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위대한 시장경제론자?

조갑제 닷컴에 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인가라는 글이 실렸다. 글을 쓴 목적은 결국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를 두둔하고 보호하는데 있는거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요새 유행하는 도덕성 검증은 게으른 좌파들이 만든 것인데, 무능한 자를 도덕군자, 유능하여 일을 많이 하다가 실수도 조금한 이를 부패분자로 몰려는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진 것이 한나라당이다.

결국 ‘유능하여 일을 많이 하다가 실수도 조금한 이’가 이명박씨라는 것이고, 검증으로부터 자유로운 깨끗한 후보가 있다면 그는 ‘무능한 자’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논평할 가치조차 없겠지만, 그 주장의 논거로 들고 있는 긴 분량의 전반부가 눈길을 끌었다.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25절(Mat 25:14-25 KOR)까지 나오는 이른바 달란트의 비유에 대한 그의 해석이다. 동일한 텍스트를 보고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단락의 이야기가 마지막 때에 대한 경고에 중심을 두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앞뒤의 문맥이나 이 비유가 나온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근본적인 목적은 ‘언제 올지 모르는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데 있는 것이다.

이 단락의 목적이 어디에 있다는 것은 밝히더라도, 세부적으로 조갑제씨가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분명히 언급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어쨌든 이야기의 세부 내용을 통해 나타나는 작은 부분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갑제씨의 성경 해석이 잘못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알레고리적 해석에 있다. 즉, ‘주인=하나님=예수님, 종=인간’이라는 등식에 맞추어놓고 해석을 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알레고리적 해석이 드문 일은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단락에서는 아니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가 알레고리적으로 해석될 필요는 없으며, 일부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 적용에 있어서 엄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갑제씨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성경에서 이자를 받고 돈을 꾸어주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 있다. 그것이 공동체의 단합을 해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희년의 법칙은 분명히 자본주의적 사상을 근본적으로 배척하는 것이다. 50년이 지나면 모든 종 된 사람을 풀어주어야 하고, 부득이하게 땅을 판 사람이 있으면 그 땅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희년에 해야 할 일이다. 이건 매수자의 권리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아닌가!

이런 제도의 이면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찾아볼 수 있다. 최소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개인주의적 번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비전이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비유의 주인과 하나님을 등치시키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달란트=재능’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주인과 셈을 해야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셈에 의해 이후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최소한 내 해석으로는 그렇다.

조갑제씨의 말처럼 근대 자본주의가 청교도의 사상적 뒷받침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실, 근면, 절제, 검소 등의 청교도적인 가치관과 자본주의의 결합이 유럽 세계의 번영에 큰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신이 자본주의를 지지한다고 하는 것은 심각한 오독이다.

조갑제씨의 달란트 비유 해석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끌어다 쓰는 성경 해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승리가 무엇인줄 아는가…
하고싶은 말 그 많고 많은 말
힙겹게 억누르고
오직 주님만 말씀하게 하는 것
바로 승리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