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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alm Shouting! &#187; lordmis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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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삶의 작은 향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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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장 중요한 가장의 역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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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1 Jun 2010 04:15:2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Life]]></category>
		<category><![CDATA[가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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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역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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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가장의 제일 큰 역할은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것이다”라는 (김훈의) 천박한 선언 앞에서 “맞아, 그거야”라고 수긍하고 넘어갈 수 없었기에 가장이 해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가장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해주는 남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은 무엇일까?</p>

<p><a href="http://daswandern.tistory.com/entry/김훈과-대한민국-우파가-살아가는-법">“가장의 제일 큰 역할은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것이다”</a>라는 (김훈의) 천박한 선언 앞에서 “맞아, 그거야”라고 수긍하고 넘어갈 수 없었기에 가장이 해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p>

<p>나는, 가장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strong>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해주는 남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strong>이라고 생각한다.</p>

<p>아버지가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한 곳인지를 배우게 된다.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한 몸으로 맺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생성된 가정이라는 곳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되어야 한다. 자녀들은 ‘한 여자(혹은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생과 아픔을 참아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그를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치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p>

<p>무엇보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집 나간 아내를 돈을 주고 데리고 오는 호세아의 모습, 집 나간 아들을 매일 집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아흔 아홉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이 아버지와 겹쳐진다면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설명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p>

<p>가정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은 단지 서로를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가정마다 가지고 있는 목표나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삼위가 한 존재 안에서 아름답게 교제하며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신비처럼, 가정 역시 그렇게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어지는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최소한 이런 모습을 이루기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가치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만큼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p>

<p>‘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나 소중한 일이어서, 가정을 위해 할애할 여유와 시간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소중한 일을 이루기 위해 가족 구성원의 도움과 지지’가 얼마나 큰 힘과 용기가 될지를 상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도움과 지지를 확보하는 일은 ‘귀찮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다. 설사 결과적으로는 실패하더라도, 가족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가정에 대해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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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CM 음반 가수 != 찬양 사역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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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0 May 2010 03:05:08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Christianity]]></category>
		<category><![CDATA[CCM]]></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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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찬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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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한 편의 글. CCM 앨범을 막 낸 사람은 신인이 아니고 프로여야 한다는 말로 기사가 시작된다. (찬양 사역자에 대한 조언으로서 이 글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말해두고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 우선&#8230; 정확하게 용어를 정의하고 싶다. CCM은 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의 줄임말이다. 컨템포러리라는 말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기독교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기독교인에 의한, 기독교인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8347">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한 편의 글</a>.</p>

<p>CCM 앨범을 막 낸 사람은 신인이 아니고 프로여야 한다는 말로 기사가 시작된다. (<strong>찬양 사역자에 대한 조언으로서 이 글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strong>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말해두고 시작하고 싶다.)</p>

<p>그러나 우선&#8230; 정확하게 용어를 정의하고 싶다. CCM은 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의 줄임말이다. 컨템포러리라는 말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기독교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기독교인에 의한, 기독교인을 위한, 어느 쪽이든 의미가 통할 수 있을 것이다.</p>

<p>그래서 CCM으로 분류되어지는 음반을 출시한 사람이 반드시 ‘찬양사역자’여야 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찬양사역’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든 기독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사역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사역자로서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시야의 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p>

<p>‘찬양사역자’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교회나 기독교 단체의 예배나 행사 때 찬양으로 섬기는 사람을 ‘찬양사역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무료로 봉사하는 것은 아니고 보통 사례비를 받게 된다. 나는 찬양사역자가 사례비를 받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프로 사역자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합리적인 사례비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p>

<p>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찬양사역이라는 일이 결국은 대중가수들이 행사 뛰는 것과 비슷핟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음반 판매를 통해 많은 수익을 얻기 힘든 현 상황에 있어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좋은 음반을 내서 좋은 평가를 받는, 또는 인기가 있는 사람일수록 좋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면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는 찬양사역자들은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p>

<p>그러나, 대중가수들조차 자신의 음악적 완성을 위해서 행사 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음악이든간에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것은 존재 가치가 없다. 따라서 음악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청중과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다. 음반을 내는 것, 공연을 하는 것, 행사에 출연하는 것 그 모든 일들이 청중과 만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청중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완성된 음악을 음반으로 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p>

<p>결국, <strong>좋은 CCM이란 좋은 음악</strong>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와 영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CCM을 만드는 사람 역시 음악가라는 말이다. 음악가는 자신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음악계가 발전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어야 한다. <em>‘음반을 냈으면 프로답게 사역을 해야지’라는 점잖은 선의의 충고가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em>는 말이다.</p>

