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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alm Shouti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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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스도인의 경제관 &#8211; 나의 경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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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2 Jan 2010 04:55:06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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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0년 1월 12일 오전 트위터에서&#8230;

Namturtle98 기독교적 경제관은 뭘까.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음 좋은 사람들이 부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본주의 사회. 곧 돈이 최고인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lordmiss @Namturtle98 돈을 사랑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성경에 있나요? 별로 고민하실 일이 아닌 듯&#8230; ^^

Namturtle98 @lordmiss 그렇군요. 하나님만 따라가다 보면 부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10년 1월 12일 오전 트위터에서&#8230;</p>

<blockquote>Namturtle98 기독교적 경제관은 뭘까. 바울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믿음 좋은 사람들이 부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본주의 사회. 곧 돈이 최고인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lordmiss @<a href="http://twitter.com/Namturtle98">Namturtle98</a> 돈을 사랑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 성경에 있나요? 별로 고민하실 일이 아닌 듯&#8230; ^^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그렇군요. 하나님만 따라가다 보면 부는 따라오는 것이겠죠. 단순하게 생각해야겠네요. 반대로 부를 쫓아가는 삶은 결국 디모데 전서의 말씀대로 온갖 악의 뿌리가 되겠죠.

lordmiss @<a href="http://twitter.com/Namturtle98">Namturtle98</a> 하나님을 따르는 것과 부가 따라오는 것사이에는 별 연관성이 없어요. 아주 단순하죠.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그렇군요. 부자든 가난하든 복음안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죠. 바울의 고백대로.   하지만 부자가 되고픈 저의 욕망.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안타깝고 해서 적은 글이랍니다.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사실 성경대로의 가치관과 일에 대한 철학. 하나님의 소명 같은 의식이 충분히 뿌리내려 있다면 부자가 안되는게 이상하지 않나 요즘 생각해 봅니다. 혹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lordmiss @<a href="http://twitter.com/Namturtle98">Namturtle98</a> 부자 되지 마세요. 천국 가기 무지 힘들어요. 진짜루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ㅎㅎ 네. 맞죠. 그런데 전 구원받았고 천국이 제 집이니깐 돈많이 벌어서 교회도 세우고 선교사도 돕고 해야겠죠. ㅎ

Namturtle98 @<a href="http://twitter.com/lordmiss">lordmiss</a> 로드미스님이 담에 블로그에 성공적인 경제관에 대해 깊이있는 글 한번 적어주세요. 제게 적었다고 맨션 함 날려주시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blockquote>

<p>이 글을 적게 된 배경은 위와 같다.</p>

<p>아래에 적은 것은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적 경제관과 관련된 이야기. 별 논리는 없이 적어내려간 내용이다.</p>

<p><strong>1. 성경의 부자</strong> 성경에 많은 부자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가난한 사람들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간에, 성경이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재물 소유 여부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p>

<p><strong>2. 예수님의 경제관</strong>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하셨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재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까지 자신과 같은 생활을 요구하셨다. 전도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두 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있어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방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신 것이 아닐까.</p>

<p><strong>3. 바울의 경제관</strong>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이 바울의 경제관을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p>

<p><strong>4. 청부론</strong> 얼마전 청부론 논란이 있었다. 하나님의 원칙을 잘 지키면서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하면 안된다는 것이 골자였다고 생각된다. 이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부지런함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strong>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라면 훌륭한 개인 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돈을 버는데 있어서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strong>이기 때문에, 신앙과 부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의미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개인 윤리 중에서 부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검소함과 소명의식 정도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하던지 아니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대 사회는 ‘돈이 돈을 버는 사회’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부자가 된 케이스를 예로 드는 것은 복권 당첨으로 돈을 번 케이스를 말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검소함과 소명의식이 중요한 개인 윤리이기는 하나, 그 윤리는 부자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지금까지 사람 사는 사회가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런 사회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인정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냉혹한 세상의 논리만 살아남는 곳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의 권세를 마귀가 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p>

<p><strong>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strong>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도 짓고 선교사도 후원하면 하나님이 그걸 기뻐하실까? 사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짓는 것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큰 교회에 대한 질책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를 위해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은 발견할 수 없다. 그 분이 인간이 만든 성전 가운데 제한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은 눈에 보이는 멋진 것에 잘 현혹되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만을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따르기를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며, 가장 먼저, 가장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재물이다. 하나님은 결코 재물로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 드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냥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예수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대로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말했다. 구원받았으니 돈 좀 벌어서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선교도 도와야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교회건 선교이건간에 돈으로 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믿음이며, 선교에 필요한 것 역시 돈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돈 벌어서 교회에 내 놓고 자기 중심적인 삶에 대한 마음의 안식을 누리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그냥 자신의 삶 전체를 내 놓아야 한다. 성경에서 돈이 없어서 하나님의 일이 방해된 사건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보시라.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도대체 하나님이 왜 자신의 알량한 (그것이 수천억이든 수십조이든간에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재산을 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p>

<p><strong>6. 결론</strong> 최대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야기를 해 본다. (사실 사회적인 부분, 공동체성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안타깝지만 내게 아직 그만한 내공이 없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제각기 다른 모습과 다른 재능들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 하고,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른다. 이런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달란트’라고 부르며,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사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물도 그와 같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하나이고, 그것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된다. 어떤 기독교인도 ‘하나님 뜻대로만 살면 키가 커질 수 있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뜻대로만 살면 부자가 될 수 있어’라고 (진심으로) 말한다. ‘재물이 많다’와 ‘키가 크다’, 또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정확하게 같은 레벨에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돈을 버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p>

