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Music (page 1 of 4)

CCM 음반 가수 != 찬양 사역자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한 편의 글.

CCM 앨범을 막 낸 사람은 신인이 아니고 프로여야 한다는 말로 기사가 시작된다. (찬양 사역자에 대한 조언으로서 이 글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말해두고 시작하고 싶다.)

그러나 우선… 정확하게 용어를 정의하고 싶다. CCM은 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의 줄임말이다. 컨템포러리라는 말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기독교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기독교인에 의한, 기독교인을 위한, 어느 쪽이든 의미가 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CCM으로 분류되어지는 음반을 출시한 사람이 반드시 ‘찬양사역자’여야 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찬양사역’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든 기독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사역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사역자로서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시야의 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찬양사역자’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교회나 기독교 단체의 예배나 행사 때 찬양으로 섬기는 사람을 ‘찬양사역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무료로 봉사하는 것은 아니고 보통 사례비를 받게 된다. 나는 찬양사역자가 사례비를 받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프로 사역자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합리적인 사례비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찬양사역이라는 일이 결국은 대중가수들이 행사 뛰는 것과 비슷핟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음반 판매를 통해 많은 수익을 얻기 힘든 현 상황에 있어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좋은 음반을 내서 좋은 평가를 받는, 또는 인기가 있는 사람일수록 좋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물론, 이렇게 말을 하면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는 찬양사역자들은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가수들조차 자신의 음악적 완성을 위해서 행사 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음악이든간에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 것은 존재 가치가 없다. 따라서 음악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청중과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다. 음반을 내는 것, 공연을 하는 것, 행사에 출연하는 것 그 모든 일들이 청중과 만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청중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완성된 음악을 음반으로 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결국, 좋은 CCM이란 좋은 음악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와 영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CCM을 만드는 사람 역시 음악가라는 말이다. 음악가는 자신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음악계가 발전하려면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끊임없이 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음반을 냈으면 프로답게 사역을 해야지’라는 점잖은 선의의 충고가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주찬양 1집으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CCM 음악을 듣는다고 들어왔고, 최근에는 나 역시 이해하기 힘든 음반들을 많이 만났었다.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음악적인 색깔이 없이 ‘되는대로’ 만든 음반들을 들으면 사실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좋은 기독교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하고, 좋은 기독교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 역시 마련이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역의 부담’을 덜 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CCM 음악이 성장할 수 있는 더 좋은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Turandot 음반 감상기 – 닐손/스테파노/프라이스/61년 빈 실황

바로 이 음반.

닐손의 투란도트와 디 스테파노의 칼라프라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조합. 게다가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류를 들을 수 있다. 지휘는 Molinari-Pradelli가 맡았는데, 이 지휘자가 카라얀이나 세라핀 같은 특급 지휘자는 아니지만 5-60년대의 시대를 풍미하던 많은 가수들을 데리고 많은 음반을 남긴 것을 보면 오페라에 있어 특별한 실력을 발휘하던 지휘자임은 분명하다. (10년 전 페라하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나를 포함한 많은 동호회 회원들에게 이 지휘자는 Erede나 Votto 같은 지휘자와 함께 “훌륭한 가수들을 등용하여 평범한 레코딩을 남긴 지휘자” 중의 하나로 평가받곤 했는데, 지금은 사실 그렇게 저평가될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정도의 진용에 빈 슈타츠오퍼라면 매우 훌륭한 진용이 아닐 수 없다.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류는 여러 명의 류 중에서도 단연 상위에 놓을 수 있을만큼 훌륭하기 그지없다. 메트 실황 영상의 레오나 미첼과 더불어 가장 류 다운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

디 스테파노의 칼라프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보인다. 실황 녹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반에서 스테파노는 등장 순간부터 상당히 강하게 노래를 부르며, 끝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한다. 낭랑한 (전형적인 리릭 테너의) 목소리로 50년대 칼라스와 함께 기적적인 레코딩들을 여럿 남기고, 60년대에 드라마틱 테너로 전향을 하는 중간기라고도 볼 수 있는 61년도의 레코딩이기도 하고, 칼라프가 워낙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어려운 역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출중한 결과물을 남긴 스테파노인만큼 전반적으로는 칼라프 역시 열정적으로 잘 소화해 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스테파노의 최대 약점은 고음 영역에서 공명되지 않은 소리를 쥐어짜는 듯한 느낌으로 부른다는 점인데 (이 부분에 대해 파바로티는, 자신이 스테파노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에게 ‘이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다가는 오래 노래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칼라프를 부를 때 고음은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과시해야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만큼 풍성하고 강력한 고음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분명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투란도트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수수께끼는 셋, 삶은 하나” 부분에서 그의 하이 C는 사실 좀 듣기 괴로울 정도이다. 코렐리나 파바로티의 작렬하는 짜릿한 하이 C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전반적인 면에서 스테파노는 대단히 훌륭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으므로, 그의 고음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도밍고의 삑사리도 용서받지 않았는가!) 이 음반을 듣고 매우 만족할 것이 틀림없다.