<p>주찬양 1집으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CCM 음악을 듣는다고 들어왔고, 최근에는 나 역시 이해하기 힘든 음반들을 많이 만났었다.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적인 색깔이 없이 ‘되는대로’ 만든 음반들을 들으면 사실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좋은 기독교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하고, 좋은 기독교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 역시 마련이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em>‘사역의 부담’을 덜 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CCM 음악이 성장할 수 있는 더 좋은 길</em>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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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urandot 음반 감상기 &#8211; 닐손/스테파노/프라이스/61년 빈 실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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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5 May 2010 01:56:2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Music]]></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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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바로 이 음반. 닐손의 투란도트와 디 스테파노의 칼라프라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조합. 게다가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류를 들을 수 있다. 지휘는 Molinari-Pradelli가 맡았는데, 이 지휘자가 카라얀이나 세라핀 같은 특급 지휘자는 아니지만 5-60년대의 시대를 풍미하던 많은 가수들을 데리고 많은 음반을 남긴 것을 보면 오페라에 있어 특별한 실력을 발휘하던 지휘자임은 분명하다. (10년 전 페라하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나를 포함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바로 <a href="http://www.amazon.com/Puccini-Turandot-Giacomo/dp/B001AE3F2A/ref=sr_1_17?ie=UTF8&#038;s=music&#038;qid=1273019770&#038;sr=8-17">이 음반</a>.</p>

<p>닐손의 투란도트와 디 스테파노의 칼라프라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조합. 게다가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류를 들을 수 있다. 지휘는 Molinari-Pradelli가 맡았는데, 이 지휘자가 카라얀이나 세라핀 같은 특급 지휘자는 아니지만 5-60년대의 시대를 풍미하던 많은 가수들을 데리고 많은 음반을 남긴 것을 보면 오페라에 있어 특별한 실력을 발휘하던 지휘자임은 분명하다. (10년 전 페라하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나를 포함한 많은 동호회 회원들에게 이 지휘자는 Erede나 Votto 같은 지휘자와 함께 “훌륭한 가수들을 등용하여 평범한 레코딩을 남긴 지휘자” 중의 하나로 평가받곤 했는데, 지금은 사실 그렇게 저평가될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정도의 진용에 빈 슈타츠오퍼라면 매우 훌륭한 진용이 아닐 수 없다.</p>

<p>레온타인 프라이스의 류는 여러 명의 류 중에서도 단연 상위에 놓을 수 있을만큼 훌륭하기 그지없다. 메트 실황 영상의 레오나 미첼과 더불어 가장 류 다운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p>

<p>디 스테파노의 칼라프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보인다. 실황 녹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반에서 스테파노는 등장 순간부터 상당히 강하게 노래를 부르며, 끝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한다. 낭랑한 (전형적인 리릭 테너의) 목소리로 50년대 칼라스와 함께 기적적인 레코딩들을 여럿 남기고, 60년대에 드라마틱 테너로 전향을 하는 중간기라고도 볼 수 있는 61년도의 레코딩이기도 하고, 칼라프가 워낙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어려운 역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출중한 결과물을 남긴 스테파노인만큼 전반적으로는 칼라프 역시 열정적으로 잘 소화해 냈다고 볼 수 있겠다.</p>

<p>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스테파노의 최대 약점은 고음 영역에서 공명되지 않은 소리를 쥐어짜는 듯한 느낌으로 부른다는 점인데 (이 부분에 대해 파바로티는, 자신이 스테파노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에게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다가는 오래 노래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칼라프를 부를 때 고음은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과시해야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만큼 풍성하고 강력한 고음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분명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투란도트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수수께끼는 셋, 삶은 하나” 부분에서 그의 하이 C는 사실 좀 듣기 괴로울 정도이다. 코렐리나 파바로티의 작렬하는 짜릿한 하이 C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전반적인 면에서 스테파노는 대단히 훌륭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으므로, 그의 고음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도밍고의 삑사리도 용서받지 않았는가!) 이 음반을 듣고 매우 만족할 것이 틀림없다.</p>

<p>사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스테파노와 가장 많이 비교하게 된 가수는 바로 호세 카레라스이다. 카레라스는 한때 “스테파노의 재래”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두 가수는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클래식의 리뷰에서 황지원씨는 카레라스를 “신비한 면을 가진 칼라프 왕자로서 제격”이라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이 음반의 스테파노는 이런 면에서 보면 “신비함” 보다는 “열정”을 떠올리게 되는 연주를 해 주고 있으며, 카레라스의 진지함이 음반 쪽에 더 어울린다면 스테파노의 열정은 연주회장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p>

<p>그러나, 이 음반의 백미는 타이틀롤을 맡은 비르지트 닐손이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투란도트로 알려져 있지만, 최소한 내게는 그녀의 다른 음반들에서의 노래가 그 정도로 뛰어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의 닐손은 다른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투란도트들 (심지어 자신의 다른 녹음들)을 간단하게 뛰어넘는다. 첫 등장에서부터 그녀의 소리는 간단하게 모든 극장을 채우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마치 “이제 이 오페라가 시작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고음에서의 충만한 기백은 말할 것도 없고, 저음에서조차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실황에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잉게 보르크, 조운 서덜랜드, 카티아 리치아렐리, 몽세라 카바예, 에바 마튼 등 투란도트로서 뛰어난 녹음을 남겼거나 좋은 실황 영상물을 남겼던 어느 소프라노도 이렇게 완벽한 투란도트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한 목소리 하는 레온타인 프라이스마저 그녀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저 불쌍한 노예일 뿐이다.</p>

