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정리

연구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문헌 정리이다. 자연 과학 부분의 연구자라면 (물론 인문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누구나 나름대로 문헌 정리에 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하게 되는 방법은, 주제별로 출력된 논문을 모아두는 방법이다. 학위 과정 동안에는 특정 키워드로 검색된 모든 논문을 주기적으로 인쇄하여 모아 두었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나름대로 효과적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논문이 아니라 일반적인 내용의 논문이라면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좀 까다롭다.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거라고 생각하고 인쇄를 해 두어도 나중에는 어떤 내용인지, 왜 인쇄를 해 두었는지 기억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논문들은 그냥 따로 모아두는데,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면에서 효율적인 방법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저널이 웹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전처럼 인쇄된 논문을 물리적으로 모아야 하는 필요가 많이 적어졌다. 대신에 관리에 관해서는 좀더 좋은 방법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 같다.

윈도우에서는 Endnote가 아마 가장 유명한 프로그램일 것이다. 나도 몇 번 사용해 봤지만, pdf 파일을 다루는데 있어서 좀 어려움이 있었고, 내 돈을 주고 사기는 아까왔고, 크랙된걸 쓰자니 찜찜하고 해서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다. 결국은 pdf 파일의 이름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절하게 변경을 하고 수동으로 디렉토리를 관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논문들을 머리 속에 넣어둘 수 있는 한계까지만 활용할 수 있고, 특히 기억이 희미해져서 검색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검색 효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된다. (물론 이 때 구글 데스크탑 검색과 같은 데스크탑 검색 프로그램을 쓰게 되면 검색은 좀더 용이해진다. 이 경우에는 차라리 디렉토리 구분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맥북으로 전향한 후에는 BibDesk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Devonthink같은 프로그램을 써 볼까 했지만 가격의 압박에 포기를 했고, 그 대안으로 BibDesk를 쓰게 되었다. 이 소프트웨어의 장점은
1. 최근의 온라인 저널들은 거의 다 제공을 하고 있는 bibliography 데이터를 활용해서 정리를 할 수 있다는 점
2. pdf 파일의 이름을 자동으로 원하는 형태로 변경시켜 준다는 점
3. 키워드 입력을 통해 검색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
4. TeX과 integration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있겠다. 물론 이런 장점들이 BibDesk만의 장점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 무료라면 충분히 쓸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색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검색의 경우 맥에서는 Spotlight라는 강력한 검색 기능에다가 구글 데스크탑을 더해서 사용하게 된다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이런 기능까지 가지 않고도 키워드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검색을 할 수 있다.

아래는 이 프로그램의 스크린샷 한 장!

BibDesk-screenshot.jpg

복음서 해석

어떤 의미에서든 성경만큼 많이 연구되고 있는 문헌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만큼 광범위하게 오해되고 있는 책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 책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해받고 있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경 해석의 역사는 성경 오해의 역사다라고까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권위와 원칙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도 성경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서중석 교수님이 쓴 복음서 해석은 그래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은 책이다. 사실 오래전에 서중석 교수님의 <청정한 빛>이라는 책을 읽고 꽤 자극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 중의 가장 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책 하면 의례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씌여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금속활자의 혜택을 받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닐뿐더러 요즘과 같은 광범위한 지식의 교환이 가능해진 것은 그야말로 몇십년도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성경이 쓰여진 시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의 책이라고 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신약의 텍스트는 모두 매우 한정되어 있는 소수의 공동체를 위해 쓰여진 책들이다. 복음서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그것들은 각각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공동체를 향하여 쓴 글들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큰 규모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비밀결사와 같이 매우 작은 규모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규명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아는 것이 그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네 개의 복음서가 각각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독창적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매우 한정된 소수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이 성경을 오해하게 되는데 있어서 매우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시대의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 핵심 내용과 정신이 유지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공통적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그 책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혼자 성경을 백번 읽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찾아서 읽는 편이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혼자만의 독서는 자신의 세계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성경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는 책이라면,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가 2천년동안 쌓여온 것이라면 그 방대한 연구의 결과 속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해석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

교회에서 이런 책에 있는 내용을 설교로 하기는 어렵다. 설교는 성경에 대한 연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기초적인 학문적 성과에 대한 지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서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오해들을 살펴본다면, 교회에서도 성경을 학문적으로 가르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가 공동체, 누가 공동체, 마태 공동체, 그리고 요한 공동체의 성격에 대한 대체적인 파악을 할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들이 비교적 작은 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많은 대립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였다는데 약간 놀랐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어느 공동체이든지간에 이런 대립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기본이 되는 도그마들이 놀랍도록 유지되어 온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계속해서 바울 서신에 대한 연구 서적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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