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투란도트 2006 취리히 공연 감상기

호세 쿠라와 파올레타 마로쿠가 각각 칼라프와 투란도트 역을 맡은 2006년 취리히 공연을 유튜브로 봤다. (화질이 360p인 것은 함정) 이제 투란도트도 1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오페라라서 어지간한 해석은 다 나오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사실 류의 죽음 이후 마지막 장면을 베리오가 다시 작곡한 경우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기사 참조) 이 공연에서 호세 쿠라가 보여준 해석은 그 동안 본 적이 없었던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푸치니의 투란도트라는 오페라에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그걸 푸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상징과 해석을 사용할 수 있는 장면인데 음악으로는 아주 짧게 표현되고 있으니 그 긴장감을 몰입도 있게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이 장면을 드라마틱 소프라노와 드라마틱 테너의 소리 대결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유명한 비르기트 닐손과 프랑코 코렐리의 대결), 이 소리 대결이 어려운 플라시도 도밍고는 자신의 연기력을 활용해서 이 장면에서의 어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호세 카레라스는 도리어 변함이 없는 표정이 “미스테리한 왕자”라는 해석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연기를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수께끼는 세 개, 죽음은 하나’를 외치는 공주와 ‘수수께끼는 세 개, 삶은 하나’를 외치는 왕자의 high C 대결은 두 주인공의 대립을 가장 격렬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므로, 3막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이전에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에 비하면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는 장면은 엄청나게 격렬한 수수께끼에 비해서 왕자가 너무 쉽게 정답을 맞추기 때문에 이미 왕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고 조운 서덜랜드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주역을 맡은 데카 음반에서는, 수수께끼를 맞춘 이방인에게 자신을 넘겨주시겠나며 왕에게 탄원하는 공주의 두 번의 high C를 왕자가 무시무시한 단 한 번의 high C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왕자의 high C는 악보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가수의 (또는 지휘자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왕자에게 주도권이 넘어와 있는 것을 무대 장치나 연출이 아닌 노래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이게 내가 이 녹음을 최고의 투란도트로 꼽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호세 쿠라의 푸치니 아리아집에서 Nessun Dorma는 내가 들은 이 아리아 중에서도 거의 수위를 다툴 정도로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 오페라 실황을 흥미롭게 본 것인데 (게다가 호세 쿠라 정도면 최근 테너 중에서는 가장 드라마틱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의외로 수수께끼 장면을 도리어 너무 위트있게 해석을 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검색을 하는 칼라프 왕자에게 그깟 수수께끼 세 개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노트북을 들고 쉽게 답을 맞춰 버리는 왕자라면 이제 수수께끼를 맞추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리고 (앞에서 언급한 파바로티의 high C는 쿠라에게는 필요 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이제 공주를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만 남게 된다.

푸치니가 가장 고민했다던 마지막 사랑의 이중창 부분. 가장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공주가 배경을 알 수 없는 떠돌이 왕자와 한 번의 키스로 (그것도 그 왕자의 아버지의 종을 고문으로 죽이자마자) 사랑에 빠질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걸 표현해 내려면 도대체 어떤 음악을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그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다. 키스는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으로 해석되고, 성인의 일은 성인의 방식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공주는 빨간 원피스를 드러내고 왕자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건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처럼 그냥 취미로 음악을 듣는 사람과, 관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성공시켜야 하는 프로페셔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직업이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최소한 아마추어 애호가보다는 뭔가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2020년 5월 독서 일기

이번 달에는 모두 13권의 책을 읽었다. 가능하면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지만 이미 구매한 많은 책들 중에서 ‘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위주로 읽고 있고, 그런 의무감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면 일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도 꾸준히 읽어 나가려고 한다.