<p>이 음반의 맨 뒷편에는 스테파노의 아리아가 몇 개 실려 있다. 이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구매의 포인트는 역시 스테파노라는 뜻일게다. 스테파노의 칼라프는 이 음반을 포함하여 둘 뿐인데, 나머지 하나는 AM 라디오를 훌륭한 음질로 생각하게 해 주는 극악의 음질로 유명한 만큼 이 음반의 홍보 포인트는 스테파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음반을 모두 듣고 난 후에는 생각이 확 바뀌게 될 것이다. 이 음반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래야 하는 대로) 바로 투란도트 역의 비르지트 닐손이기 때문이다. 닐손 이후 많은 가수들이 이 역에 도전해 왔고 일부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과연 이 음반에서 보여준 닐손의 모습을 능가할 수 있는, 아니 이와 비슷한 정도의 성과만이라도 거둘 수 있는 가수가 나올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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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끄 엘룰의 &#8216;잊혀진 소망&#8217;을 읽으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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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Mar 2010 04:19:43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Book]]></category>
		<category><![CDATA[Christianity]]></category>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category><![CDATA[서평]]></category>
		<category><![CDATA[소망]]></category>
		<category><![CDATA[잊혀진 소망]]></category>
		<category><![CDATA[자끄 엘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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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자끄 엘룰의 &#60;잊혀진 소망&#62;을 읽고 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번째 부분은 “지금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다”는 명제를 설명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반응이다”라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다는 진단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수준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소한 공동체 단위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자끄 엘룰의 &lt;<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711619" target="_blank">잊혀진 소망</a>&gt;을 읽고 있다.</p>

<p>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첫번째 부분은 “지금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다”는 명제를 설명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반응이다”라는 것이다.</p>

<p>다른 무엇보다도 <strong>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은 침묵하고 있다</strong>는 진단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수준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소한 공동체 단위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끊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 구약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최소한 구약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를 향한 말씀이 개인에게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8217; 방식으로 나타난다. 즉, 하나의 공동체가 그 구성원 중 누군가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p>

<p>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말씀을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 교회의 조직이 강화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들은 나쁜 현상은 아니지만,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해석학이 발전하는 것도 결국은 ‘역동적인 성령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주어진 텍스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해 보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없을 때, 즉 성령에 의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을 잃었을 때, 우리는 결국 성령의 조직하심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p>

<p>구약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외침들이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필사적인 항의요 안타까운 절규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사사 시대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서도 동일하게 ‘범죄’ &#8211; ‘회개’ &#8211; ‘회복’의 사이클이 나타나는 것을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지’라고 생각을 해 오고 있었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시간이 말씀하시는 시간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p>

<p>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율법’을 세웠을 때, 그 엄청난 세부 사항들과 금기들, 그리고 그것을 어겼을 때 나타날 것이라고 선포된 징벌들…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실제로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율법을 지키지 않은 죄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일부러 그 율법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징벌(혹은 축복)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것들을 평생 거의 한 번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strong>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것 자체가 어쩌면 굉장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strong>.</p>

<p>구약의 말라기 선지자부터 신약의 세례 요한에 이르는 4백여년간의 침묵기를 생각해 본다. 그 시간 속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실망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었을까? 아니, 그들 중의 소수는 역동적이고 주권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대신할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을 것이다. 그것이 종교적인 엄숙주의이던지, 아니면 말씀 해석에 대한 열심이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었든지 간에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반응들이 매우 당혹스럽고 치열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침묵’이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일상을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겠지.</p>

<p>예수님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에 전적으로 맞추어져 있었음을 알고 있으면서, 그 나라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얼마나 반대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 분의 말씀이 강력하게 임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성령의 임재하심을 구하는 기도가 위선적으로 느껴질만큼 성령의 부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은 또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인가.</p>

<p>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으며,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 이 곳에 임재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소망이 아닐까. 그래서 소망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조용히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p>

<p>‘성령 충만’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성령 충만’이라는 말을 ‘<strong>와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너무나 달라서 참을 수 없는 상태</strong>’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이 정의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참을 수 없는 불일치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온전하게 체험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뜨겁게 하나님께 항의하고 도전하는 공동체 속에 스스로를 헌신하지 않는 한, 이 깨달음만으로 ‘성령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p>

<p>욥에게서 느끼는, 그리고 전도서에서 느끼는 강한 허무주의의 느낌이 사실은 이 ‘성령 충만’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욥기를 읽으며 느꼈던 하나님의 불가해성이 사실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욥이 하나님께 퍼부은 존재론적 질문에 답을 전혀 얻지 못하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질문 세례로 입을 다물게 된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들었다’는 사실, 하나님이 그에게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목이 터져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던 하나님이, 내용이야 어떻게 되었건 지금 이 시간 내게 무언가를 말씀을 하신다는 사실만큼 놀랍고 기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저 ‘스스로 드러내고자 하실 때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말인데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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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도인의 경제관 &#8211; 나의 경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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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2 Jan 2010 04:55:06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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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0년 1월 12일 오전 트위터에서&#8230; Namturtle98 기독교적 경제관은 뭘까.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음 좋은 사람들이 부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본주의 사회. 곧 돈이 최고인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lordmiss @Namturtle98 돈을 사랑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성경에 있나요? 별로 고민하실 일이 아닌 듯&#8230; ^^ Namturtle98 @lordmiss 그렇군요. 하나님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10년 1월 12일 오전 트위터에서&#8230;</p>

