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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alm Shouting! &#187; 독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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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삶의 작은 향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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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라노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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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5 Jul 2008 15:07:28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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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0;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62;을 읽기 위한 두 번째 책인 &#60;시라노&#62;를 다 읽었다. 이 책은 17세기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일생을 모티브로 한 희곡이다. 시라노라는 이름으로 알라딘 검색을 해 보니 정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책이 한국에 한 권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멋진 오페라를 만들 수 있겠다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lt;<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8362">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a>&gt;을 읽기 위한 두 번째 책인 &lt;<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7013">시라노</a>&gt;를 다 읽었다.</p>

<p>이 책은 17세기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일생을 모티브로 한 희곡이다. 시라노라는 이름으로 알라딘 검색을 해 보니 정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책이 한국에 한 권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멋진 오페라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근사한 한 편의 오페라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제라르 드 파르디유같이 생긴 바리톤 가수가 시라노로 나올 것이고, 감미로운 음성을 가진 테너가 크리스티앙의 역을 맡아야겠지. 록산은 레지에로 소프라노, 드 기슈 백작은 테너로 하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름 멋진 아리아 하나는 배당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아… 아마도 전체적인 음악은 소극장 오페라에 어울리는 가벼움과 예쁜 선율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만큼, 도니제티 풍이어야 할 것 같다’</p>

<p>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em>언어에 대한 지식</em>이 독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어, 그리고 프랑스어 운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이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지식이 없는 내게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p>

<p>시라노와 같이 다재다능한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는 소극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짝사랑을 평생 했다는 것이 좀 믿어지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글을 사랑하는 그래서 영혼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여인이 말을 제대로 못하는 크리스티앙의 모습을 보고 사랑이 급격하게 식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책에 담겨져 있는 풍부한 은유와 서정, 해학과 익살은 두고두고 곱씹어볼만한 가치가 있다.</p>

<p>이야기로서의 다른 약점들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마지막 결말 부분만큼은 뭔가 좀더 의미있는, 그리고 여지를 남기는 좋은 결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p>

<p>사실 희곡을 이렇게 제대로 읽어본 것은 &lt;실락원&gt;, &lt;파우스트&gt;같은 책을 고생하며 읽었던 이후 약 15년 정도만에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페라를 떠올리게 된 것은, 그 15년의 시간 동안 오페라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일텐데, 역시 독서에 있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 지식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연극에 그런 관심과 지식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희곡이 공연화되고 있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을거다.</p>

<p>어쨌든… 전체적으로는 별 네 개를 줄 수 있는 좋은 책.</p>

<p><strong>책 정보</strong></p>

<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7013&amp;copyPaper=1&amp;ttbkey=ttblordmiss1456001"><img src="http://image.aladin.co.kr/cover/cover/8932907013_1.jpg" alt="시라노" style="border: 1px solid black;"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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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열 권의 책보다 한 마디의 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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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3 Aug 2007 13:34:35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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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사실 요즘 시간이 없다. 그것도 있고, 맥북이 꽤 무거워서 책 또 들고 다니기가 좀 부담스럽다. 사실은 요즘 멋진 podcast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내내 그걸 듣고 있으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열 권 스무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시간이다. 최근에 iTunes U라는 서비스가 생겼다. 미국의 각 대학에서 제공하는 리소스들을 모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사실 요즘 시간이 없다.</p>

<p>그것도 있고, 맥북이 꽤 무거워서 책 또 들고 다니기가 좀 부담스럽다.</p>

<p>사실은 요즘 멋진 podcast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내내 그걸 듣고 있으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열 권 스무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시간이다.</p>

<p>최근에 iTunes U라는 서비스가 생겼다. 미국의 각 대학에서 제공하는 리소스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제공하는 http://itunes.stanford.edu 에서 &#8216;Historical Jesus&#8217;라는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a href="http://www.stanford.edu/dept/relstud/faculty/sheehan/Sheehan.html">Thomas Sheehan</a>교수의 강의이다.</p>

<p><strong>Historical Jesus</strong>라면 지난 몇 년간 나의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주제이다. Sheehan 교수의 강의는 최근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대부분의 중요한 사실들을 모두 커버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책들을 다 읽으면서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사실 많은 부분들이 이미 몇 년 간의 체계없는 독서를 통해 이미 읽거나 생각한 부분들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의 비체계적인 독서가 그의 강의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p>