<p><strong>7. 추가</strong> Namturtle98님의 ‘전 구원받았고, 천국이 제 집이니까…’ 라는 말 속에서 구원관과 관련된 말을 추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구원은 일회적인 사건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성경은 강조한다. 바울은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조언한다. 일단 구원은 받았으니, 이제 돈 좀 벌어봤으면 좋겠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로 주어진 구원을 값싼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내 삶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더욱 많이 닮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을 뿐, 돈을 벌거나 세상에서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일 따위의 사명은 없는거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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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의교회 재건축 논쟁과 관련된 생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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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1 Jan 2010 10:27:17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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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교회 재건축 관련 논란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를 봐도 ‘교회의 일원’이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많았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교회 재건축 관련 논란을 보면서 중요한 것은 <strong>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strong>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p>교회는 ‘<strong>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strong>’이다.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를 봐도 ‘교회의 일원’이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그리고 (아마도 많았을) 배교자들) 더 어려운 것은 ‘공동체’라는 단어에 있는데, 이 공동체라는 것이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정도의 수준까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strong>교회 공동체는 아마도 가족 공동체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는 것</strong>임에 틀림없다. ‘핏줄’이라는 요소에 의해 지배받는 가족 공동체와 달리 이 공동체는 ‘믿음’이라는 요소로 지배받기 때문에 새로운 구성원의 추가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p>

<p>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어느 교회를 가 봐도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구원의 확신’ 보다는 ‘꾸준한 출석’이 더 중요하다. 사실, ‘구원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개인 차원의 문제이므로 실제로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가족 공동체’ 수준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p>

<p>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일 때, 그리고 그 모임이 진정한 ‘공동체’일 때,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p>

<p>그러나 교회가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없고 공동체 의식의 순수성 역시 검증할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이 순간이 언제인지 수치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가 회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빠르게 <strong>성장하는 교회도 그 교회 특유의 공동체성을 지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strong>.</p>

<p>결국, 교회가 자신의 공동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strong>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까지 스스로 분열하는 것</strong> 뿐이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그 분열이 실제 교회의 분열을 의미하든, 아니면 구역, 가정교회, 지교회 등의 세부적인 조직을 의미하던간에 상관없이. 즉, <strong>본질적으로 교회는 분열하게 되어 있다</strong>.</p>

<p>분열하지 않고 크기를 키워가는 교회는,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즉, 스스로의 공동체성의 필수 요소들을 조금 포기함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던지, 혹은 공동체성의 유지를 위해 신앙의 요소가 아닌 다른 요소를 도입하던지.</p>

<p>많은 경우,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담임목사님에 대한 애정 (혹은 충성심)이다. 그리고, 신앙의 본질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보이는 어떤 지엽적인 요소를 강조함으로서 여타 교회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전략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예를 들어 ‘새벽기도가 뜨거운’ 교회, ‘제자 훈련이 우수한’ 교회, ‘선교에 매진하는’ 교회 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들이다.</p>

<p>어느 것도 그 자체만으로 비판을 받을만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교회의 크기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p>

<p>네 개의 복음서가 서로 다른 신앙공동체에 전승되던 믿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strong>믿음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 전승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의미</strong>한다. 고대와 같이 공동체들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서 공동체들간에 네 복음서 공동체의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거리일 수는 없다는 생각만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p>

<p>결국, 보편적인 종교가 되기 위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부각시키려는 교회의 욕구, 그리고 차이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말로 카톨릭을 추구하는) 교회의 조바심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p>

<p>수만명이 예배드릴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수천억의 돈을 들여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는 사랑의교회와 관련해서, 그 돈을 어디다 쓰는 것이 좋겠다라던가, 헌금 강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수만명의 성도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가를 묻고 싶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힘이 과연 같은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적 신앙인지 아닌지를 묻고 싶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만명의 성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그 공동체적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조차 궁금증을 갖고 있는 내게는 그 대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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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oughts 인터페이스 번역 &#8211; 씁쓸한 마무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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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Dec 2009 01:18:59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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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MacStories에서 Thoughts에 관한 글을 봤다.

사실 기능적인 면에서야 Journler나 MacJournal같은 강자들이 있기 때문에 맥에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Journler 개발이 중단된 사실은 내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는 돈을 내고 라이센스를 구매까지 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하다.)

그래도 내 눈을 끌어당긴 요소는 바로 아름다운 인터페이스였다. NoteBook같은 경우가 그런데, 실제 글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acstories.net/">MacStories</a>에서 <a href="http://thoughtsapp.com/">Thoughts</a>에 관한 글을 봤다.</p>

<p>사실 기능적인 면에서야 <a href="http://journler.com/">Journler</a>나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sitepage.php?page=85">MacJournal</a>같은 강자들이 있기 때문에 맥에서 글을 쓰는데 있어서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a href="http://www.journler.com/blog/2009/09/23/journler-development-ends-sprouted-shutting-down/">Journler 개발이 중단된 사실</a>은 내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심지어는 돈을 내고 라이센스를 구매까지 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하다.)</p>

<p>그래도 내 눈을 끌어당긴 요소는 바로 아름다운 인터페이스였다. <a href="http://www.circusponies.com/notebook/features/">NoteBook</a>같은 경우가 그런데, 실제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갖는 것은 사용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a href="http://www.circusponies.com/notebook/features/">NoteBook</a>이 채용한 것과 같은 노트북을 실제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더 이상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 사용도 하지 않고 있지만, <a href="http://thoughtsapp.com/">Thoughts</a>의 경우에는 인터페이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p>