<blockquote>Namturtle98 기독교적 경제관은 뭘까.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음 좋은 사람들이 부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본주의 사회. 곧 돈이 최고인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lordmiss @<a href="http://twitter.com/Namturtle98">Namturtle98</a> 돈을 사랑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성경에 있나요? 별로 고민하실 일이 아닌 듯&#8230; ^^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그렇군요. 하나님만 따라가다 보면 부는 따라오는 것이겠죠. 단순하게 생각해야겠네요. 반대로 부를 쫓아가는 삶은 결국 디모데 전서의 말씀대로 온갖 악의 뿌리가 되겠죠.

lordmiss @<a href="http://twitter.com/Namturtle98">Namturtle98</a> 하나님을 따르는 것과 부가 따라오는 것사이에는 별 연관성이 없어요. 아주 단순하죠.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그렇군요. 부자든 가난하든 복음안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죠. 바울의 고백대로.   하지만 부자가 되고픈 저의 욕망.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안타깝고 해서 적은 글이랍니다.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사실 성경대로의 가치관과 일에 대한 철학. 하나님의 소명 같은 의식이 충분히 뿌리내려 있다면 부자가 안되는게 이상하지 않나 요즘 생각해 봅니다. 혹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lordmiss @<a href="http://twitter.com/Namturtle98">Namturtle98</a> 부자 되지 마세요. 천국 가기 무지 힘들어요. 진짜루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ㅎㅎ 네. 맞죠. 그런데 전 구원받았고 천국이 제 집이니깐 돈많이 벌어서 교회도 세우고 선교사도 돕고 해야겠죠. ㅎ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로드미스님이 담에 블로그에 성공적인 경제관에 대해 깊이있는 글 한번 적어주세요. 제게 적었다고 맨션 함 날려주시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blockquote>

<p>이 글을 적게 된 배경은 위와 같다.</p>

<p>아래에 적은 것은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적 경제관과 관련된 이야기. 별 논리는 없이 적어내려간 내용이다.</p>

<p><strong>1. 성경의 부자</strong> 성경에 많은 부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가난한 사람들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간에, 성경이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재물 소유 여부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p>

<p><strong>2. 예수님의 경제관</strong>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하셨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재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까지 자신과 같은 생활을 요구하셨다. 전도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있어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신 것이 아닐까.</p>

<p><strong>3. 바울의 경제관</strong>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이 바울의 경제관을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p>

<p><strong>4. 청부론</strong> 얼마전 청부론 논란이 있었다. 하나님의 원칙을 잘 지키면서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하면 안된다는 것이 골자였다고 생각된다. 이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부지런함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strong>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라면 훌륭한 개인 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돈을 버는데 있어서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strong>이기 때문에, 신앙과 부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의미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개인 윤리 중에서 부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검소함과 소명의식 정도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하던지 아니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대 사회는 ‘돈이 돈을 버는 사회’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부자가 된 케이스를 예로 드는 것은 복권 당첨으로 돈을 번 케이스를 말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검소함과 소명의식이 중요한 개인 윤리이기는 하나, 그 윤리는 부자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지금까지 사람 사는 사회가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런 사회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인정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냉혹한 세상의 논리만 살아남는 곳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의 권세를 마귀가 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p>

<p><strong>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strong>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도 짓고 선교사도 후원하면 하나님이 그걸 기뻐하실까? 사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짓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큰 교회에 대한 질책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를 위해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은 발견할 수 없다. 그 분이 인간이 만든 성전 가운데 제한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은 눈에 보이는 멋진 것에 잘 현혹되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만을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따르기를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며, 가장 먼저, 가장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재물이다. 하나님은 결코 재물로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 드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냥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대로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말했다. 구원받았으니 돈 좀 벌어서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선교도 도와야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교회건 선교이건간에 돈으로 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믿음이며, 선교에 필요한 것 역시 돈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돈 벌어서 교회에 내 놓고 자기 중심적인 삶에 대한 마음의 안식을 누리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그냥 자신의 삶 전체를 내 놓아야 한다. 성경에서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이 방해된 사건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보시라.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도대체 하나님이 왜 자신의 알량한 (그것이 수천억이든 수십조이든간에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재산을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p>

<p><strong>6. 결론</strong> 최대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야기를 해 본다. (사실 사회적인 부분, 공동체성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안타깝지만 내게 아직 그만한 내공이 없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제각기 다른 모습과 다른 재능들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 하고,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른다. 이런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달란트’라고 부르며,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물도 그와 같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하나이고, 그것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된다. 어떤 기독교인도 ‘하나님 뜻대로만 살면 키가 커질 수 있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뜻대로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어’라고 (진심으로) 말한다. ‘재물이 많다’와 ‘키가 크다’, 또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정확하게 같은 레벨에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돈을 버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p>