  1. 소설: 호수살인자, 쇠못살인자, 쇠종살인자 이 세 권은 지난 4월에 읽었던 황금살인자에 이어서 디런지에 시리즈의 나머지에 해당된다. 서구인이 쓴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회에 대한 설명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서양 추리소설의 문법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동서양의 안좋은 점을 합쳐 놓은 셈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추천할 정도는 되지 않는 듯. 양쯔강은 ‘대지’ 3부작 시리즈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등을 수상한 펄 벅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대지’ 시리즈도 너무 어릴 때 읽어서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서야, 사실 펄 벅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지’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도리어 퇴보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거나 펄 벅이 스스로를 ‘정신적인 동서 혼혈인’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지만,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서양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청년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가족과 이웃의 기대와 역사적인 소명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아편에 손을 대고 마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 변혁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로 이야기되는 아Q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그러나 그보다 더 그 시대의 중국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2. 역사: 지난달에 시작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4권까지 읽었다. 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이야기이고, 4권은 4.19를 포함한 4월혁명에 관한 내용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치열한 역사 전쟁을 기억하는 면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현대사에 관한, 그것도 이승만 정권에 대한 긍정적인 역사 서술이 나올 수 있으며 그것이 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될만큼 격렬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국내의 상황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환경과 좀더 긴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그런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었을 것 같고, 작년에 읽었던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50년대의 내용을 겹쳐서 생각하면 195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들은 거의 섭렵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인문: 수축사회는 리디북스에서 진행한 메디치미디어 무료 대여 행사 덕분에 읽게 된 책이다. 엄청나게 성장하는 경제를 배경으로 자라온 내게 수축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와닿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10대 혹은 20대를 이해하기 위해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장이 정체된다는 말은 결국 모든 활동이 제로섬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문화와 생활을 영위해온 유럽인들 또는 북한 사람들에게 도리어 더 익숙하고 유리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대한 진단은 같아도 그 대처 방법은 생각의 방향에 따라 정 반대로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인데,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들은 그 기본적인 생각의 뿌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최소한 나 자신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역전은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국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의 저자가 각 분야에서 힘의 역전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부분은 피해자 우선주의로 바꿔라는 이수정님의 글과 수도권 중력에 맞서는 메기시티 구상이라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글이었다. 증거의 오류는 내가 구매할 때 생각했던 데이터증거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에 대한 생각을 주로 가지고 있지만, 저자는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특히 설문조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4월 6일에 읽기 시작해서 5월 16일에야 다 읽을 수 있었으니 꽤나 오래 걸린 셈이다. 그래도 읽는 중에 실제로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에 직접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읽기가 가능하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아마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것 때문에 더 유명해진 책일 것이다. 사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그 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른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공허’ 또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믿고 있었던 것의 공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공허 또는 공백의 문제가 삶의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내 자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4. 경영: 애자일,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의 비밀이라는 이 책은 애자일 경영에 대한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내가 느끼기에 조금 번잡하게 쓰여진 측면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시작된 애자일이라는 개념과 문화가 어떻게 경영에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깊이있게 설명한 것은 분명하다. ‘애자일’하지 않은 조직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애자일’이 필요한 것인지,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애자일’인 것인지, ‘애자일’ 방식으로 경영을 하면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등 생각해 볼만한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애자일’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행동의 원칙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구체적인 행동 양식보단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이 애자일하기 위해서는 애자일을 교육하는 것보다는 애자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일거라고 생각한다.
  5. 종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버트런드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학자로서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만을 놓고 보면 왜 그를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번역이 엉망인 것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는 지성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관점에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역사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이다. 그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이 읽기 힘들고 (이북이면서도 가독성을 올리기 힘든 편집도 한 이유일 수 있지만), 모호하고 어려운 많은 단계를 지나가야만 간명하게 정리되는 결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중간의 어려운 단계를 충실하게 따라오지 않았더라도 부정하기 힘든 매력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그의 책을 자꾸만 읽게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에수를 죽음의 자리까지 끌고 간 것은 로마의 잔악함이 아니라 그 정상성(normalcy)이었다.

