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듣는 비발디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

자극적인 모델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음반이 이런 음악을 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지는 음반이다.

거금을 들여서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마련한 파나소닉 CT-590을 가지고 다니면서 학교에 오고가는 두 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학교를 나오면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저녁 시간의 학교는 조용해서 볼륨을 높여놓지 않아도 듣고 싶은 음을 놓치는 일이 거의 없다. 경쾌하게 시작하는 바로크 음악이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어느덧 걸어가는 속도도 음악의 속도에 맞추어지는 듯 하다.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귀에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처럼 비발디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생긴다.

학교 정문에서 전철역까지는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과 많은 소리들 속에 묻혀서 가는 길이다. 음악은 들렸다 안들렸다 하고, 사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피해가느라 음악에 신경을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지경이다. 눈을 자극하는 많은 불빛들과 이어폰의 음악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만드는 쿵짝거리는 스피커의 함성들… 욕망이 토해지고 소비되는 거대한 모습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길이다.

이제 전철역 안으로 들어서면 그나마 소비와 향락의 불빛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전철 안은 소리로 가득하다. 이어폰의 볼륨을 높여서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면 어느새 옆 사람이 내가 듣고 있는 이 음악을 듣게 될 정도가 아닐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사람이 붐비는 전철 안에서 정말로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떠올리는 온갖 상념들이다. 이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리고 지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갖게 되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그들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항상 하는 이런 생각들이 변합없이 머리 속을 채우면서 음악에 대한 집중도는 자연히 떨어지게 된다.

전철에서 내려서 이제는 마을버스를 타야 할 순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왠지 마을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소음 속에 묻혀서 이 살아 움직이는 소리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몇십미터를 걸었을 뿐인데도 벌써 주변은 조용해진다.

맑은 밤하늘이 검게 티없는 하늘이기에는 주변에 빛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약동하는 음의 향연들을 즐기기에는 너무 많은 소리가 있다. 그래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듣는 비발디의 음악은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을 사라지게 한다. 어느덧 음악은 초반의 경쾌한 분위기에서 제목 그대로 ‘스타바트 마테르’의 느낌을 전달해 주는 처연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사라 밍가르도는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전달해 주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카운터 테너가 전달할 수 없는 느낌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해진다. 빛과 소리는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지만, 음악을 타고 전해지는 감정만큼은 점점 더 고조가 된다. 이제야 밤의 분위기에 동화되어가는 느낌이다. 점점 침잠해져가는 밤의 분위기와 깊은 슬픔의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는 성모의 아픔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집이 가까와 오니 바이올린와 하모니움의 소리가 조금은 맥이 빠지게 들리기도 한다. 좀더 내밀었으면 좋겠는데… 좀더 길게 끌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고양된 침잠함과는 어긋나는듯한 짧은 바이올린의 호흡이 기이한 조바심을 느끼게 한다. 이제 다왔구나… 이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한 시간이 끝나가는구나…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고 가방에 다시 집어넣으면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단 한 시간동안 음의 향연에 빠져서 오던 시간이 즐겁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내게 티없이 맑은 완전히 깜깜한 밤하늘과 소리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고요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제대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만한 마음의 빈 자리는 있는지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내 마음은 여전히 번잡하고 많은 생각들로 가득차 있어서 조금만 환경이 맞지 않아도 그걸 쉽게 포기하고 만다. 어차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많은 빛과 너무 많은 소리로 가득차 있다면, 그 속에서 내가 들어야 할 소리와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구별하는 방법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필요없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소리들이 그 나름대로의 의미와 몸부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걸 그 모습 그대로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