<p><strong>7. 추가</strong> Namturtle98님의 ‘전 구원받았고, 천국이 제 집이니까…’ 라는 말 속에서 구원관과 관련된 말을 추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구원은 일회적인 사건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성경은 강조한다. 바울은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조언한다. 일단 구원은 받았으니, 이제 돈 좀 벌어봤으면 좋겠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로 주어진 구원을 값싼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내 삶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더욱 많이 닮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을 뿐, 돈을 벌거나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일 따위의 사명은 없는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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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의교회 재건축 논쟁과 관련된 생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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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1 Jan 2010 10:27:17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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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교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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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교회 재건축 관련 논란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를 봐도 ‘교회의 일원’이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교회 재건축 관련 논란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strong>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strong>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p>교회는 ‘<strong>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strong>’이다.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를 봐도 ‘교회의 일원’이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많았을) 배교자들) 더 어려운 것은 ‘공동체’라는 단어에 있는데, 이 공동체라는 것이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정도의 수준까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strong>교회 공동체는 아마도 가족 공동체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는 것</strong>임에 틀림없다. ‘핏줄’이라는 요소에 의해 지배받는 가족 공동체와 달리 이 공동체는 ‘믿음’이라는 요소로 지배받기 때문에 새로운 구성원의 추가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p>

<p>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어느 교회를 가 봐도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구원의 확신’ 보다는 ‘꾸준한 출석’이 더 중요하다. 사실, ‘구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개인 차원의 문제이므로 실제로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가족 공동체’ 수준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p>

<p>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일 때, 그리고 그 모임이 진정한 ‘공동체’일 때,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p>

<p>그러나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없고 공동체 의식의 순수성 역시 검증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 순간이 언제인지 수치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가 회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빠르게 <strong>성장하는 교회도 그 교회 특유의 공동체성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strong>.</p>

<p>결국, 교회가 자신의 공동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strong>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까지 스스로 분열하는 것</strong> 뿐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 분열이 실제 교회의 분열을 의미하든, 아니면 구역, 가정교회, 지교회 등의 세부적인 조직을 의미하던간에 상관없이. 즉, <strong>본질적으로 교회는 분열하게 되어 있다</strong>.</p>

<p>분열하지 않고 크기를 키워가는 교회는,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즉, 스스로의 공동체성의 필수 요소들을 조금 포기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던지, 혹은 공동체성의 유지를 위해 신앙의 요소가 아닌 다른 요소를 도입하던지.</p>

<p>많은 경우,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담임목사님에 대한 애정 (혹은 충성심)이다. 그리고, 신앙의 본질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보이는 어떤 지엽적인 요소를 강조함으로서 여타 교회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전략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새벽기도가 뜨거운’ 교회, ‘제자 훈련이 우수한’ 교회, ‘선교에 매진하는’ 교회 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들이다.</p>

<p>어느 것도 그 자체만으로 비판을 받을만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교회의 크기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p>

<p>네 개의 복음서가 서로 다른 신앙공동체에 전승되던 믿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strong>믿음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 전승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의미</strong>한다. 고대와 같이 공동체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서 공동체들간에 네 복음서 공동체의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거리일 수는 없다는 생각만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p>

<p>결국, 보편적인 종교가 되기 위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부각시키려는 교회의 욕구, 그리고 차이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말로 카톨릭을 추구하는) 교회의 조바심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p>

<p>수만명이 예배드릴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억의 돈을 들여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는 사랑의교회와 관련해서, 그 돈을 어디다 쓰는 것이 좋겠다라던가, 헌금 강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수만명의 성도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가를 묻고 싶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힘이 과연 같은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적 신앙인지 아닌지를 묻고 싶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만명의 성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 공동체적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조차 궁금증을 갖고 있는 내게는 그 대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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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oughts 인터페이스 번역 &#8211; 씁쓸한 마무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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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Dec 2009 01:18:59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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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MacStories에서 Thoughts에 관한 글을 봤다. 사실 기능적인 면에서야 Journler나 MacJournal같은 강자들이 있기 때문에 맥에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Journler 개발이 중단된 사실은 내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는 돈을 내고 라이센스를 구매까지 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하다.) 그래도 내 눈을 끌어당긴 요소는 바로 아름다운 인터페이스였다. NoteBook같은 경우가 그런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acstories.net/">MacStories</a>에서 <a href="http://thoughtsapp.com/">Thoughts</a>에 관한 글을 봤다.</p>

<p>사실 기능적인 면에서야 <a href="http://journler.com/">Journler</a>나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sitepage.php?page=85">MacJournal</a>같은 강자들이 있기 때문에 맥에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a href="http://www.journler.com/blog/2009/09/23/journler-development-ends-sprouted-shutting-down/">Journler 개발이 중단된 사실</a>은 내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는 돈을 내고 라이센스를 구매까지 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하다.)</p>

<p>그래도 내 눈을 끌어당긴 요소는 바로 아름다운 인터페이스였다. <a href="http://www.circusponies.com/notebook/features/">NoteBook</a>같은 경우가 그런데, 실제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갖는 것은 사용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a href="http://www.circusponies.com/notebook/features/">NoteBook</a>이 채용한 것과 같은 노트북을 실제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더 이상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 사용도 하지 않고 있지만, <a href="http://thoughtsapp.com/">Thoughts</a>의 경우에는 인터페이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p>