<p>열 권 스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어떤 때는 전문가의 한 마디가 더욱 가치있는 경우가 있다.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지식과 독서의 편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려울 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관련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지닌 좋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p>

<p>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내가 배우고 생각하고 읽은 것들을 정리하여 포스팅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쉬운 일도 아니고 간단하게 끝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예상하면서 말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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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안도현의 연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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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1 May 2007 11:01:27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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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안도현의 연어는 올해 읽은 서른 한번째 책이다. 사실 100쇄나 찍힌 책이라면 이미 읽어봤어야 하는건데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었다는게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읽었으니 안 읽은 것 보다는 백배 낫다. 저자는 연어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구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최소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안도현의 <a href="http://openyourbook.net/isbn/8985712683">연어</a>는 올해 읽은 서른 한번째 책이다. 사실 100쇄나 찍힌 책이라면 이미 읽어봤어야 하는건데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었다는게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읽었으니 안 읽은 것 보다는 백배 낫다.</p>

<p>저자는 연어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누구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최소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가치있고 중요한 일이다.</p>

<p>나는 내 삶에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목적이 내가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아픔들을 뛰어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데, 최소한 다른 것들의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귀에 남는다.</p>

<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262&amp;copyPaper=1&amp;ttbkey=ttblordmiss1456001"><img src="http://image.aladin.co.kr/cover/cover/8954603262_1.jpg" alt="연어 (100쇄 특별판, 양장)" style="border: 1px solid black;"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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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서에 대해 (3) &#8211; 집중적 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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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May 2007 15:17:09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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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교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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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장정일의 공부는 그 내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었지만, 그가 취하고 있는 독서법 역시 내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약 30여권의 책들은 아무리 봐도 그 목록에서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저 그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책을 고르고 닥치는대로 읽어나갔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목록이다. 그래서 어쭙지 않은 자기 개발 관련 도서에서부터 신앙 서적,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43">장정일의 공부</a>는 그 내용적인 면에서도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었지만, 그가 취하고 있는 독서법 역시 내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p>

<p>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약 30여권의 책들은 아무리 봐도 그 목록에서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저 그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책을 고르고 닥치는대로 읽어나갔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목록이다. 그래서 어쭙지 않은 자기 개발 관련 도서에서부터 신앙 서적, 그리고 소설, 시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섞여 있다.</p>

<p>그러나 최소한 장정일은 그렇게 책을 읽는 것 같지 않다.</p>

<p>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어서일수도 있지만, 그는 동일한 주제 혹은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내는 식의 독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독서의 장점은 그가 적고 있는 독후감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동일한 주제에 대한 여러 상이한 시각을 통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공부에 대한 정의와 일통하는 것인데, 민주주의가 의견와 의견의 부딪힘이고, 그런 의견의 교환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독서법을 통해 진정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p>

<p>사실, 이 방법이 무슨 거창한 방법은 아니다. 내가 연구를 할 때에도 어떤 종류의 일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연구 주제와 관련된 연구 논문들을 모으고, 그 논문들을 읽고 정리하면서 주제에 대한 배경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의 가치와 특수성을 제대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분명 연구 과정에서 후회를 하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연구 분야에서는 항상 이런 공부 방법을 적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p>

<p>그런데 전공 분야의 연구가 아닌 교양을 위한 책읽기에서는 이런 방법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기본적인 책읽기의 넓이가 너무 좁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깊게 읽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넓이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기본은 있어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lt;대학생이 읽어야 할 교양도서 100선> 따위의 추천 목록에 있는 책 중에서 절반도 읽어내지 못한 내 상황에서는 넓게 읽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p>

<p>박사라는 것은 박학다식한 선비라는 뜻일진대 배움의 넓이가 넓은 사람이라는 뚯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매우 한정된 분야에서 조금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p>

<p>그런데, 책읽기에 있어서 (혹은 교양에 있어서) 충분한 정도의 넓이라는 것은 참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종합적인 인간형을 추구하는 것은 지금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일하고 있는 좁은 분야에서 충분히 깊게 읽는 것도 너무나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넓이와 깊이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다.</p>

<p>만약, 장정일의 책읽기 전략을 따라서 한 주제에 관해 최소한 서너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방법을 쓴다고 하면 어떤 주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걸까? 나와 같은 자연과학 전공자들이 항상 인문학자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푸코, 데리다 같은 사회학자들에 대해 읽어야 하는걸까? 아니면 정치? 혹은 경제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할까?</p>