<p>재미있게도 이 프로그램은 아직 베타 버전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은 상황인데 사전 예약 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24 유로를 내면 이 프로그램과 <a href="http://creativebe.com/family/">Family</a>, <a href="http://creativebe.com/yum/">Yum</a>, 그리고 <a href="http://creativebe.com/resizeme/">ResizeMe</a>라는 프로그램 세 개를 번들로 주는 내용이다. 사실 번들 중에서 <a href="http://creativebe.com/family/">Family</a>는 조금 관심이 있지만 나머지 프로그램은 전혀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거의 5만원돈을 내고 구매한다는 것이 매우 모험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내년 1월에 베타 버전이 공개가 되면 그 때 시험을 해 보고 결정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p>

<p>이런 상황에서 <a href="http://www.macstories.net/news/thoughts-bundle-translators/">Thoughts 번역자를 찾고 있다는 MacStories의 기사</a>는 어떤 면에서는 내게 행운이었다. 이미 여러 프로그램들을 번역해 오면서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번역이라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자에게 이번 번들의 모든 프로그램 라이센스를 준다는 말은 매우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한글이 대상 언어에 포함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작정 개발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자원자를 거절한다는 것은 (큰 회사가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

<p>예상대로, 개발자는 매우 반갑게 답장을 보내 주었고, 베타 버전도 쓸 수 있게 되었다. 프로그램 실행 모습을 참고해 가면서 약 3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이 프로그램의 모든 인터페이스와 도움말을 한글로 번역할 수 있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특이하게 도움말까지 다 번역을 요구했기 때문에 다른 경우와 달리 시간이 좀 더 많이 소요된 것이다. 보통 인터페이스만 번역한다면 길어야 두 시간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번역을 하자마자 개발자에게 파일을 보내 주었고, 곧 한글 번역이 적용된 베타 버전을 받아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p>

<p>어제 밤에 개발자에게 연달아 두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하나는 프로그램들의 라이센스를 담고 있는 메일이었고, 여기에는 추가로 번역해야 할 문자열들이 조금 더 들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도착한 이메일은 약간은 황당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내부 회의를 해 봤는데 너무 많은 언어를 지원하게 되면 패키지 크기가 커지게 되므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2개의 언어만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즉, <strong>한글은 지원하지 않겠다는 말</strong>.</p>

<p>한국이라는 시장이 맥 소프트웨어에 있어서 매우매우 작은 시장이라는 것은 뭐 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도 이미 번역을 다 마쳤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한글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글 하나 더 넣는게 패키지 크기가 얼마나 커진다고!!</p>

<p>최근에 아이폰이 한국에 도입되면서 벌써 20만명에 달하는 아이폰 유저가 생겼다고 한다. 앞으로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거라고 생각된다. 이 사용자들이 모두 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어 맥 사용자는 극소수가 아닐까&#8230;) 이들이 아이폰을 통해 애플의 소프트웨어를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맥으로 전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한국의 맥 소프트웨어 시장도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아이폰 사용자들의 경우 이미 돈을 지불하고 어플리케이션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맥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도 윈도우용 소프트웨어 시장과는 달리 정품 사용 비율이 더욱 높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나 역시, 윈도우를 쓸 때는 돈을 내고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본 적이 거의 없지만 맥으로 넘어와서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정품으로 구매하고 있으니까.</p>

<p>그래서 맥 소프트웨어 시장이 어느 정도 의미있는 크기가 되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더 이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본다.</p>

<p>어쨌든, <a href="http://thoughtsapp.com/">Thoughts</a> 매우 마음에 드는 소프트웨어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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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cStories 이벤트 당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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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9 Dec 2009 00:47:33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Internet]]></category>
		<category><![CDATA[MacStories]]></category>
		<category><![CDATA[Money]]></category>
		<category><![CDATA[당첨]]></category>
		<category><![CDATA[이벤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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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MacStories App Tree의 당첨자가 발표되었다.

당당하게 Money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여러 개의 맥용 및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 라이센스를 확보해 두고서는 MacStories App Tree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이벤트를 벌였는데, 그 내용이라는게, 자신을 twitter에서 follow한 후 이벤트 관련 트위팅을 올리고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 되는 간단한 거였다. 댓글에 자신이 갖고 싶은 어플리케이션 이름을 적어 놓으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acstories.net/news/apps-tree-winners/">MacStories App Tree의 당첨자가 발표</a>되었다.</p>

<p>당당하게 <a href="http://www.jumsoft.com/money/">Money</a>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p>

<p>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 여러 개의 맥용 및 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 라이센스를 확보해 두고서는 <a href="http://www.macstories.net/giveaway/the-apps-tree-giveaway/">MacStories App Tree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이벤트</a>를 벌였는데, 그 내용이라는게, 자신을 twitter에서 follow한 후 이벤트 관련 트위팅을 올리고 블로그에 댓글을 달면 되는 간단한 거였다. 댓글에 자신이 갖고 싶은 어플리케이션 이름을 적어 놓으면 random으로 추첨을 해서 라이센스를 나눠주는 방식이였다.</p>