<p>재미있게도 이 프로그램은 아직 베타 버전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은 상황인데 사전 예약 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24 유로를 내면 이 프로그램과 <a href="http://creativebe.com/family/">Family</a>, <a href="http://creativebe.com/yum/">Yum</a>, 그리고 <a href="http://creativebe.com/resizeme/">ResizeMe</a>라는 프로그램 세 개를 번들로 주는 내용이다. 사실 번들 중에서 <a href="http://creativebe.com/family/">Family</a>는 조금 관심이 있지만 나머지 프로그램은 전혀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거의 5만원돈을 내고 구매한다는 것이 매우 모험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내년 1월에 베타 버전이 공개가 되면 그 때 시험을 해 보고 결정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p>

<p>이런 상황에서 <a href="http://www.macstories.net/news/thoughts-bundle-translators/">Thoughts 번역자를 찾고 있다는 MacStories의 기사</a>는 어떤 면에서는 내게 행운이었다. 이미 여러 프로그램들을 번역해 오면서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번역이라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자에게 이번 번들의 모든 프로그램 라이센스를 준다는 말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한글이 대상 언어에 포함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작정 개발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자원자를 거절한다는 것은 (큰 회사가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

<p>예상대로, 개발자는 매우 반갑게 답장을 보내 주었고, 베타 버전도 쓸 수 있게 되었다. 프로그램 실행 모습을 참고해 가면서 약 3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이 프로그램의 모든 인터페이스와 도움말을 한글로 번역할 수 있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특이하게 도움말까지 다 번역을 요구했기 때문에 다른 경우와 달리 시간이 좀 더 많이 소요된 것이다. 보통 인터페이스만 번역한다면 길어야 두 시간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번역을 하자마자 개발자에게 파일을 보내 주었고, 곧 한글 번역이 적용된 베타 버전을 받아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p>

<p>어제 밤에 개발자에게 연달아 두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하나는 프로그램들의 라이센스를 담고 있는 메일이었고, 여기에는 추가로 번역해야 할 문자열들이 조금 더 들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도착한 이메일은 약간은 황당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내부 회의를 해 봤는데 너무 많은 언어를 지원하게 되면 패키지 크기가 커지게 되므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2개의 언어만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즉, <strong>한글은 지원하지 않겠다는 말</strong>.</p>

<p>한국이라는 시장이 맥 소프트웨어에 있어서 매우매우 작은 시장이라는 것은 뭐 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도 이미 번역을 다 마쳤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한글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글 하나 더 넣는게 패키지 크기가 얼마나 커진다고!!</p>

<p>최근에 아이폰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벌써 20만명에 달하는 아이폰 유저가 생겼다고 한다. 앞으로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거라고 생각된다. 이 사용자들이 모두 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어 맥 사용자는 극소수가 아닐까&#8230;) 이들이 아이폰을 통해 애플의 소프트웨어를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맥으로 전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한국의 맥 소프트웨어 시장도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아이폰 사용자들의 경우 이미 돈을 지불하고 어플리케이션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맥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윈도우용 소프트웨어 시장과는 달리 정품 사용 비율이 더욱 높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나 역시, 윈도우를 쓸 때는 돈을 내고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본 적이 거의 없지만 맥으로 넘어와서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정품으로 구매하고 있으니까.</p>

<p>그래서 맥 소프트웨어 시장이 어느 정도 의미있는 크기가 되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더 이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본다.</p>

<p>어쨌든, <a href="http://thoughtsapp.com/">Thoughts</a> 매우 마음에 드는 소프트웨어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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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cStories 이벤트 당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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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Dec 2009 00:47:33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Internet]]></category>
		<category><![CDATA[MacStories]]></category>
		<category><![CDATA[Money]]></category>
		<category><![CDATA[당첨]]></category>
		<category><![CDATA[이벤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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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MacStories App Tree의 당첨자가 발표되었다. 당당하게 Money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여러 개의 맥용 및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 라이센스를 확보해 두고서는 MacStories App Tree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이벤트를 벌였는데, 그 내용이라는게, 자신을 twitter에서 follow한 후 이벤트 관련 트위팅을 올리고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 되는 간단한 거였다. 댓글에 자신이 갖고 싶은 어플리케이션 이름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acstories.net/news/apps-tree-winners/">MacStories App Tree의 당첨자가 발표</a>되었다.</p>

<p>당당하게 <a href="http://www.jumsoft.com/money/">Money</a>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p>

<p>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여러 개의 맥용 및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 라이센스를 확보해 두고서는 <a href="http://www.macstories.net/giveaway/the-apps-tree-giveaway/">MacStories App Tree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이벤트</a>를 벌였는데, 그 내용이라는게, 자신을 twitter에서 follow한 후 이벤트 관련 트위팅을 올리고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 되는 간단한 거였다. 댓글에 자신이 갖고 싶은 어플리케이션 이름을 적어 놓으면 random으로 추첨을 해서 라이센스를 나눠주는 방식이였다.</p>