<p>결국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는 무엇을 읽느냐의 문제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다. 한 때, &lt;역사적 예수>라는 주제에 심취해서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한 책들을 구할 수 있는대로 구해서 읽었던 때가 있다. 이 때의 책읽기는 엔도 슈사꾸의 <a href="http://lordmiss.com/metabbs/metabbs.php/post/463">예수의 생애</a>라는 책을 읽고 나서 그 영향으로 시작이 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거나 충격을 받은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책읽기를 깊이있게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lt;예수의 생애>만큼 내게 충격적이고 인상적이었던 것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p>

<p>한 때 움베르트 에코의 &#8216;푸코의 추&#8217;를 읽고 에코의 글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온 그의 장편소설들을 (<a href="http://lordmiss.com/metabbs/metabbs.php/post/546">바우돌리노</a>까지) 다 구입을 해서 읽었다.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느 것 하나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엄청난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지적 유희를 즐기는 그의 소설이 나름대로 지식에 대한 내 갈증을 자극하는 것을 즐기면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사람인 에코가 중세 유럽의 역사에 해박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것이고, 내가 중세 유럽의 역사를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반면에 내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도 된다. 그래서 이번에 책을 구입하면서 집어넣은 책이 다산 정약용에 대한 책이었다.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해지면 좋겠지만.</p>

<p>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초점이 없는 글이 된 것 같지만, 최소한 내가 2007년 초부터 지금까지 해온 책읽기의 방식이 너무나 중구난방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반성해 보고, 앞으로는 교양의 넓이와 깊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연구와 생각에 의해 독서 목록을 정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결론이다.</p>

<p>이전에 쓴 책읽기 관련 포스트</p>

<ul>
<li><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12">독서에 대해 (1) &#8211; 빠르게 읽기</a></li>
<li><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19">독서에 대해 (2) &#8211; 책 고르기</a></li>
</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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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정일의 공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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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8 May 2007 03:18:36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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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장정일의 공부 지난번에 장충동 김씨의 책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와 최근 작가들의 질투어린 선망의 대상인 장정일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제목도 참 잘 지었다. 공부! 아직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뒤표지에 나와있는 저자의 공부에 대한 정의, 그리고 한 두 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03026&amp;copyPaper=1&amp;ttbkey=ttblordmiss1456001"><img src="http://image.aladin.co.kr/cover/cover/8925503026_1.jpg" alt="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style="border: 1px solid black;" /></a></p>

<p><a href="http://openyourbook.net/isbn/8925503026">장정일의 공부</a></p>

<p>지난번에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37">장충동 김씨의 책 이야기</a>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와 최근 작가들의 질투어린 선망의 대상인 장정일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제목도 참 잘 지었다. 공부!</p>

<p>아직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뒤표지에 나와있는 저자의 공부에 대한 정의, 그리고 한 두 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우선 장정일의 공부의 정의.</p>

<p>&gt; 공부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8230; 무엇보다 개념과 논리를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모르면 남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서로 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p>

<p>여기서 말하는 <em>공부</em>라는 것은 내가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em>교양을 쌓는 일</em>이라는 말과 바꾸어 써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공부다. 내가 중학생 때, <em>교양있는 사람이 되는 것</em>을 내 인생의 목표 중 한 가지로 정한 일이 있다. 그리고 그 <em>교양</em>이라는 것의 정의를 나름대로 내려보았었고,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정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p>

<p>&gt; 삶의 모든 문제에 있어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p>

<p>내가 정의한 교양은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 외부에 있어 사안에 따라 외부의 환경에 따라 흔들리고 변화하는 불안정한 단계를 벗어나서, 스스로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극적인 의미에 머물러 있었다.</p>

<p>그러나 장정일은 달랐다 그는 이미 이런 단계를 넘어서서 <em>서로 이해하고 있는</em> 단계를 상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 이후에서야 그 차이를 인정하든 아니면 내 견해를 수정하든, 혹은 상대방을 설득하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장정일의 교양은 스스로의 가치 기준을 세우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그 견해의 요지를 파악하여 스스로의 견해와 비판적으로 대조하는, 그리고 그 자양분을 흡수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p>