<p>댓글을 달기 전에 찬찬히 위에 이미 올라와 있는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원칙은 한 사람 당 한 개의 댓글만 달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어플리케이션의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가 탐나는 어플리케이션을 꼽아보니 <a href="http://cocoatech.com/">Path Finder</a>와 <a href="http://www.jumsoft.com/money/">Money</a> 두 가지였다. 하나만 적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a href="http://cocoatech.com/">Path Finder</a>를 포기하고 (내게는 <a href="http://www.binarynights.com/forklift">ForkLift</a>가 있으니까) <a href="http://www.jumsoft.com/money/">Money</a>를 적었다. 무려 $39짜리인데다가, 이미 아이폰에서 아이폰용 어플을 쓰고 있는 터였고, 30일 트라이얼도 해 보고 마음에 들었었지만 선뜻 구매는 못하고 있었던 어플리케이션이다. 덕분에 재무 관리를 좀더 타이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p>

<p>가만히 보니,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굉장히 열심히 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포스팅하고 있었다. 모든 포스팅들이 상당히 내용이 알차다. RSS를 등록해놓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

<p>어쨌든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되어 기분이 좋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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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cheist의 nanoBundle, 그 경제적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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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Nov 2009 03:04:20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free]]></category>
		<category><![CDATA[mac]]></category>
		<category><![CDATA[MacHeist]]></category>
		<category><![CDATA[nanobundl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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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Macheist는 재미있는 미션을 풀고 덤으로 소프트웨어 번들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맥 관련 커뮤니티이다. 이미 세 번의 번들 판매 행사를 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최근 두 번의 번들을 모두 구입한 바 있다. (두번째 번들 구입, 첫번째 번들 행사 때는 맥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에 Macheist에서 뭔가 새로운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macheist.com">Macheist</a>는 재미있는 미션을 풀고 덤으로 소프트웨어 번들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맥 관련 커뮤니티이다. 이미 세 번의 번들 판매 행사를 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최근 두 번의 번들을 모두 구입한 바 있다.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200">두번째 번들 구입</a>, 첫번째 번들 행사 때는 맥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p>

<p>며칠 전에 <a href="http://www.macheist.com">Macheist</a>에서 뭔가 새로운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간단하게 <a href="http://www.daisydiskapp.com">DaisyDisk</a>라는 프로그램의 라이센스를 공짜로 얻었다. 이 프로그램의 라이센스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끝나고 나자, 이번에는 nanoBundle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번들 프로그램이 발표되었다. 이 행사를 간단히 말하자면, <strong>모두 여섯개의 맥용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공짜로 준다</strong>는 것이다.</p>

<p>이 번들에 포함되어 있는 프로그램들은 <a href="http://www.wonderwarp.com/shovebox/">ShoveBox</a>, <a href="http://www.hogbaysoftware.com/products/writeroom">WriteRoom</a>, <a href="http://iconfactory.com/software/twitterrific">Twitterific</a>, <a href="http://tinygrab.com/">TinyGrab</a>, <a href="http://www.freeverse.com/mac/product/?id=7019">Hordes of Orcs</a>, 그리고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Mariner Write</a>이다. 이 중에서 <a href="http://www.wonderwarp.com/shovebox/">ShoveBox</a>는 이미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고, <a href="http://iconfactory.com/software/twitterrific">Twitterific</a>은 고맙기는 하지만 이미 <a href="http://www.atebits.com/tweetie-mac/">Tweetie</a> 무료 버전을 잘 사용하고 있는 터라 별로 필요는 없을 것 같고, <a href="http://www.freeverse.com/mac/product/?id=7019">Hordes of Orcs</a>는 내가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터라 한 두 번 해 보고는 실행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a href="http://www.hogbaysoftware.com/products/writeroom">WriteRoom</a>은 갖고 싶었던 소프트웨어라 앞으로 자주 사용하게 될거라고 생각되며, <a href="http://tinygrab.com/">TinyGrab</a>과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Mariner Write</a>은 사용을 좀 해 보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동일 목적의 소프트웨어들, 이를테면 스크린샷 프로그램인 <a href="http://www.realmacsoftware.com/littlesnapper/">LittleSnapper</a>나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인 Apple Pages, <a href="http://en.wikipedia.org/wiki/No_free_lunch">Mellel</a>같은 것들을 대치할 수 있을지 시험을 해 봐야 할 것 같다.</p>

<p>맥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고, 공짜로 주는 것은 그냥 고맙게 받을 뿐이지만, <a href="http://en.wikipedia.org/wiki/No_free_lunch">공짜 점심은 없다</a>는 말이 있듯이, 공짜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공짜인게 없는 법이기 때문에 이런 행사의 뒤에 어떤 논리가 숨어있을지 곰곰히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a href="http://www.marinersoftware.com/">Mariner Write</a>의 경우 모두 500,000 다운로드를 돌파하는 경우에만 라이센스를 준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최소한 500,000개 이상의 라이센스를 공짜로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입장에서 이런 엄청난 양의 공짜 라이센스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p>

<p>우선, 그들로서는 고객 지원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면이 있다. 공짜로 준다고는 하지만 Full License인만큼 고객 지원은 그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고객들과의 형평성이라는 측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p>

<p>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점이라면, 내가 <a href="http://www.macility.com/products/typinator/">Typinator</a>를 업그레이드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되돌아보면 답이 보인다. <a href="http://www.macility.com/products/typinator/">Typinator</a>는 타이핑 에러를 자동으로 교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사실 그보다는 단축키 용도로 더 많이 쓰고 있지만&#8230; 예를 들어 <code>lalc</code>라고 입력하면 자동으로 <code>lordmiss@lordmiss.com</code>라고 입력되는 따위의 일)  Macheist 번들 행사 중에 공짜로 제공된 프로그램이었고, 나는 이 프로그램을 대단히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Macheist 제공 라이센스의 경우에는 돈을 지불하는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메일이 날아왔고, 고심 끝에 결국 돈을 내고 업그레이드 라이센스를 구입하게 되었다.</p>