2020년 4월 독서 일기

이번달에는 모두 12권의 책을 읽었다.

소설

이것 저것

람세스 시리즈를 모두 읽었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네 번째 책으로 완결이 되었다. 황금살인자는 네 권으로 구성된 디런지에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중국을 배경으로 관원인 주인공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이다.

탕자 돌아오다

앙드레 지드의 (정말) 짧은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성서의 탕자의 비유를 도전적으로 다시 쓴 우화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그가 1907년에 연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지드의 나이 38세에 쓴 소설이다. (최근에는 작가의 나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아래에 적을 비유의 위력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도전적인 비유에 대한 예로서도 훌륭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다시 재창조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멋진 예라고 생각한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일정 정도 이상 상상력을 동원해서 열심히 따라가야만 하도록 하는, 그러면서도 그 길이 힘들거나 소득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유도하는 지드의 솜씨는 칭찬할만했다.

비소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이 책은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 중에 거의 가장 위에 있는 책이다. 그런데 4월 중에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두 권의 책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이벤트가 있었고, 이런 기회에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을 대여해서 읽어보기로 하고 이 책을 빌려서 읽었다. 읽고 나서 내가 쓴 평은 이렇다.

이런 책이 인기를 끄는 지금 시대란… 그렇지만 나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내가 무뎌진건가 아니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인가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베스트셀러는 예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서평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전작과 비교해서 이렇게 평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전작인 다윗과 골리앗이나 아웃라이어같은 책의 인기는 어디서 온걸까? 결국 그 책들이 주는 (또는 준다고 믿어지는) 핵심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가 중요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앞의 두 책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 또는 평균을 뛰어넘는 상위 1%의 비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반면에 타인의 해석의 경우에는 낯선 이를 신뢰하지 말라와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작들이 믿을 수 없이 성공적인 사례들을 보여 준다면 이번 책은 믿을 수 없이 어처구니 없는 사례들을 보여 준다. 누가 뭐라도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사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에서 끝나지 않고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행동 수칙들을 개선해야 한다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직 내에 또는 개인적으로라도 이런 잘못된 가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조직 또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권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현대사로 넘어간다. (물론 그 중에 들어 있는 일제시대를 다룬 박시백의 35년도 읽어야 하지만, 이 시리즈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으므로 뒤로 미루기로 했다. 2019년 중순에 나온 5권이 1935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아직 완결되려면 시간이 꽤 남은 듯 하다.) 언제나 역사란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견이 갈릴 수 밖에 없지만, 현대사는 그것이 현대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분야이다. 지금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가 어렵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현대사를 일관된 시각에서 꿰뚫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저술한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덕분에 쉽게 잘 읽힌다는 장점도 얻었다. 이제 1권을 읽은 것이니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긴 했지만, 해방 후 3년의 시간을 막연하게 혼란의 시기라고만 평가하는 많은 책들에 비해서 어떻게 그 시기에 그렇게 풍성한 논의들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주요 사건과 논의들을 잘 정리해 두어서 좋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과거 시대를 혼란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비유의 위력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은 내게 도전적이고 좋은 내용과 그에 못지않게 읽기 힘든 문체, 이상한 번역으로 기억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전에 내가 읽었던 그의 책들을 모두 김준우가 번역하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판했다 것을 감안하면 그게 작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즐거운 책읽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깨달음과 의미들이 너무 분명하기에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국내에 ebook으로 나와 있는 그의 책이 이제 몇 권 남지 않았으니 몇 번 더 이 정도의 고생을 하는 것은 뭐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예수가 가르친 비유들을 수수께끼 비유, 본보기 비유, 그리고 도전하는 비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동하도록 도전하는 비유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정의를 복음서 자체에 적용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전통적인 복음서 해석자들이 들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오래된 텍스트를 전통대로 읽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생각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사유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배움의 발견

이 책은 읽으면서 참 희귀한 경험을 했다. 책의 절반까지는 정말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는 것이 힘들어서 책장을 넘기기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절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조울증과 이상한 종교적 신념에서 오는 망상에 빠져있는 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가족들, 그 안에서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 아버지의 신념이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앞 부분은 정말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억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성찰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지은이가 이제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에 내가 꼭두각시로 이용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좀더 마음을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 자아. 타라 웨스트우드는 그것을 교육(educated)이라고 불렀다.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읽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을 어떻게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눈부신 반면교사로 읽었다. 그리고 어떤 환경도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간증으로 읽었다.