<p>이렇게 교양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르면, 당연히 교양을 쌓기 위해 하는 노력에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의 정의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달려 있다. 많은 경우에 <em>적절한 질문</em>은 적절한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p>

<p>그래서, 장정일의 공부 방법은 내 공부 방법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장정일의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책이 장정일의 독후감 모음이라는 점이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64">1년에 50권 책 읽기</a>를 하고 있는 내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해서 글을 써 볼 예정이다)</p>

<p>교양의 정의를 스스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목표 하나를 수정한다는 것이고 그런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가야 하는 길이 있는데 가지 않는 것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삶은 정체된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최소한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거기에 덧붙여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이해하고 그 견해와 내 견해의 차이점을 분석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내가 바로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p>

<p>그것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강명식의 &lt;십년 후엔&gt;이라는 노래에서 말하듯이) <strong>그 때까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십년을 하루 같이 황소 걸음으로 걸어간다면</strong> 그 곳에 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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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번에 주문한 책들&#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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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May 2007 03:35:27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Book]]></category>
		<category><![CDATA[독서]]></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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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번에 주문한 책들&#8230; 안도현의 연어 하버드가 선택한 에세이 65가지 장정일의 공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번에 주문한 책들&#8230;</p>

<ol>
<li><p>안도현의 <a href="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amp;ejkGb=KOR&amp;linkClass=&amp;barcode=9788985712682">연어</a></p></li>
<li><p><a href="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amp;ejkGb=KOR&amp;linkClass=&amp;barcode=9788995467749">하버드가 선택한 에세이 65가지</a></p></li>
<li><p><a href="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amp;ejkGb=KOR&amp;linkClass=&amp;barcode=9788925503028">장정일의 공부</a></p></li>
<li><p><a href="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amp;ejkGb=KOR&amp;linkClass=&amp;barcode=9788934923503">다산선생 지식경영법</a></p></li>
</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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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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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May 2007 07:37:0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Book]]></category>
		<category><![CDATA[독서]]></category>
		<category><![CDATA[인터뷰]]></category>
		<category><![CDATA[지적 전통]]></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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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 이 책은 올해 읽은 스물 아홉번째 책이다. 2003년에 출판된 이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가, 인터넷에 있는 이 책에 대한 여러 평들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67년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50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openyourbook.net/isbn/895273114X">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a></p>

<p>이 책은 올해 읽은 스물 아홉번째 책이다.</p>

<p>2003년에 출판된 이래 많은 관심을 받았던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p>

<p>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가, 인터넷에 있는 이 책에 대한 여러 평들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67년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50대 이상은 되었을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약간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이 책의 저자가 PAPER라는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이 잡지를 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난잡해 보이는 외양과 산만해 보이는 내용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게 나름대로는 꽤 인기가 있는 잡지였나보다.) 어쨌든 나로서는, 자신이 읽은 책을 추천하는 정도도 아니고 자신의 독서관을 담은 책을 낸다는 것은 30대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좌파라고 자신있게 말한다던가, 제도권 교육에 대한 공개적인 반감을 표시하는 것도 최소한 정치면에서는 빛을 보게 된 마르크스, 문화면에서는 서태지의 영향 정도는 받았어야 가능할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p>

<p>이 책에는 여러 종류의 책에 대한 소개 글, 작가에 대한 인터뷰 등 여러 종류의 글이 섞여 있지만 지은이의 글솜씨 때문인지 읽는데 있어서 지루하거나 산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새로운 독서의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p>

<p>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장석주 씨의 인터뷰 중에 나오는 말인데, 한국에 재밌는 책을 쓰는 작가가 없다는 질문에 대한 장석주의 대답이다.</p>

<blockquote>
  <p>&#8230; 제가 절감하는건 그거에요. 지적 전통이라는 거. 우리 사회가 축적하고 있는 볼륨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사르트르 같은 경우는 벌써 유년 시절부터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방대한 규모의 서재 속에서 자랐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책 사서 모은 경우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책 한 권 없는 집안에서 자랐어요. 이런 빈약한 두께의 문화에서 오는 절망감이 있죠. 도저히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해요.</p>
</blockquote>