사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스테파노와 가장 많이 비교하게 된 가수는 바로 호세 카레라스이다. 카레라스는 한때 “스테파노의 재래”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두 가수는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클래식의 리뷰에서 황지원씨는 카레라스를 “신비한 면을 가진 칼라프 왕자로서 제격”이라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이 음반의 스테파노는 이런 면에서 보면 “신비함” 보다는 “열정”을 떠올리게 되는 연주를 해 주고 있으며, 카레라스의 진지함이 음반 쪽에 더 어울린다면 스테파노의 열정은 연주회장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음반의 백미는 타이틀롤을 맡은 비르지트 닐손이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투란도트로 알려져 있지만, 최소한 내게는 그녀의 다른 음반들에서의 노래가 그 정도로 뛰어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의 닐손은 다른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투란도트들 (심지어 자신의 다른 녹음들)을 간단하게 뛰어넘는다. 첫 등장에서부터 그녀의 소리는 간단하게 모든 극장을 채우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마치 “이제 이 오페라가 시작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고음에서의 충만한 기백은 말할 것도 없고, 저음에서조차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실황에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잉게 보르크, 조운 서덜랜드, 카티아 리치아렐리, 몽세라 카바예, 에바 마튼 등 투란도트로서 뛰어난 녹음을 남겼거나 좋은 실황 영상물을 남겼던 어느 소프라노도 이렇게 완벽한 투란도트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한 목소리 하는 레온타인 프라이스마저 그녀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저 불쌍한 노예일 뿐이다.

이 음반의 맨 뒷편에는 스테파노의 아리아가 몇 개 실려 있다. 이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구매의 포인트는 역시 스테파노라는 뜻일게다. 스테파노의 칼라프는 이 음반을 포함하여 둘 뿐인데, 나머지 하나는 AM 라디오를 훌륭한 음질로 생각하게 해 주는 극악의 음질로 유명한 만큼 이 음반의 홍보 포인트는 스테파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음반을 모두 듣고 난 후에는 생각이 확 바뀌게 될 것이다. 이 음반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래야 하는 대로) 바로 투란도트 역의 비르지트 닐손이기 때문이다. 닐손 이후 많은 가수들이 이 역에 도전해 왔고 일부는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과연 이 음반에서 보여준 닐손의 모습을 능가할 수 있는, 아니 이와 비슷한 정도의 성과만이라도 거둘 수 있는 가수가 나올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안 보스트리지 – Great Handel

이안 보스트리지. 현존하는 최고의 테너 가수 중 한 명. 리트에서 시작하여 바로크, 모짜르트, 벤저민 브리튼을 아우르는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만큼이나 마른 체형과 큰 키, 27세에 취득한 박사학위 등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헨델 모음집을 냈다. 이미 바흐 아리아집을 낸 바 있고, 최근에 헨델 독창곡집이 여러 가수에 의해 나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예상된 수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헨델 독창곡집이라면, 그것도 테너의 음반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메시아의 독창, 그리고 Ombra mai fu일 것이다.

어제 읽은 월간 코다의 리뷰에서는 "잘 알려진 곡에서도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메시아의 "Comfort ye"는 지나치게 느리게 표현되었고, "Ombra mai fu"는 평범했다. 베냐미노 질리가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Ombra mai fu"를 부르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보스트리지의 노래는 확실히 평범하다. 물론 테너에 맞게 조성을 높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조성을 올리지 않고 노래한 카레라스의 노래와 비교해도 확실히 보스트리지의 노래는 평범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Ombra mai fu"라는 노래가 무슨 장대한 아리아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평범하게 불러주는게 제일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음반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노래들은 "Acis and Galatea" 그리고 "Jephtha"에 나오는 노래들이다. "Acis and Galatea"는 전에 전곡반을 들은 적이 있지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고, "Jephtha"는 아예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보스트리지의 신중하고 섬세한 노래가 헨델의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나 꼼꼼하게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면 어떤 작곡가라도 싫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미성과 꼼꼼함이라는 보스트리지의 미덕이 잘 살아나 있는 노래들이다.

