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재건축 논쟁과 관련된 생각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교회 재건축 관련 논란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를 봐도 ‘교회의 일원’이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많았을) 배교자들) 더 어려운 것은 ‘공동체’라는 단어에 있는데, 이 공동체라는 것이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정도의 수준까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교회 공동체는 아마도 가족 공동체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는 것임에 틀림없다. ‘핏줄’이라는 요소에 의해 지배받는 가족 공동체와 달리 이 공동체는 ‘믿음’이라는 요소로 지배받기 때문에 새로운 구성원의 추가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어느 교회를 가 봐도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구원의 확신’ 보다는 ‘꾸준한 출석’이 더 중요하다. 사실, ‘구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개인 차원의 문제이므로 실제로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가족 공동체’ 수준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일 때, 그리고 그 모임이 진정한 ‘공동체’일 때,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없고 공동체 의식의 순수성 역시 검증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 순간이 언제인지 수치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가 회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도 그 교회 특유의 공동체성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교회가 자신의 공동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까지 스스로 분열하는 것 뿐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 분열이 실제 교회의 분열을 의미하든, 아니면 구역, 가정교회, 지교회 등의 세부적인 조직을 의미하던간에 상관없이. 즉, 본질적으로 교회는 분열하게 되어 있다.

분열하지 않고 크기를 키워가는 교회는,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즉, 스스로의 공동체성의 필수 요소들을 조금 포기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던지, 혹은 공동체성의 유지를 위해 신앙의 요소가 아닌 다른 요소를 도입하던지.

많은 경우,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담임목사님에 대한 애정 (혹은 충성심)이다. 그리고, 신앙의 본질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보이는 어떤 지엽적인 요소를 강조함으로서 여타 교회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전략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새벽기도가 뜨거운’ 교회, ‘제자 훈련이 우수한’ 교회, ‘선교에 매진하는’ 교회 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들이다.

어느 것도 그 자체만으로 비판을 받을만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교회의 크기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네 개의 복음서가 서로 다른 신앙공동체에 전승되던 믿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믿음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 전승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고대와 같이 공동체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서 공동체들간에 네 복음서 공동체의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거리일 수는 없다는 생각만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결국, 보편적인 종교가 되기 위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부각시키려는 교회의 욕구, 그리고 차이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말로 카톨릭을 추구하는) 교회의 조바심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수만명이 예배드릴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억의 돈을 들여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는 사랑의교회와 관련해서, 그 돈을 어디다 쓰는 것이 좋겠다라던가, 헌금 강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수만명의 성도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가를 묻고 싶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힘이 과연 같은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적 신앙인지 아닌지를 묻고 싶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만명의 성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 공동체적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조차 궁금증을 갖고 있는 내게는 그 대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