<p>이처럼 프로그램을 공짜로 제공하여 그 프로그램을 잘 사용하게, 그래서 필요를 많이 느끼게 해 놓고, 차후에 업그레이드 라이센스를 돈을 받고 판매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라이센스를 구매하는 고객이 0.1%라고 하면, 1000개의 공짜 라이센스를 뿌리면 단 한 개의 유료 판매밖에 기대할 수가 없지만, 500,000개의 공짜 라이센스를 뿌린 경우라면 장기적으로는 500개의 유료 판매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p>

<p>고객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돈을 모두 지불하고 구매한 고객과 공짜로 라이센스를 얻은 고객의 지원 요구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Macheist에서는 번들 프로그램의 다운로드를 모두 자신의 서버에서 따로 제공하고 있는데다가, 프로그램의 고객 지원 기능을 하는 포럼 글타래를 따로 운영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사는 최소한 고객 지원과 다운로드 측면에서 자신의 서버가 져야 할 부담이 없다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p>

<p>결국, <a href="http://www.thelongtail.com/">Chris Anderson</a>이 말한 <em>공짜의 경제학</em>이 이런 방식으로 실험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번들 행사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구글의 각종 온라인 서비스(구글 메일, 문서, 캘린더, 쩝&#8230; 너무 많다) 그리고 다운로드 서비스(구글팩에서는 이미 소프트웨어 다운로드도 가능하다)를 공짜로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세대들에게는 어쩌면 구글 프로그램보다 그다지 나아보이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구매하는데 수십 달러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Macheist의 이번 nanoBundle 행사는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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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간단한 링크 관리 프로그램 &#8211; Quiet Rea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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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4 Nov 2009 07:00:05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bambooapp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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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mac]]></category>
		<category><![CDATA[Quiet Read]]></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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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웹 브라우징이 정보 획득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링크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일이 중요한만큼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딜리셔스와 같은 온라인 웹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많이 있고, 이런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맥용 native application들만 해도 DevonThink, EagleFiler, Yojimbo, Together, Evernote, ShoveBox, Webbla 등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웹 브라우징이 정보 획득의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링크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이 일이 중요한만큼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a href="http://delicious.com">딜리셔스</a>와 같은 온라인 웹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많이 있고, 이런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맥용 native application들만 해도 <a href="http://www.devon-technologies.com/products/devonthink/">DevonThink</a>,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83">EagleFiler</a>, <a href="http://www.barebones.com/products/yojimbo/">Yojimbo</a>, <a href="http://reinventedsoftware.com/together/">Together</a>,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217">Evernote</a>, <a href="http://wonderwarp.com/shovebox/">ShoveBox</a>, <a href="http://www.celmaro.com/webbla/">Webbla</a>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p>

<p><a href="http://bambooapps.com/kyw">Keep Your Word</a>를 개발한 bambooapps에서 새로 내놓은 <a href="http://bambooapps.com/free-stuff/">Quiet Read</a>는 메뉴바에 상주하면서 링크를 관리하는 작은 프리웨어이다. 복잡한 기능은 전혀 없고, 그냥 몇 개의 링크를 저장할 수 있고 이 링크를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만 한다. 복잡한 기능이 없는만큼 편리한 부분도 많이 있다. 내가 항상 띄워놓고 사용하는 EagleFiler의 경우에, 항상 실행해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링크를 저장하는데 1~2초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수집을 완료하고 나면 자신에게로 포커스를 이동시킨다. 반면 <a href="http://bambooapps.com/free-stuff/">Quiet Read</a>는 그냥 링크를 끌어다 놓으면 그만이다. 한참 작업을 한 후에 천천히 정리를 해도 되고, 필요 없으면 그냥 지워버려도 상관없다. 이 프로그램에 수백개의 링크를 저장할게 아닌만큼,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만 보면서 중요한 것은 저장해 놓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우면서 목록의 수를 대여섯개 정도로 유지하면 매우 효율적이다.</p>

<p><img src="http://bambooapps.com/wp-content/uploads/2009/10/qr_capture_1.jpg" alt="실행 화면" title="" /></p>

<p><img src="http://bambooapps.com/wp-content/uploads/2009/10/qr_capture2.jpg" alt="내용 확인" title="" /></p>

<p>클릭하면 위 그림처럼 링크를 보여주고, 오른쪽 클릭으로 메뉴를 볼 수 있다.</p>

<p>이전에 <a href="http://bambooapps.com/kyw">Keep Your Word</a>를 단어 암기 공부용으로 구입한 후에 메일과 트위터를 통해 몇 번 피드백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a href="http://www.twitter.com/ctarda/">개발자</a>가 내게 메일을 보내서, 자신이 이번에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인터페이스 번역을 해 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다. 기껏 10개 정도의 문자열만 번역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기에 그러마고 약속을 했고 3분만에 번역을 완료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한글 상위에서 실행할 경우 한글 인터페이스가 지원된다. 혹시라도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개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길&#8230; 사실 그럴 건덕지는 거의 없어 보이긴 하지만&#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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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무회의 브리핑 자료 pdf 파일을 제공하기 시작</title>
		<link>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40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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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9 Aug 2009 06:05:53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Life]]></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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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pdf]]></category>
		<category><![CDATA[국무회의]]></category>
		<category><![CDATA[민원]]></category>
		<category><![CDATA[아래아한글]]></category>
		<category><![CDATA[정부]]></category>
		<category><![CDATA[포맷]]></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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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국정홍보처가 없어진 이후(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 통폐합)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무회의 브리핑 자료를 보내주고 있다. 메일 서비스를 받기는 하지만 사실 첨부된 파일에 담긴 자세한 내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읽어본 적은 거의 없고, 그냥 제목만 읽어보는 수준이었다.