<p>지금 좋은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고 하는 모든 활동들이 내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아들, 내 손주에게는 더욱더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깨달았다. <strong>지적 전통</strong>. 이걸 일구어내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이것보다 기분좋고 의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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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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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5 May 2007 10:47:0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Book]]></category>
		<category><![CDATA[독서]]></category>
		<category><![CDATA[마음]]></category>
		<category><![CDATA[본성]]></category>
		<category><![CDATA[삶]]></category>
		<category><![CDATA[일본]]></category>
		<category><![CDATA[죄의식]]></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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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올해의 스물 일곱번째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다. 이 책은 읽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좀 힘들었는데, 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저하고 있다가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거의 중단 없이 두세번 만에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현재 일본의 1,000엔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고 일본인의 정신적인 지주라고까지 이야기되고 있다고 하고, 그의 작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것이 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올해의 스물 일곱번째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a href="http://openyourbook.net/isbn/8901039869">마음</a>이다.</p>

<p>이 책은 읽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좀 힘들었는데, 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주저하고 있다가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거의 중단 없이 두세번 만에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p>

<p>작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현재 일본의 1,000엔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고 일본인의 정신적인 지주라고까지 이야기되고 있다고 하고, 그의 작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것이 이 작품이라고 하는 만큼, 일본인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독서를 시작했다.</p>

<p>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해 본다면, 재산 문제 때문에 자신을 배반하는 작은 아버지 때문에 <em>세상 모든 사람들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em>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 때문에 자살했다고 생각하는 친구 때문에 <em>나 역시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em>는 생각을 더해서 결국은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선생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책의 선전 문구에 나오는 <em>인간의 &#8216;에고이즘&#8217;과 죄의식의 작용을 치밀하게 묘파해 낸 문제작</em>이라는 말이 어울리기에는 (지금의 내 눈으로 보기에는) 치열함과 당위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p>

<p><em>자유와 에고를 획득한 댓가로서 맛보지 않으면 안되는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에서 출발</em>했다는 말에도 그닥 공감이 가지 않는다.</p>

<p>죄의식의 문제를 다룬 문학 작품들은 꽤 여러 가지가 있고, 어떤 면에서 인간의 이런 본성에 대한 고찰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다루어져온 주제이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em>돈 때문에 조카를 멀리하는 작은 아버지의 모습</em> 정도에서 이끌어낸다고 하는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치기 어린 일인 것 처럼 보이는데다가, 별 일도 아닐 수 있는 문제 때문에 굳이 자살을 선택하는 친구 K군, 그리고 그 친구를 보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는 선생님 역시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치기 어린 행동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p>

<p>&#8216;메이지 시대의 종말&#8217; 즉 천황의 죽음과 자신(및 자신의 시대)의 죽음을 동일시하는 부분에서는 일종의 섬뜩함마저 느껴졌다.</p>

<p>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의 결론이 결국 죽음밖에 없다는 것은, 치열하게 삶에 대한 고민을 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치열함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정립한 사람들에게는 비겁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p>

<blockquote>
  <p>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p>
</blockquote>

<p>지킬만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마음을 지키는 것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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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을 되찾아준 도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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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0 Apr 2007 04:25:0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Book]]></category>
		<category><![CDATA[독서]]></category>
		<category><![CDATA[라 퐁텐]]></category>
		<category><![CDATA[마음]]></category>
		<category><![CDATA[우화]]></category>
		<category><![CDATA[잠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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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올해 50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후로 지금까지 스물 다섯권의 책을 읽었다. 다음으로 정한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인데, 이상하게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손에 집어든 책은 라 퐁텐의 사랑을 되찾아준 도둑이라는 책이었다. 2001년에 나온 책이니 꽤 오래된 책인데, 결혼을 하면서 아내의 서가에 있다가 들어온 책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에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올해 <a href="http://blog.lordmiss.com/2006/12/29/1년에50권책읽기">50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a>한 이후로 지금까지 스물 다섯권의 책을 읽었다. 다음으로 정한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a href="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39869">마음</a>인데, 이상하게 이 책에 대해서만큼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p>

<p>오늘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손에 집어든 책은 라 퐁텐의 <a href="http://openyourbook.net/isbn/8989232066">사랑을 되찾아준 도둑</a>이라는 책이었다. 2001년에 나온 책이니 꽤 오래된 책인데, 결혼을 하면서 아내의 서가에 있다가 들어온 책이다.</p>