<p>댓글을 달기 전에 찬찬히 위에 이미 올라와 있는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원칙은 한 사람 당 한 개의 댓글만 달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어플리케이션의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가 탐나는 어플리케이션을 꼽아보니 <a href="http://cocoatech.com/">Path Finder</a>와 <a href="http://www.jumsoft.com/money/">Money</a> 두 가지였다. 하나만 적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a href="http://cocoatech.com/">Path Finder</a>를 포기하고 (내게는 <a href="http://www.binarynights.com/forklift">ForkLift</a>가 있으니까) <a href="http://www.jumsoft.com/money/">Money</a>를 적었다. 무려 $39짜리인데다가, 이미 아이폰에서 아이폰용 어플을 쓰고 있는 터였고, 30일 트라이얼도 해 보고 마음에 들었었지만 선뜻 구매는 못하고 있었던 어플리케이션이다. 덕분에 재무 관리를 좀더 타이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p>

<p>가만히 보니,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굉장히 열심히 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포스팅하고 있었다. 모든 포스팅들이 상당히 내용이 알차다. RSS를 등록해놓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p>어쨌든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되어 기분이 좋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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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cheist의 nanoBundle, 그 경제적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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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03:04:2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free]]></category>
		<category><![CDATA[mac]]></category>
		<category><![CDATA[MacHeist]]></category>
		<category><![CDATA[nanobundl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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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Macheist는 재미있는 미션을 풀고 덤으로 소프트웨어 번들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맥 관련 커뮤니티이다. 이미 세 번의 번들 판매 행사를 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최근 두 번의 번들을 모두 구입한 바 있다. (두번째 번들 구입, 첫번째 번들 행사 때는 맥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에 Macheist에서 뭔가 새로운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acheist.com">Macheist</a>는 재미있는 미션을 풀고 덤으로 소프트웨어 번들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맥 관련 커뮤니티이다. 이미 세 번의 번들 판매 행사를 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최근 두 번의 번들을 모두 구입한 바 있다.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200">두번째 번들 구입</a>, 첫번째 번들 행사 때는 맥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p>

<p>며칠 전에 <a href="http://www.macheist.com">Macheist</a>에서 뭔가 새로운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간단하게 <a href="http://www.daisydiskapp.com">DaisyDisk</a>라는 프로그램의 라이센스를 공짜로 얻었다. 이 프로그램의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끝나고 나자, 이번에는 nanoBundle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번들 프로그램이 발표되었다. 이 행사를 간단히 말하자면, <strong>모두 여섯개의 맥용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공짜로 준다</strong>는 것이다.</p>

<p>이 번들에 포함되어 있는 프로그램들은 <a href="http://www.wonderwarp.com/shovebox/">ShoveBox</a>, <a href="http://www.hogbaysoftware.com/products/writeroom">WriteRoom</a>, <a href="http://iconfactory.com/software/twitterrific">Twitterific</a>, <a href="http://tinygrab.com/">TinyGrab</a>, <a href="http://www.freeverse.com/mac/product/?id=7019">Hordes of Orcs</a>, 그리고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Mariner Write</a>이다. 이 중에서 <a href="http://www.wonderwarp.com/shovebox/">ShoveBox</a>는 이미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고, <a href="http://iconfactory.com/software/twitterrific">Twitterific</a>은 고맙기는 하지만 이미 <a href="http://www.atebits.com/tweetie-mac/">Tweetie</a> 무료 버전을 잘 사용하고 있는 터라 별로 필요는 없을 것 같고, <a href="http://www.freeverse.com/mac/product/?id=7019">Hordes of Orcs</a>는 내가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터라 한 두 번 해 보고는 실행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a href="http://www.hogbaysoftware.com/products/writeroom">WriteRoom</a>은 갖고 싶었던 소프트웨어라 앞으로 자주 사용하게 될거라고 생각되며, <a href="http://tinygrab.com/">TinyGrab</a>과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Mariner Write</a>은 사용을 좀 해 보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동일 목적의 소프트웨어들, 이를테면 스크린샷 프로그램인 <a href="http://www.realmacsoftware.com/littlesnapper/">LittleSnapper</a>나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인 Apple Pages, <a href="http://en.wikipedia.org/wiki/No_free_lunch">Mellel</a>같은 것들을 대치할 수 있을지 시험을 해 봐야 할 것 같다.</p>

<p>맥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고, 공짜로 주는 것은 그냥 고맙게 받을 뿐이지만, <a href="http://en.wikipedia.org/wiki/No_free_lunch">공짜 점심은 없다</a>는 말이 있듯이, 공짜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공짜인게 없는 법이기 때문에 이런 행사의 뒤에 어떤 논리가 숨어있을지 곰곰히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Mariner Write</a>의 경우 모두 500,000 다운로드를 돌파하는 경우에만 라이센스를 준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최소한 500,000개 이상의 라이센스를 공짜로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입장에서 이런 엄청난 양의 공짜 라이센스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p>

<p>우선, 그들로서는 고객 지원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면이 있다. 공짜로 준다고는 하지만 Full License인만큼 고객 지원은 그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고객들과의 형평성이라는 측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p>

<p>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점이라면, 내가 <a href="http://www.macility.com/products/typinator/">Typinator</a>를 업그레이드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되돌아보면 답이 보인다. <a href="http://www.macility.com/products/typinator/">Typinator</a>는 타이핑 에러를 자동으로 교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사실 그보다는 단축키 용도로 더 많이 쓰고 있지만&#8230; 예를 들어 <code>lalc</code>라고 입력하면 자동으로 <code>lordmiss@lordmiss.com</code>라고 입력되는 따위의 일)  Macheist 번들 행사 중에 공짜로 제공된 프로그램이었고, 나는 이 프로그램을 대단히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Macheist 제공 라이센스의 경우에는 돈을 지불하는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메일이 날아왔고, 고심 끝에 결국 돈을 내고 업그레이드 라이센스를 구입하게 되었다.</p>