지난 8월 11일에 메일을 받았을 때 병역법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길래 (몇 년만에!) &#8216;자세히 보기&#8217; 링크를 클릭해 보았는데, 이게 hwp 파일에 직접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_국정홍보처">국정홍보처가 없어진 이후</a>(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문화체육관광부에 통폐합)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무회의 브리핑 자료를 보내주고 있다. 메일 서비스를 받기는 하지만 사실 첨부된 파일에 담긴 자세한 내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읽어본 적은 거의 없고, 그냥 제목만 읽어보는 수준이었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836185814/"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국무회의 브리핑 2009-08-11"><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609/3836185814_96452685b2.jpg" width="500" height="412" alt="국무회의 브리핑 2009-08-11" /></a></p>

<p>지난 8월 11일에 메일을 받았을 때 <em>병역법</em>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길래 (몇 년만에!) &#8216;자세히 보기&#8217; 링크를 클릭해 보았는데, 이게 hwp 파일에 직접 링크가 걸려 있었다. <em>맥에서 hwp 파일의 내용을 보는 것은 매우 짜증이 나는 일</em>이기 때문에 읽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게 꽤 화가 나는 것이다. 전 국민들에게 읽으라고 보내주는 메일인데, hwp 파일만을 준다는건 나같은 사람은 이 내용을 보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화가 증폭되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는&#8230; 쿨럭)</p>

<p>바로 민원을 넣었다. <a href="http://www.epeople.go.kr/">국민신문고 사이트</a>는 그래도 ActiveX 따위를 쓰거나 로그인을 하지 않더라도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인증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835393947/"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국민신문고 민원신청 내용"><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596/3835393947_cc61b65c62.jpg" width="500" height="347" alt="국민신문고 민원신청 내용" /></a></p>

<p>글을 올리고 나서 약 2시간 쯤 후에 아래와 같은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835393777/"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국민신문고 민원신청 결과"><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466/3835393777_1a3473819f.jpg" width="500" height="464" alt="국민신문고 민원신청 결과" /></a></p>

<p>그냥 pdf 파일을 함께 보내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아래아한글 + Acrobat 한 카피만 있으면 해결되는 일이니 가장 간단하면서 동시에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p>

<p>8월 18일자로 도착한 국무회의 브리핑 자료는 아래와 같이 hwp 파일과 pdf 파일의 링크를 모두 제공하고 있었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836185644/"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국무회의 브리핑 2009-08-18"><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455/3836185644_b7833aa0fa.jpg" width="500" height="413" alt="국무회의 브리핑 2009-08-18" /></a></p>

<p>아래아한글(의 문서포맷)에 대한 내 생각은 2년 전에 올린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10">ODF와 HWP, 구글과 네이버</a>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아래아한글이 없이는 hwp 파일을 편집할 수 없고, 그래서 정부에 제안서와 같은 종류의 문서를 제출할 수 없는 현상은 여전하지만, 최소한 국민에게 전달되는 홍보 내용을 읽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글과컴퓨터가 의미있는 아래아한글뷰어 프로그램을 공개해주지 않는 한) pdf 파일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무회의 브리핑은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조금씩이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수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작은 부분부터 바꾸어 나가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니까.</p>

<p>정부가 제공하는 문서들을 hwp 뿐만 아니라 pdf로도 제공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를 함으로서, 문서의 변경 및 작성이 필요한 곳을 제외하고라도 최소한 읽기 전용 문서들에 대해서는 운영체제를 가리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변화되었으면 좋겠다.</p>

<p>첨언. 사실 pdf가 가장 좋은 대안은 아니다. 일반 텍스트 정보를 담고 있지 않는 한 자유로운 열람이라는 부분에서 여전히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정부가 배포하는 모든 문서는 일반 텍스트 정보를 담고 있는 txt, html 또는 odf와 같은 형식으로 배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pdf가 이전의 방법들에 비해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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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교인과 폭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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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5 Aug 2009 03:21:09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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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기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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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성폭력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꼭 이 내용 때문은 아니지만,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폭력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성폭력이 큰 문제가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 보다는 폭력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야만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적 의미의 폭력이라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그리고 다수가 소수를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라고 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성폭력에 대한 <a href="http://talkonsex.com/234">팟캐스트</a>를 들었다. 꼭 이 내용 때문은 아니지만,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폭력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볼 수 있었다.</p>

<p>성폭력이 큰 문제가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strong>성</strong> 보다는 <strong>폭력</strong>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야만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p>

<p>사회적 의미의 폭력이라는 것은 <strong>강자가 약자를, 그리고 다수가 소수를 어떻게 다루는가</strong>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글을 쓸만큼의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고, 다만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펴봄으로서 <em>폭력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em>에 대한 성찰을 해 보고자 한다.</p>

<p>성경(혹은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다른 책들)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언뜻 보기에) 상호 모순적인 내용이 많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엽적인 해석보다는 전반적인 기본 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p>