내 도메인으로 이메일 서비스 이용하기 – Zoho Mail

오래 전에는 지메일에서 자신의 도메인을 사용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 기능이 G Suite의 기능이 되면서 유료 사용자에게만 허용되는 기능이 되었고, 이제는 이메일만 생각해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은 넘어서게 된 상황이다.

개인이 보유한 도메인으로 이메일 계정을 발급받고 이걸 무료로 호스팅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무료 서비스라면 다음 스마트워크 정도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홈페이지의 호스팅을 Boxne로 옮긴 이후에 이메일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호스팅 회사에서는 cpanel을 쓰고 있었는데, boxne는 directadmin을 사용하고 있고 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가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메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호스팅 회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라고 해 봐야 roundcube 웹메일 정도인데, 이건 10년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2020년에 사용하기에는 많이 떨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SpamAssassin도 지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로컬에서 스팸 차단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그나마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외부 메일 호스팅 서비스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첫번재로 시도한 것은 다음 스마트워크였다. 이걸 사용하려면 도메인을 보유하고 DNS에서 MX record 두 개를 설정해 주면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설정을 하고 쓰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문제가 있었다. MX record를 잘 설정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스마트워크에서 MX 설정 변경을 인식 못하는 것이다. 고객센터에 문의 글을 남겼는데, 처음에는 성의없는 답변이 붙고 [답변완료]를 만들더니, 다음에 다시 한 번 문의 글을 남기니 (다음 고객센터에서는 답변이 달린 글에 다시 내용을 추가하는 식으로 글타래를 만들 수가 없다), 이번에는 확인을 해야 한다는 답변이 남겨지고 [답변진행중]이 3일 정도가 흘렀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기는 포기하는 것으로 결정.

이제 쓸만한 곳이 있나 생각을 해 봤는데, boxne의 MX record 설정 기능 중에 gmail, ms365와 함께 zoho mail 설정이 있는 것이 기억이 났다. Zoho는 사실 이메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산성 도구를 원스탑으로 지원하는 업체 중의 하나로서, 한국에서는 사용자가 많은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업체이다. 나도 오래전부터 여기에 계정은 있었지만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고, Pricing 페이지에서 5명 이하의 사용자의 경우에는 도메인을 사용하더라도 무료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는 5명을 넘어가거나 메일 용량이 인당 5GB를 넘는 순간부터 유료 결제가 필요해지는 시스템이다.

MX record 설정, SPF 설정, 그리고 DKIM 설정 등에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가 되었고, 이제 원하는 이메일 계정을 zoho에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셋업이 완료되었다. 이메일 클라이언트에서 설정을 할 때도 (2FA가 설정되어 있는 경우) 계정 비밀번호 대신 앱 비밀번호를 생성해서 사용하게 한다던지, 스팸을 잘 걸러준다던지 하는 등 기능 면에서는 이전에 사용하던 roundcube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용성을 가지고 있다. 며칠 동안 이메일을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덕분에 zoho 메일이라는 좋은 메일 시스템을 사용하게 되어 도리어 잘된 일이 아닌가 싶다.