<p><a href="http://blog.lordmiss.com/2007/03/30/독서에_대해_2_책_고르기">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a>에서 볼 때 이 책은 내 손에 의해 선택될 가능성이란 거의 없는 책이다. 그렇지만, 퐁텐이라는 작가의 유명세, 그리고 우화라는 장르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 쉽게 이 책을 들어서 읽도록 만들었다.</p>

<p>사실, 책을 읽으면서 후회를 했다. 책을 읽는데는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개봉역에서 읽기 시작해서 신촌역에서 내릴 때까지 거의 전부를 읽을 수 있었다. 이전의 책 고르는 기준을 말한 글에도 썼지만, <em>잠언류의 서적은 잠언, 그리고 전도서만으로도 충분하다</em>고 생각하고 있다. 퐁텐의 우화가 훌륭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서, 이 우화가 전해주는 지혜라고 하는 것이 잠언과 전도서의 지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p>

<p>그렇지만 사람이 언제나 밥만 먹고 사는 것은 아니듯이 때로는 이런 가벼운 책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책, 많이 읽히는 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게 맞을테니까. 이 책도 그런 면에서 보면 분명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을 곱씹고 숙고해야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일 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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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독서에 대해 (1) &#8211; 빠르게 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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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8 Mar 2007 22:10:0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Book]]></category>
		<category><![CDATA[독서]]></category>
		<category><![CDATA[반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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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재미]]></category>
		<category><![CDATA[정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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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들어가는 말 독서를 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일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 지금까지 약 2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각 책을 읽을 때마다 블로그에 그에 관한 글을 남겼다.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읽은 느낌과 생각에 대해 글을 남겨두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올 한 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3>들어가는 말</h3>

<p>독서를 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일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 지금까지 약 20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각 책을 읽을 때마다 블로그에 그에 관한 글을 남겼다.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읽은 느낌과 생각에 대해 글을 남겨두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p>

<p>사실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64">올 한 해 동안 50권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a>는 지금 책을 읽는 속도로 봐서는 상반기 내에도 충분히 달성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나 책을 읽지 않고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독서 욕구가 갑자기 폭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책을 빠르게 읽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lt;빠르게 읽기>는 정해진 시간 내에 일정한 권수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내가 &lt;빠르게 읽기>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이것은 속독법 혹은 photo reading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속독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냥 많이 읽다보면 남들과 좀 차이나게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된다. 비결같은거 없고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냥 빨리 읽을 뿐이다.)</p>

<h3>&lt;빠르게 읽기>의 장점</h3>

<h4>책의 가치를 빠르게 파악함</h4>

<p>어렸을 때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많이 읽기도 했거니와, 굉장히 빠르게 읽어냈었다. 책을 빨리 읽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책을 빠르게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듯 하다. 빠르게 읽고 이 책이 과연 읽을만한 책인지를 알아볼 수 있고, 만약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빨리 포기할 수 있다. 이건 반드시 책의 내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게 맞는 내용인지, 혹은 지금 당장 필요한 내용인지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런 적이 많이 있지는 않지만, 빠르게 책을 읽다가 &#8216;아, 이 책은 잘못 선택했구나&#8217; 하고 책을 덮어버린 기억이 꽤 있다.</p>

<p>책의 가치와 관련해서 빠르게 읽기의 가장 큰 효용성이라면 요즘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하고 요긴한 정보를 빠르게 선별해내는 능력에 있을 것이다. 갈수록 읽어야 할 것은 많아지고 그에 비례해서, 혹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쓸모없는 글도 많아진다. 출판이라는 것이 과거에 비해 점점 더 쉬워지고, 상업적인 성공이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그만큼 저자의 공을 들여서 만든 좋은 책을 찾기도 쉽지 않게 된다. 최근에는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책의 내용이나 가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고, 각종 인터넷 서점의 서평마저도 이런 마케팅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결국 책의 가치는 읽어보고 결정할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좋은 책들이 선택되지 못할 수 있다. (책의 선택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더 정리하기로 하자)</p>

<p>책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읽는 것은 당연히 정독이 아니라 속독이어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책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능력이 배양되면 결국 인터넷 세계에 떠도는 (책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엄청난 양의) 글들을 읽고 취사선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p>

<h4>동일 시간에 여러번 읽을 수 있음</h4>

<p>속독의 또다른 장점은 내용의 철저한 이해를 위해서는 속독이든 정독이든 어차피 여러번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정독을 한다고 해서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속독을 통해 책을 여러번 읽는 편이 천천히 정독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여러번 느꼈었다.</p>

