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애정남?

애정남이 인기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그만큼 우리 삶 속에는 애매한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일테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가끔은 예수님이 이런 애정남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볼 것이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이런 문제에 대한 시원한 공식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기도하면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듣거나 하면 이런 답답함은 더욱 커지게 된다. 내게도 그런 일이 지금 한 번만 일어나 주면 앞으로는 매일 매일 기도만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시원한 답을 얻기는 커녕 뭔가 선택을 해 놓고 나서도 그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쳐나고, 강단에서는 이런 일이 바로 지금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며 일어나야만 하니 믿음을 가지라는 선포가 이어진다.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온 이런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도하심의 사건의 빈도를 생각해보면 약간은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보다 침묵하실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을 남긴 모든 선지자들은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사실 매순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신다는 체험담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점장이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점장이를 찾아가는 이유는 돈이 좀 들더라도 애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던가.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도 아직 점장이라는 직업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애매한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 한다. 그런 믿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 그런 방식으로 개입하시지는 않을거라고 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 아기처럼 대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었다면,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말지 고민하는 순간, 아담이 하와이 손에 들려있는 그 과일을 보는 순간, 다윗이 자신의 궁전에서 웬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음심을 품은 순간, 유다가 예수를 은 20에 넘겨주기로 약속하는 순간 그들에게 분명하게 NO 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애정남이 아니시다. 그분은 당신의 삶에 수시로 개입해서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대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당신의 슬픔, 좌절감, 분노, 절망 그 모든 아픔들을 묵묵히 함께 당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돈을 받고 어려운 결정을 대신 해 주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점장이같은 분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당신을 위해 열정적으로 변호할 준비를 하고 있는 좋은 친구같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