<p>우선, 구약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율법에 나타난 특징들을 볼 필요가 있겠다. 출애굽기 22장 21~13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p>

<blockquote>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blockquote>

<p>이 글에서 <em>이방 나그네</em>, <em>과부</em>, <em>고아</em>는 모두 사회적 약자를 표현하고 있는 말로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공동체의 임무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으며, 신명기 14장, 16장, 24장, 27장 등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 때 이 선언들의 이유로 <strong>너희도 이집트에서 나그네였다</strong>라는 말이 제시되고 있다. 즉, 누구나 약자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강자의 위치에 있을 때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경험은 그들에게 있어 전 공동체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는 기억이었으며, 그 기억을 되살림으로서 자신의 공동체 안에 그런 억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했던 것이다.</p>

<p>이스라엘 공동체의 타락을 경고했던 선지자들에게서도 이러한 의식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스라엘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선포했던 이사야는 이런 점을 너무나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p>

<blockquote>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1:16-17)
</blockquote>

<p>예레미야 22장 3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그리고 말라기 3장 5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에 이르기까지 이런 논리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일,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일, 사람을 학대하는 일, 노동자의 임금을 속이거나 억울하게 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이 분명하게 심판하시는 범죄 행위이다. 이런 행위들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이다.</p>

<p>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더욱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그는 세리나 창기같은 죄인들의 친구를 자처했으며,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변호하였다. 그는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었는데, 정황상 그가 고친 많은 병자들은 사회적으로 억압받거나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전혀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던 어린이들을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이다.</p>

<p>그러나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예수님의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낸 이야기는 바로 <em>선한 사마리안인의 비유</em>라고 생각한다. <em>사마리아인</em>은 유태인들에게는 상종할 수 없는 더러운 족속으로 대우받던 사람들이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레위인, 제사장 등과 비교한 것은 분명 의도적인 것이었으며, 좋은 이웃에 대한 통념을 가장 극적으로 깨버린 이야기였다. 지금 시대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보수 기독교인들이 가장 터부시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성적 소수자인 <em>동성애자</em>를 동일한 위치에 넣는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strong>목사보다 동성애자가 더 좋은 이웃이다</strong>라는 선언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p>

<p>결국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은 <strong>하나님은 약자를 편애하시는 분이다</strong>라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다수가 소수를 억누르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다.</p>

<p>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em>다수결의 원칙</em> 조차도 다수가 소수를 억누르는 합법적인 도구로 사용될 때는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다면 분명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의 편이 되실 것이다.</p>

<p>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보면, 보수 기독교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로, 힘의 논리가 더욱 횡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것이 소수를 억누를 수 있는 권한을 받은 것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힘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자라난 청소년들이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힘의 논리가 통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 특히 그 속에서 약자의 친구가 아닌 강자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strong>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strong>라는 준엄한 심판의 소리를 피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수많은 폭력 앞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니 가해자의 편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언제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피눈물을 흘리게 될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정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는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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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독교인과 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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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6 Jun 2009 05:07:43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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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는 술을 먹지 않는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개인의 기호를 중요시하기 시작했던 최초의 세대일지도 모르는 X-세대에 속해있는 덕분이었을 수도 있다.

술을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 지금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사람들이 왜 술을 먹지 않는지 잘 묻지도 않기는 하지만, 20대에는 그런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나는 술을 먹지 않는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개인의 기호를 중요시하기 시작했던 최초의 세대일지도 모르는 X-세대에 속해있는 덕분이었을 수도 있다.</p>

<p>술을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 지금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사람들이 왜 술을 먹지 않는지 잘 묻지도 않기는 하지만, 20대에는 그런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신앙’, 그리고 ‘어머님이 싫어하셔서’ 라는 이유를 댔었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술’의 상관 관계에 대해 이전 세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술은 피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술 마시는 일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p>

<p>나 역시 ‘술을 먹는 행위’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술 취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술을 마신 행위’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strong>‘술’이 과연 ‘술’일 뿐인지</strong>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을 해 보고 싶다.</p>

<p>한국 기독교가 술을 터부시하게 된 것은 한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의 영향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보니 한국 사람들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삶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술을 적극적으로 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금주령이라는 것이 선포된 적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그럴 듯한 이야기이다. 미국의 금주령이 1920년대에 종교적인 이유로 선포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는 이미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에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고, 19세기 초 혹은 20세기 초에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시기적으로 대체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p>

<p>사실 삶이 어려울수록 술을 많이 먹게 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20대에 청상 과부가 되어 혼자의 몸으로 힘들게 자식들을 키워내야 했던 내 외할머니가 술만 드시면 기분이 좋아지셨다는 말을 들어보면, 삶에 얼마나 낙이 없었으면 그러셨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에는 그런 외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고 하시지만, 그래서 남편이나 자식이 술을 마시는 것도 많이 싫어하시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본 술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도는 다를지 모르지만, 희망이 없는 힘든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위안으로서 술을 찾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런 삶 속에 신앙이 들어가게 되면서 술의 힘을 빌지 않고서도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을 것이고.</p>

<p>이제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술을 먹는 가장 큰 이유가 ‘희망이 없는 삶을 잠시나마 잊고 싶어서’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strong>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이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부패와 연결되어 있다</strong>는 점이다.</p>