<p>이처럼 프로그램을 공짜로 제공하여 그 프로그램을 잘 사용하게, 그래서 필요를 많이 느끼게 해 놓고, 차후에 업그레이드 라이센스를 돈을 받고 판매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라이센스를 구매하는 고객이 0.1%라고 하면, 1000개의 공짜 라이센스를 뿌리면 단 한 개의 유료 판매밖에 기대할 수가 없지만, 500,000개의 공짜 라이센스를 뿌린 경우라면 장기적으로는 500개의 유료 판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p>

<p>고객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돈을 모두 지불하고 구매한 고객과 공짜로 라이센스를 얻은 고객의 지원 요구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Macheist에서는 번들 프로그램의 다운로드를 모두 자신의 서버에서 따로 제공하고 있는데다가, 프로그램의 고객 지원 기능을 하는 포럼 글타래를 따로 운영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사는 최소한 고객 지원과 다운로드 측면에서 자신의 서버가 져야 할 부담이 없다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p>

<p>결국, <a href="http://www.thelongtail.com/">Chris Anderson</a>이 말한 <em>공짜의 경제학</em>이 이런 방식으로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번들 행사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구글의 각종 온라인 서비스(구글 메일, 문서, 캘린더, 쩝&#8230; 너무 많다) 그리고 다운로드 서비스(구글팩에서는 이미 소프트웨어 다운로드도 가능하다)를 공짜로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구글 프로그램보다 그다지 나아보이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구매하는데 수십 달러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Macheist의 이번 nanoBundle 행사는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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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간단한 링크 관리 프로그램 &#8211; Quiet Rea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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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09 07:00:05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bambooapp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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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mac]]></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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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웹 브라우징이 정보 획득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링크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일이 중요한만큼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딜리셔스와 같은 온라인 웹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많이 있고, 이런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맥용 native application들만 해도 DevonThink, EagleFiler, Yojimbo, Together, Evernote, ShoveBox, Webbla 등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웹 브라우징이 정보 획득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링크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일이 중요한만큼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a href="http://delicious.com">딜리셔스</a>와 같은 온라인 웹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많이 있고, 이런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맥용 native application들만 해도 <a href="http://www.devon-technologies.com/products/devonthink/">DevonThink</a>,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83">EagleFiler</a>, <a href="http://www.barebones.com/products/yojimbo/">Yojimbo</a>, <a href="http://reinventedsoftware.com/together/">Together</a>,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217">Evernote</a>, <a href="http://wonderwarp.com/shovebox/">ShoveBox</a>, <a href="http://www.celmaro.com/webbla/">Webbla</a>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p>

<p><a href="http://bambooapps.com/kyw">Keep Your Word</a>를 개발한 bambooapps에서 새로 내놓은 <a href="http://bambooapps.com/free-stuff/">Quiet Read</a>는 메뉴바에 상주하면서 링크를 관리하는 작은 프리웨어이다. 복잡한 기능은 전혀 없고, 그냥 몇 개의 링크를 저장할 수 있고 이 링크를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만 한다. 복잡한 기능이 없는만큼 편리한 부분도 많이 있다. 내가 항상 띄워놓고 사용하는 EagleFiler의 경우에, 항상 실행해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링크를 저장하는데 1~2초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수집을 완료하고 나면 자신에게로 포커스를 이동시킨다. 반면 <a href="http://bambooapps.com/free-stuff/">Quiet Read</a>는 그냥 링크를 끌어다 놓으면 그만이다. 한참 작업을 한 후에 천천히 정리를 해도 되고, 필요 없으면 그냥 지워버려도 상관없다. 이 프로그램에 수백개의 링크를 저장할게 아닌만큼,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만 보면서 중요한 것은 저장해 놓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우면서 목록의 수를 대여섯개 정도로 유지하면 매우 효율적이다.</p>

<p><img src="http://bambooapps.com/wp-content/uploads/2009/10/qr_capture_1.jpg" alt="실행 화면" title="" /></p>

<p><img src="http://bambooapps.com/wp-content/uploads/2009/10/qr_capture2.jpg" alt="내용 확인" title="" /></p>

<p>클릭하면 위 그림처럼 링크를 보여주고, 오른쪽 클릭으로 메뉴를 볼 수 있다.</p>

<p>이전에 <a href="http://bambooapps.com/kyw">Keep Your Word</a>를 단어 암기 공부용으로 구입한 후에 메일과 트위터를 통해 몇 번 피드백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a href="http://www.twitter.com/ctarda/">개발자</a>가 내게 메일을 보내서, 자신이 이번에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인터페이스 번역을 해 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다. 기껏 10개 정도의 문자열만 번역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에 그러마고 약속을 했고 3분만에 번역을 완료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한글 상위에서 실행할 경우 한글 인터페이스가 지원된다. 혹시라도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개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길&#8230; 사실 그럴 건덕지는 거의 없어 보이긴 하지만&#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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