유용한 iOS 앱: Drafts 5

최근에 회사를 옮기고 나서 업무용으로 아이맥 프로와 맥북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휴대전화는 아이폰을 쓰고 있었고, 아이패드 프로 2세대까지 생기면서 (애플워치를 뺀) 사과농장이 완성되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Drafts 5 앱의 활용성이 너무 좋다는 점이다. 이 앱은 기본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담아두는 텍스트 에디터이지만, 저장된 텍스트를 다양한 액션을 통해 처리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개념을 가진 앱이다. 버전이 5 씩이나 되었으니 당연히 오랫동안 사용된 앱이고, 나도 4 버전까지는 유료 앱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가, 5 버전이 나오면서 앱은 무료로 바뀌면서 구독제가 되어서 한참 동안 사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구매하지 않아도 사용을 할 수는 있지만, 이 앱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각종 액션을 편집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구독을 해야만 한다. 대신에 구독을 하면 iOS와 Mac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일년에 $19.99라는 가격이 어떻게 보면 비싼 가격일수 있지만, 지금 제공하는 기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써 놓고 이걸 여러 가지 액션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빛을 발하는 경우는, 예를 들면 새해 인사를 위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비슷한 문자를 보내는 경우 Drafts 앱에 문자 내용을 써 놓고 계속 메시지 액션을 수행하면 문자 앱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다. 인앱 구독인 프로를 활성화한 경우에는 액션을 수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서 넣을 수 있는데, 문자의 경우 첫 줄에 받는 사람 이름을 넣고 둘째줄부터 문자 내용을 입력하면 메시지 수신인까지 자동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액션은 ’10년일기’이다.

’10년일기’는 ’01월 07일’이라는 제목의 노트에 일기를 계속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최대 366개의 노트가 생길거고 (02월 29일 포함) 여기에 일기가 쌓이는데, 최근 내용이 위로 올라오도록 되어 있다. 01월 01일에 일기를 쓰면서 작년, 2년전, 3년전에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뒤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방식의 노트가 가진 장점이다. 오래전에 펀샵에서 10년 일기라는 일기장을 판매했는데, 여기에는 날짜별로 10년치 칸이 미리 만들어져 있어서 10년간의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여기서 착안한 방식이고, 에버노트에 기록을 하고 있다. 노트의 경우 append도 가능하지만 prepend도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최근 일기가 가장 위에 올라오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이런 용도로 이전에는 WriteNote Pro라는 앱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앱은 안드로이드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고 사진을 붙여 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에버노트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그림 파일 첨부가 가능한 에버노트의 특징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Drafts 5WriteNote Pro보다 나은 점은, 에버노트 뿐만 아니라 대단히 많은 종류의 엔드포인트에 대한 액션을 지원한다는 점, 그리고 여러 개의 액션을 순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자 이외에, 에버노트에 남기는 노트를 그대로 드롭박스, 원드라이브, 구글 독스 등에 남길 수도 있고, 별도의 파일로 저장할 수도 있다. 또 블로그 글을 마크다운으로 기록하고 나면 바로 워드프레스로 보내서 임시글로 저장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맥용 Drafts 앱도 나와서, 맥에서 텍스트를 편집할 수 있다. 물론 맥에서의 액션은 제한적이지만, 텍스트 편집 자체는 맥에서 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쉽게 노트를 적을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클라우드로 동기화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 모든 애플 기기에서 동일한 텍스트 내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결국 애플 환경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적고 싶은 내용을 적어놓고, 그 이후에 그 글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할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뭐든 일단 기록을 해 놓고 보는 습관을 기를 수 있는 셈이다.

독서 일기: 베조스 레터

이 책은 우리 회사의 경영진 및 팀장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두 권의 책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한 권인 존 도어의 OKR 책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지금 당장 도입해서 사용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베조스 레터는 이보다도 더욱 강렬한 느낌으로 기억될 책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우연이나 행운이 많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상거래 사이트인 것도 맞고 베조스가 세계 최고의 부자인 것도 맞는데,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 동안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 인물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베조스가 이야기한 일과 성공의 원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리되지 않은 채 내가 그 동안 생각해 왔던 여러 가지 생각의 단초들이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내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것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해 보았는지가 아니라 실행하고 체화했는지이다. 생각을 해 보는 것으로는 아무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다시 피드백을 얻어서 개선하는 노력이 반복되어야만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회사가 나름대로의 상황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다름이 다른 전략과 다른 실행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혼자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원칙이 필요하고 그 원칙은 다름을 넘어서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기본이어야 한다. 그 기본은 결국 그걸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독서가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승진 축하 받고 쓰는 이야기