이 음반을 기점으로 해서 보스트리지가 헨델의 여러 레파토리들에 도전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의 "겨울여행"이 다른 가수들의 연주에서 느끼지 못했던 슈베르트의 매력을 알게 해 준 것처럼 그의 헨델 역시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아래 영상은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보스트리지의 이번 음반에 대한 인터뷰이다. 분명 영어인데 생각외로 정확히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아바도의 베토벤 교향곡 9번 DVD 감상

지난번 중국 방문 때 DVD 세트를 하나 구매했다. 물론 싸구려 복제품이 아니고 정품이었다. 아바도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이 다섯장의 DVD에 나뉘어 실려 있는 (한 장은 아바도 인터뷰가 실려있다) 이 시리즈는 유로아츠가 제작한 것으로 우리 돈으로 약 2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대로 집었기 때문에, 사고 나서 한참 후에야 이 DVD가 PAL 방식으로 제작되어서 집의 DVD 플레이어에서 볼 수 없다느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맥북에서 보면서, 좋은 사운드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컴퓨터에서만 보더라도 정품 DVD 다섯장, 그것도 아바도의 베토벤 실황이라면 나름대로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오늘은 그 첫번째로 9번을 감상했다.

첫 악장에서부터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와의 혼연일체가 된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나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찾아서 들을 정도로 많이 듣는 편이었는데, 이 연주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9번, 아니 어떤 관현악곡보다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만족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독창자에 대한 약간의 불만 (토마스 모저 이야기이다) 그리고 합창단이 처음 등장할 때의 풀어진 긴장감 같은 것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이 감동적인 연주의 가치를 훼손할 만큼은 절대 아니었다.

1악장에서부터 감동을 가져오던 연주는 2악장의 당당함, 3악장의 유장함을 거쳐서 4악장으로 넘어갈 때는 거의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실황이어서인지 약간 템포가 빠르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이런 빠른 템포에서도 거의 모든 악기군이 일사분란하고 명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역시 BPO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피날레만큼은 좀더 장대하고 느리게 표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주를 마치고 난 아바도를 보면서 저절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황에서의 엄청난 박수가 이날 이런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린 사람들의 기쁨을 보여주고 있거니와, 이런 연주를 듣고서도 앉아서 차분하게 박수를 칠 수 있는 독일 사람들은 나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아마존에서 이 DVD 정보를 찾아봤는데, 이 아바도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DVD에 대한 아마존 고객평가는 별 다섯개로 되어 있었고, 대체적으로는 9번과 3번 모두가 뛰어난 연주라고 평하고 있었다.

황영훈님의 베토벤 교향곡 관련 글은 아마도 내가 평생 들을 수 없을 만큼의 베토벤 음반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유명한 글인데, 여기서 아바도의 베토벤은 유연하고 세련된 베토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9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7번 4악장에 대한 좋은 평가가 나타나 있다. 고클래식에서도 아바도의 DVD 중 7번 4악장에 대한 칭찬이 많은 것을 보면, 다음 감상은 7번이 될 것 같다.

벅스 뮤직 “DRM-free MP3 무제한 다운로드” 폐지

이런… 이제 벅스 뮤직의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이 폐지된단다. 사실 문자로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이 폐지되어 자동결제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벅스로부터 날아왔을 때, 이 문자의 의미가 바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벅스에 로그인을 해 보니 정말 이 상품이 없어진다는 거다.

이럴수가!!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찾아오게 될 줄은 몰랐었다. 어떻게든 빨리 결제를 해 둘껄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왕지사 이렇게 된거 그동안 받으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음반들을 다운받는 일에 들어갔다.

사실, 그동안 벅스 덕분에 각종 어둠의 경로를 찾아다니지 않고 많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클래식인데, 처음에 (DRM 없는)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에 끌려서 가입을 할 때만 해도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벅스에 (나름대로) 다양한 음반들이 많이 구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기본적인 음악들은 도리어 구하기 힘든 반면 (베토벤 교향곡 전집같은게 없다) 내 돈주고 사서 듣기 힘든 음악들, 예컨대 poulenc이나 caccinni, dowland, bartok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뜻밖의 수확으로 얻을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레파토리를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원래 테이프로만 가지고 있던 상당수의 음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덤으로 약간의 가요들도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주력하던 터라, 하나 하나에 대한 깊은 감상을 하고 글을 쓸만큼은 되지 못했던게 사실인데, 이제 새로운 음원의 추가가 좀더 어려워진만큼, 가지고 있는 음악들을 좀더 제대로 듣고 감상기도 남겨보는 식으로 패턴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어떤 면에서 벅스뮤직의 DRM free MP3 무제한 다운로드는 오래갈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EMI가 DRM free 음원을 iTMS를 통해 팔기로 발표한 이상, 사용자의 자유를 고려하지 않는 무식한 DRM 정책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나만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기기들에서 별 문제 없이 들을 수 있다면 곡당 얼마의 돈을 요구하더라도 충분히 구매할 의향이 있고, 실제로 이전에는 CD도 많이 구매를 했었다.

소비자의 권한을 축소함으로서 이익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더 만족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맞을 것이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음원 자체를 파는 것만을 수익의 원천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음원을 이용한 새로운 가치 창조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실제로 돈을 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