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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 – 어떤 짧은 논쟁 (2)

첫번째 이야기

창조론과 진화론 – 어떤 짧은 논쟁 글에 대한 non_believe님의 댓글.

말을 잘못이해 하신것같은데 제 트윗의 취지는 우리가 실제로 확인할수 있는 중간종의 모습은 화석등의 자료를 토대로 연구하는것인데 실제로 화석은 사진찍는것처럼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한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A와 B라는 종의 중간적인 화석C를 찾아냈다고 했을때 창조론자들은 그렇다면 A와 C는 중간이 어디있느냐 C와 B의 중간은 어디있느냐 식의 주장은 펴기 때문입니다. 이런식의 주장이라면 지겨울만큼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는 태도의 창조론자들의 말장난을 받아줄 이유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말한 성장과 사진에 대한 트윗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

어느날 김태희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실 저는 신봉선이었어요!”

그녀는 그 말의 근거로 자신의 과거 사진을 공개했다. 그 사진에는 신봉선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무엇일까? 창조적인 생각에 약한 나로서는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 하에) 두 가지 정도의 가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1. 그녀는 성형 수술을 (한 번 혹은 여러번) 받았다.
  2. 그녀는 3천년 동안 매일 화장과 마사지로 얼굴을 관리해 왔다.

1번 의견은 ‘성형 수술’이 뭔지 모르는 옛날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론이다. 2번 의견은 사람이 3천년 동안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동안 기록(사진이나 그림 따위)이 잘 남아 있기만 하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의견 되겠다.

‘급격한 변화’를 인정하는 경우 중간종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간종은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하면 몸짱이 될 수 있으니 매일 화장과 마사지 등을 열심히 하면 신봉선이 김태희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정도 변화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non_believe님의 예가 적당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종 간의 변화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 혹은 신봉선이 김태희가 되는 것에 비해 훨씬 큰 변화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생물들의 유전자 지도를 가지고 있는 지금도 새로운 생물 종의 창조라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을만큼 어려운 일임을 생각해 본다면,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유전자의 변화가 쌓여서 전혀 다른 생물 종이 생겼다고 믿는 것이 그렇게 합리적이지는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창조론과 진화론 – 어떤 짧은 논쟁 글에 대한 qwmp님의 댓글.

일단 창조”론”이라고 진화론과 동등한 무엇으로 가정하는 것이 문제고, 종교적 억지가 아니라 정말 과학적 입장에서라면 논증을 통한 반박은 억지반례의 추구보다 추구하는 논리에 맞는 체계와 그 예를 제공하세요.

창조론과 진화론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추구하는 논리에 맞는 체계와 그 예를 제공해 보라는 말에 답변할 수 있는 역량은 내게도, 그리고 많은 (이른바) 창조과학자들에게도 없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논증을 통해 창조론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분들에 대한 동일한 수준에서의 반박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런 종류의 논증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는 시도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사실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이다. 그 작업은 너무나 큰 일이어서 그것이 가능한지를 유추해 보는 것조차 너무나 큰 일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좀 모호할 정도의 큰 사상적 배경) 자체가 가지고 있는 논리적, 혹은 과학적 허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논증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현재의 과학으로 chirality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을까? 화학자에게 너무나 익숙한 개념인 chirality의 기원은 사실 어떤 방법으로도 그 기원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한 두 개의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테니.

이것으로 qwmp님의 질문에 대한 불완전한 (그리고 매우 모자란) 답변을 달아 보았다.

창조론과 진화론 – 어떤 짧은 논쟁

개인적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논쟁이 과학이란 어떤 것인가 혹은 신념이란 어떤 것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이 논쟁은 과학의 문제가 아닌 신앙의 문제일 뿐이지만, 이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과학이 과학을 핍박하는 혹은 믿음이 이성을 지배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트위터를 통해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화석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태도는 0이 커져서 1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 0.5가 있다고 얘기하면 0.5에서 1의 중간이 없다고 주장하고 0.75라고 얘기해 주면 또 그 사이의 중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장난을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가?

이렇게 답 멘션을 달았더니

@non_believe @qwmp 진화를 ‘오랜 시간에 걸친 점진적인 변화’로 이해한다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닐까요?

이런 답변이 다시 달렸다.

@lordmiss @qwmp 화석에 대한 반응이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자라서 현재 모습이 됐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중간중간의 사진만 있을 뿐 그 중간 단계는 자신이 증명할 수 없는데 과연 어떻게 어릴적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진화로 종의 다양성을 설명하기 위해 긴 시간을 상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의 변화라는 큰 사건을 설명하는데 있어 눈에 보이는 진화는 너무나 작은 변화이기 때문에, 매우 긴 시간 동안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화의 과정 중에 어떤 종류의 급격한 변화가 있어서, 짧은 시간에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긴 시간이라는 전제는 필요없어진다. 급격한 변화를 인정한다면 중간종의 존재 역시 보여줄 필요가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즉 종의 다양성이 작은 변화들이 무수히 반복되어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 중간종의 존재는 반드시 보여주어야 하는 일이 된다. 더군다나 현재 그 진화의 과정이 멈추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면 지금도 그런 변화들에 의해 종과 종 사이의 중간 상태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종과 종 사이의 중간종들은 생존에 적합한 형태가 아니므로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종 간의 변화는 연속적인 변화가 아니라 급격한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긴 시간이라는 전제도 필요없어질 뿐만 아니라 중간종의 존재를 보여주어야 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진화론자가 창조론자를 공박하기 위해 해야 할 말은 중간종 보여줬으면 되지 왜 또 보여달래? 가 아니라 중간종 안 보여줘도 아무 문제 없거든?이 되어야 한다. 창조론자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론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보기에는 큰 의미가 없는 공방일 뿐.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과학적인 사고, 혹은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산다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산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은 못 믿을 것 천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