지금 일하고 있는 스탠다임은 2015년에 시작되었으니 이제 5년이 된 젊은 회사다. 내가 2019년 6월에 입사했는데 나보다 뒤에 들어온 멤버가 꽤 많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작년 6월에 ’20명짜리 회사’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금은 30명이고 올해도 꽤 많은 신규 입사자를 뽑을 예정이다.

빠르게 규모가 커지는 회사의 고민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문화나 체질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큰 어려움일 수 있는데, 최소한 내가 본 20명에서 30명까지의 성장에서는 회사의 문화가 바뀌지 않고 여러 가지 면에서 강화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오전 10:30 출근 오후 05:30 퇴근이라던지 아이맥 (또는 아이맥 프로) 지급 및 맥북/아이패드 프로 중 택1이라던지, 아니면 병가는 휴가 일수에 산입하지 않는다던지… 업무나 사내 복지 측면에서 파격적인 부분이 많이 있지만 (이 글 참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평적이고 일 중심적인 관계에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 입사할 때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였지 어떤 포지션에서 일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처우 협의를 할 때 나는 내 포지션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고 회사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 LinkedIn 페이지를 업데이트할 때 직급을 뭐라고 써야 하는지 고민을 좀 했다. 그래서 여기에는 그냥 Scientist라고 적었다. 나중에 동료들의 명함을 보니 대체적으로 Senior Scientist로 적고 있어서 명함에는 Senior Scientist라고 적었다. 실제로 경영진을 제외하면 사내에서 뭔가를 가지고 구분하는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뭐라고 적든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최근에 해외 출장을 가서 굉장히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LinkedIn에서도 많은 1촌을 맺게 되어서 다시 한 번 페이지를 업데이트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Senior Scientist로 적는게 맞겠다 싶어서 그렇게 수정을 했다. 사실 수정을 한다고 한건데, LinkedIn 사이트에서는 이걸 승진으로 보고 Hanjo 님이 Standigm Senior Scientist(으)로 승진했습니다. 축하해주세요!라는 소식을 써 버린거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 주시고, 오늘은 전화까지 와서 “승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인사를 들었다.

사실 승진한게 아닌데 승진 축하를 받고 보니 (그것도 많은 외국 친구들을 포함해서) 축하해 주시는 분들에게 일일이 승진 아니라고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축하를 받고 승진한 척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회사에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 개편을 하게 되었고 (사람 수는 늘고 있고 처음 조직 개편을 하는거니 당연하긴 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에서 한 개의 팀을 맡게 되었다. 여전히 상하의 개념은 없지만, 좀더 중간관리자에 가까운 역할을 더 많이 수행하게 되었다는 면에서는 승진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참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맥용 프로그램들

무려 12년 전에 Mac Applications라는 제목의 블로그 글을 쓴 적이 있다. 2007년에 맥북 구매를 시작으로 맥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쓴 글이니 맥에 대해 뭔가를 잘 알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2007년과 지금의 비교

텍스트 에디터와 관련해서 Smultron을 적고 TextMate는 CJK 문제가 있다고 적었는데, 지금 내가 맥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텍스트 에디터는 TextMate 2.0이다. 이전에 Sublime Text 구매한 것이 있어서 설치는 되어 있지만, 최소한 맥에서는 TextMate를 훨씬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실 코드를 적는 일이 아니라면 이런 것보다 Drafts 5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일 수 있다. (이 앱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을 해도 모자랄 정도이기 때문에 여기에 길게 적지는 않는다)

iCal도 지금은 구글 캘린더로 변경해서 쓰고 있고… 사실 회사에서의 일정관리와 개인 일정 관리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호스팅을 받고 있는 서버에서도 CalDav를 지원하지만, 별로 사용을 하지는 않고 있다. 어디가서 맥의 장점이 iCal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 실제로 맥에서도 Fantastical 2를 사용하고 있다.