<p>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과서 같은 경우에도 교과서를 받자마자 두세번씩 읽어버리곤 했었다. 무슨 예습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재미로 읽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을 읽고 나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흐름을 미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선행학습을 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예습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p>

<p>책을 한참동안 많이 읽지 않으면서 책을 읽는 속도도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속독을 배워서 빠르게 읽은 것이 아니고 많이 읽으면서 연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빨라진 것이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않자 자연스럽게 속도도 느려진 것이었다. 이전에는 한 시간이면 한 권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는데, 올해 초에는 두 시간을 투자해야 한 권의 소설을 겨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속도가 느려지니 책을 읽으면서도 재미가 많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 느끼는 성취감을 아무래도 덜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 요즘들어 책을 좀 많이 읽으면서 읽는 속도 역시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p>

<h4>책읽는 재미</h4>

<p>책을 읽기로 결심을 했다고 해도 삶에는 항상 어떤 일인가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요즘은 내가 원하는만큼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책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휴대전화, 메신저, 온갖 종류의 방해꾼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 누가 내 시간을 요구할지 예상할 수 없다. 책을 읽는 흐름이 자꾸 끊어지게 되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소한 한 두 번의 포기가 결국은 독서의 즐거움을 아예 막아버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마음을 먹었으면 끝까지 읽어내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p>

<p>책을 빠르게 읽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다른 일로 인해 흐름이 끊어지는 경우가 적어지게 되고, 책을 전부 읽는 것이 좀더 쉬워질 수 있다. 한 권 한 권 정복해 나가는 것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잦은 성공이 쌓이는 것이 큰 성공의 지름길이다.</p>

<h3>&lt;빠르게 읽기>와 내용 파악</h3>

<p>사실, 책을 빨리 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용 중에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책을 여러번 읽다보면 지난번에 읽을 때는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p>

<p>물론, 정독을 한다고 해서 책의 내용을 더욱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는 어떤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데, 너무 천천히 읽게 되면 결국 이 흐름을 놓치게 되고 내용의 앞뒤 관계를 잊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p>

<p>처음에 읽을 때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이해하고, 두번째 세번째 읽으면서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전체적인 흐름에 중요한 부분이라면 이미 첫번째 독서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 내용이라는 것은 큰 흐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 시간에 한 번 읽는 것보다 한 시간에 한번씩 세 번을 읽는 편이 거의 모든 경우에 내용의 이해에서도 더 우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 재미있는 책들은 수십번씩 읽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중요한 사실들은 더욱 강화가 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까지도 놓치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해 봤다.</p>

<h3>맺는 말</h3>

<p>중고등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할 때가 생각난다. 당시의 학력고사 체제에서는 영어 문제가 초반 몇 문제는 듣기, 이후 몇 문제는 단어, 강세, 이후 몇 문제는 문법, 그 이후에는 독해 뭐 이런 식으로 정해진 패턴으로 출제가 되었었다. 그래서 내가 어느 분야에 약한지를 알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지만.) 나는 독해 문제를 틀려본 경험이 거의 없다. 학력고사를 볼 때는 내가 읽었던 지문을 만나서 신기해했던 기억도 있다. 독해 문제를 자꾸 틀리는 경우에 어떻게 하면 될까? 별로 생각나는 방법이 없다. 많은 교과서나 참고서에서는 그냥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사실 독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영어든 국어든 별다를게 없다. 기본적인 문법을 알고 있다면 독해를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lt;빠르게 읽기> 연습이 되어 있다면, 그래서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독해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p>

<h3>덧붙이는 말 &#8211; 성경읽기</h3>

<p>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이라는 책이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일년에 몇 번 읽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큰 책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이라는 책 역시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빨리 읽을 때는 빨리 읽는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고, 느리게 읽을 때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느리게 읽기에 익숙하다. 보통 목사님들은 한 두 절의 성경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기 때문이다. 강해설교 같으면 한 권의 성경을 몇 년씩 설교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빨리 읽어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 빨리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큰 구조들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면 어려운 개역 성경을 읽으려 하지 말고 공동번역이나 현대인의 성경, 혹은 쉬운 성경 같은 것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만약 복음서 한 권을 한두 시간 내에 읽어본다면, 복음서 전체를 덩어리로 읽는 것이 구절 구절에 집중하며 읽는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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