 지원하는 업체 중의 하나로서, 한국에서는 사용자가 많은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업체이다. 나도 오래전부터 여기에 계정은 있었지만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고, Pricing 페이지에서 5명 이하의 사용자의 경우에는 도메인을 사용하더라도 무료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는 5명을 넘어가거나 메일 용량이 인당 5GB를 넘는 순간부터 유료 결제가 필요해지는 시스템이다.

MX record 설정, SPF 설정, 그리고 DKIM 설정 등에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원하는 이메일 계정을 zoho에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셋업이 완료되었다. 이메일 클라이언트에서 설정을 할 때도 (2FA가 설정되어 있는 경우) 계정 비밀번호 대신 앱 비밀번호를 생성해서 사용하게 한다던지, 스팸을 잘 걸러준다던지 하는 등 기능 면에서는 이전에 사용하던 roundcube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용성을 가지고 있다. 며칠 동안 이메일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덕분에 zoho 메일이라는 좋은 메일 시스템을 사용하게 되어 도리어 잘된 일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