iPhoto, iDVD, PhotoBooth 중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은 포토앱 뿐인데, 그나마도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고, QNAP 나스에 사진을 모으면서 Qphoto 앱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사진에 관한 한 여러 군데 백업을 해 두는게 중요하니 iCloud 외에도 구글 포토, 개인 나스 등에 분산해서 보관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거나 보기는 하지만 보정을 하거나 슬라이드쇼를 만들거나 인화를 하는 경우는 잘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포토샵 류의 프로그램은 쓰지 않고 있다.

Bruji사의 Pedia류 제품들을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음악/영화/책 할것 없이 모두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별도로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음악과 영화에 대해서는 NAS에서 plex 서버를 이용해서 관리하고 있고 책의 경우에는 북트리라는 iOS용 앱을 이용해서 관리하고 있다. 다만 소비 자체는 스포티파이, IPTV, 넷플릭스, 리디북스 등에서 주로 하고 있고, 그런 사이트에 기록이 잘 남아 있기 때문에 별도로 내 미디어를 관리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느낌이다.

논문 관리는 BibDesk를 언급했지만, 지금은 Zotero를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 Devonthink도 사용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는 EagleFiler를 더 많이 사용했었고 이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를 번역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종류의 자료 정리 프로그램을 별도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맥용 프로그램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맥에서 매일 쓰고 있는 프로그램은 대략 다음과 같다.

  • Alfred: 이제 맥에서 Alfred 앱이 없으면 생산성이 반으로 떨어져 버릴 듯. 파워팩을 구매해서 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
  • Postbox : 이메일 클라이언트. 모질라 선더버드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유료 구매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Focus pane.
  • Fantastical 2: 캘린더 프로그램. 모바일에서는 Calendars5를 사용 중. 이제 캘린더 프로그램들은 뭘 써도 좋은 상황이 된 듯.
  • ForkLift: 파일 관리자 및 FTP 클라이언트. 윈도우용인 Total Commander와 유사한 double pane 방식의 파일 관리자. 물론 Total commander만큼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맥에서는 쓸만한 대안.
  • 1Password 7: 비밀번호 관리 프로그램. 구독형으로 바뀐 것은 사악하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지만, 여러 대의 맥과 iOS 기기를 동시에 사용할 때는 역시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한 때 Sticky Password를 썼었는데, 윈도우와 안드로이드에서만 사용한다면 그럭저럭 사용은 가능하지만 맥과 iOS에서는 사용자 경험 차이가 너무 크게 난다.
  • PopClip: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는 프로그램. 뭔가 텍스트를 선택하면 바로 액션을 할 수 있는 팝업이 뜬다.

이외에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작은 프로그램들은 Display Maestro, Keycue, Rocket Fuel, Popchar 정도.

2019년을 보내며

2019년이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다. 2019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니 내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런 변화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나름 잘 대처해 온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 뿐.

첫번째. 독서.

2019년에는 모두 170권의 책을 읽었다. 목표는 한 달에 10권씩 총 120권을 읽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읽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1월에 13권을 시작으로 2월부터 11월까지 6, 8, 7, 15, 24, 15, 19, 15, 15, 13권을 읽었고 12월에 20권을 읽어서 총 170권이 된 셈이다. 2~4월 간에 페이스가 좀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월 15권 정도를 읽은 페이스이다. 물론 책의 권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떤 책을 읽느냐, 또 읽은 책을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와 같은 여러 가지 사항들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책을 읽는 습관이 확실히 정착되었다고 말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170권의 책 중에서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북트리 앱에 기록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내 마음대로 정한 카테고리별 최고의 책은 다음과 같다.