<p>한마디로 말해서 <strong>내가 술을 먹지 않는 이유는 ‘술을 먹는 행위’가 ‘부패한 사회 구조’에 동참하는 일이 되기 쉽기 때문</strong>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패한 사회 구조란 ‘청탁’, ‘뒷거래’ 와 같은 말로 상징되는 무엇이다. 이른바 영업을 위해 술을 먹어주는 것,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술을 먹는 것을 뜻한다. 나는 실제로 사람들이 술을 먹고 부패한 거래를 하는 이유는 맨 정신으로는 그런걸 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함께 (어느 정도의) 타락에 동참함으로서 서로에 대한 경계감을 누그러뜨리는 전략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술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정도의 작은 문제보다는 ‘술 권하는 사회’, 또는 ‘부패를 권장하는 사회’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p>

<p>내가 가끔 듣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p>

<blockquote>김박사는 술을 안 먹어서 사장을 할 수가 없어!</blockquote>

<p>내가 사장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이거 말고도 훨씬 많이 있지만, 이 말이 현실적으로 들린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술로 대표되는 향락 문화 혹은 부패에 많이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속에서 ‘정의롭게’ 사는 것은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피하고 대적해야 하는 불의가 이거 말고도 얼마든지 많이 있고, 그 중 많은 부분은 내가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죄를 짓고 있다고 해서 이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p>

<p>가끔, 술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크리스찬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strong>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개별적인 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장하고 심지어는 장려하는 죄의 구조</strong>라고 말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을 개인적인 신앙의 부족으로 진단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시킨다는 면에서는 잘못된 이야기이다. 기독교인과 술의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그래서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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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eadability &#8211; 웹사이트 내용에 집중하여 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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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1 Jun 2009 04:05:02 +0000</pubDate>
		<dc:creator>lordmiss</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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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종이보다 인터넷에서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는 요즘, 인터넷 페이지들을 보다보면 내용에 집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광고들이나 글 내용과는 상관없는 다른 요소들이 눈을 잡아 끌면서 글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RSS로 전문을 지원하는 경우라면 RSS 리더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글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들은 (당연히) 전체 RSS를 지원하지 않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종이보다 인터넷에서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는 요즘, 인터넷 페이지들을 보다보면 내용에 집중을 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광고들이나 글 내용과는 상관없는 다른 요소들이 눈을 잡아 끌면서 글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RSS로 전문을 지원하는 경우라면 <a href=
'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371'>RSS 리더 프로그램</a>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글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매체들은 (당연히) 전체 RSS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브라우저를 열어서 봐야 한다.</p>

<p>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a href="http://www.mozilla.or.kr">Firefox</a>의 부가 기능인 <a href="http://www.greasespot.net/">greasemonkey</a>를 쓰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사이트마다 설정을 해 주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오직 Firefox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p>

<p>그러다가 내가 찾은 방법이 바로 <a href="http://lab.arc90.com/experiments/readability/">Readability라는 북마크릿</a>이다.</p>

<p>홈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615991714/"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Readability: Intro"><img src="http://farm4.static.flickr.com/3380/3615991714_77e1c04a43.jpg" width="500" height="109" alt="Readability: Intro" /></a></p>

<p>읽는 내용과 상관 없는 부분들을 모두 제거해 줌으로서 읽는 것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라는 설명이다. 이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p>

<p>우선 셋팅을 정한다. 쉽게 말하면 테마를 정한다고 보면 되겠다. 내게는 고정폭 글꼴로 출력이 되는 Terminal이 가장 보기 좋았지만, 사람마다 선택은 다를 것이고 어차피 테마가 네 개 뿐이니 적당한걸 고르면 된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615991536/"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Readability: Step 1"><img src="http://farm4.static.flickr.com/3413/3615991536_c1676c9c89.jpg" width="497" height="235" alt="Readability: Step 1" /></a></p>

<p>그리고는 가운데 보이는 Readability 버튼을 북마크 도구에 끌어다 놓는다. 이런 식으로 자바스크립트로 북마크를 만드는 경우는 많이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615171105/"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Readability: Step 2"><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439/3615171105_c21276448a.jpg" width="398" height="226" alt="Readability: Step 2" /></a></p>

<p>이제, 실험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가끔 들르는 사이트인 <a href="http://www.pressian.com">프레시안</a>에 들어가 보았다. 오늘 대문 기사를 클릭하고 나서 보이는 화면은 아래와 같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615990746/"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Original site - Pressian"><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425/3615990746_de8832b99b.jpg" width="500" height="243" alt="Original site - Pressian" /></a></p>

<p>그런데 Readability 버튼을 누르고 나서는 이렇게 변했다.</p>

<p><a href="http://www.flickr.com/photos/lordmiss/3615991008/" title="Flickr에서 lordmiss님의 Readability: Example"><img src="http://farm3.static.flickr.com/2424/3615991008_9932002761.jpg" width="500" height="179" alt="Readability: Example" /></a></p>

<p>무지 깔끔하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세 개의 버튼은 그림으로 그 기능을 쉽게 알 수 있다. 첫번째 버튼은 원래 사이트 모양으로 돌아가는 버튼, 두번째는 출력 버튼, 세번째는 이메일로 전송하는 버튼이 되겠다. 브라우저에서 본 내용을 <a href="http://lordmiss.com/journal/archives/183">EagleFiler</a> 프로그램에 잘 스크랩해 놓는 나로서는 이 상황에서 프린트 버튼을 통해 바로 pdf로 스크랩을 할 수 있으니 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내용 자체에 집중해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휘황찬란한 웹 디자인을 보는 것이 고역이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내용에 집중할 수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북마크릿을 강력하게 추천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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