두번째. 이사.

사는 지역을 바꾼다는 것은 큰 변화이다. 내게도 큰 변화이지만 사실은 가족들에게 더욱 큰 변화이고,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많은 커뮤니티로부터 상당히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내는 물론 전학을 해야 했던 아이들에게도 매우 큰 변화였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잘 적응을 해 준 것이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다. 나는 평생을 거의 한 동네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사를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었고, 자세히 보아야 알게 되는 많은 일들을 오래 보고서야 알게 되는 스타일이었다. 이제는 자세히 보고 마음을 써야만 알게 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세번째. 회사.

올해 많은 것들을 질렀지만, 역시 새로운 회사를 지른 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40대 후반에 접어드는 시점에 직장을 옮긴다는 것, 그것도 나름 큰 회사에서 작은 벤처 회사로 옮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는 사람이 이런 내용으로 내게 상담을 한다면 아마 말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실제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 모든 면에서 이전에 비해 나아진 것을 느낀다. 이전 직장 역시 좋은 곳이었다. 많은 혜택을 받았으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전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직을 하게 된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기민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벤처 회사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문화 속에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회사의 성공과 개인적인 성공이 일치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역시 스스로를 피고용인이라고 생각하는 수동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요소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느낌이 있더라도 사업 자체가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리즈 B를 마친 회사라면 곧 성과를 내고 지속 가능한 회사임을 증명해 내야 하는 것이니, 그 과정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결국 신약 개발이라는 길고 어려운 과정의 맨 앞에서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를 가지고 2020년을 시작하려고 한다!

독서 일기: 인간 본성의 법칙

올해 들어 지금까지 147권의 책을 읽었고, 5월 이후에는 꾸준히 한 달에 15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으니 이틀에 한 권 정도의 속도로 책을 읽어온 셈이다. 물론 이 중에는 100 페이지 내외의 짧은 책들도 많이 있고 (주로 범우문고나 살림총서 같은 시리즈물) 장편 소설도 있기 때문에, 생각할 것이 많은 인문 서적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북트리라는 iOS 앱 덕분에 각 책을 언제 읽기 시작해서 언제 마쳤는지도 모두 기록을 할 수 있다)

마이클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은 8월 24일에 읽기 시작해서 11월 17일까지 읽었으니 (물론 그 중에 틈틈이 책을 읽어오기는 했지만) 거의 석 달을 꼬박 이 책에 투자를 한 셈이다.

말이라는 것, 글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적절한 정도를 찾는 것이 참 어려운 법이다. 너무 짧아지면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너무 길면 장황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제목은 (특히 법칙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레토릭 같은 면이 있는데, 그 법칙이 세가지, 다섯가지, 열가지 정도까지는 그럴 듯 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서처럼 18가지나 되면 그 법칙을 외우는 것도 힘든 상황이니 법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비하면 꽤 장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열 여덟가지의 법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기술 방식은 각 법칙마다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유명한 인물의 사례를 들고 이로부터 각 법칙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사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내게는 꽤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책이 꽤 긴 책이기도 하지만 (거의 63만자인데,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우울할 땐 뇌과학>이 약 18만자 정도 되니 이런 책 세 권이 넘는 분량이다) 이런 기술 방식의 단순함 때문에 빠르게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솔직히 책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서로간에 잘 들어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끼워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어서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 특히 모든 사람이 인간의 본성을 배우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있어서만큼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고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단순한 내용을 좋아하기 쉽지만 진실이란 항상 그것보다는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법칙이라는 말이 주는 단순함과 가벼움에 비해 그 내용은 훨씬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자세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제안을 따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마이클 그린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단 평생동안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이상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전제를 동의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펼쳐보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진지하고 세밀하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반대로 가볍고 빠르게 읽는 편이다) 곱씹고 생각할 부분이 많이 있는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