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독서 일기

이번달에는 모두 12권의 책을 읽었다.

소설

이것 저것

람세스 시리즈를 모두 읽었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네 번째 책으로 완결이 되었다. 황금살인자는 네 권으로 구성된 디런지에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중국을 배경으로 관원인 주인공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이다.

탕자 돌아오다

앙드레 지드의 (정말) 짧은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성서의 탕자의 비유를 도전적으로 다시 쓴 우화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그가 1907년에 연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지드의 나이 38세에 쓴 소설이다. (최근에는 작가의 나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아래에 적을 비유의 위력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도전적인 비유에 대한 예로서도 훌륭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다시 재창조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멋진 예라고 생각한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일정 정도 이상 상상력을 동원해서 열심히 따라가야만 하도록 하는, 그러면서도 그 길이 힘들거나 소득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유도하는 지드의 솜씨는 칭찬할만했다.

비소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이 책은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 중에 거의 가장 위에 있는 책이다. 그런데 4월 중에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두 권의 책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이벤트가 있었고, 이런 기회에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을 대여해서 읽어보기로 하고 이 책을 빌려서 읽었다. 읽고 나서 내가 쓴 평은 이렇다.

이런 책이 인기를 끄는 지금 시대란… 그렇지만 나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내가 무뎌진건가 아니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인가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베스트셀러는 예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서평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전작과 비교해서 이렇게 평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전작인 다윗과 골리앗이나 아웃라이어같은 책의 인기는 어디서 온걸까? 결국 그 책들이 주는 (또는 준다고 믿어지는) 핵심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가 중요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앞의 두 책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 또는 평균을 뛰어넘는 상위 1%의 비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반면에 타인의 해석의 경우에는 낯선 이를 신뢰하지 말라와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작들이 믿을 수 없이 성공적인 사례들을 보여 준다면 이번 책은 믿을 수 없이 어처구니 없는 사례들을 보여 준다. 누가 뭐라도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사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에서 끝나지 않고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행동 수칙들을 개선해야 한다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직 내에 또는 개인적으로라도 이런 잘못된 가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조직 또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권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현대사로 넘어간다. (물론 그 중에 들어 있는 일제시대를 다룬 박시백의 35년도 읽어야 하지만, 이 시리즈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으므로 뒤로 미루기로 했다. 2019년 중순에 나온 5권이 1935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아직 완결되려면 시간이 꽤 남은 듯 하다.) 언제나 역사란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견이 갈릴 수 밖에 없지만, 현대사는 그것이 현대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분야이다. 지금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가 어렵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현대사를 일관된 시각에서 꿰뚫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저술한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덕분에 쉽게 잘 읽힌다는 장점도 얻었다. 이제 1권을 읽은 것이니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긴 했지만, 해방 후 3년의 시간을 막연하게 혼란의 시기라고만 평가하는 많은 책들에 비해서 어떻게 그 시기에 그렇게 풍성한 논의들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주요 사건과 논의들을 잘 정리해 두어서 좋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과거 시대를 혼란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비유의 위력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은 내게 도전적이고 좋은 내용과 그에 못지않게 읽기 힘든 문체, 이상한 번역으로 기억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전에 내가 읽었던 그의 책들을 모두 김준우가 번역하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판했다 것을 감안하면 그게 작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즐거운 책읽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깨달음과 의미들이 너무 분명하기에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국내에 ebook으로 나와 있는 그의 책이 이제 몇 권 남지 않았으니 몇 번 더 이 정도의 고생을 하는 것은 뭐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예수가 가르친 비유들을 수수께끼 비유, 본보기 비유, 그리고 도전하는 비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동하도록 도전하는 비유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정의를 복음서 자체에 적용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전통적인 복음서 해석자들이 들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오래된 텍스트를 전통대로 읽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생각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사유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배움의 발견

이 책은 읽으면서 참 희귀한 경험을 했다. 책의 절반까지는 정말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는 것이 힘들어서 책장을 넘기기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절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조울증과 이상한 종교적 신념에서 오는 망상에 빠져있는 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가족들, 그 안에서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 아버지의 신념이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앞 부분은 정말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억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성찰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지은이가 이제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에 내가 꼭두각시로 이용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좀더 마음을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 자아. 타라 웨스트우드는 그것을 교육(educated)이라고 불렀다.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읽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을 어떻게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눈부신 반면교사로 읽었다. 그리고 어떤 환경도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간증으로 읽었다.

독서 일기: 베조스 레터

이 책은 우리 회사의 경영진 및 팀장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두 권의 책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한 권인 존 도어의 OKR 책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지금 당장 도입해서 사용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베조스 레터는 이보다도 더욱 강렬한 느낌으로 기억될 책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우연이나 행운이 많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상거래 사이트인 것도 맞고 베조스가 세계 최고의 부자인 것도 맞는데,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 동안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 인물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베조스가 이야기한 일과 성공의 원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리되지 않은 채 내가 그 동안 생각해 왔던 여러 가지 생각의 단초들이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내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것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해 보았는지가 아니라 실행하고 체화했는지이다. 생각을 해 보는 것으로는 아무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다시 피드백을 얻어서 개선하는 노력이 반복되어야만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회사가 나름대로의 상황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다름이 다른 전략과 다른 실행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혼자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원칙이 필요하고 그 원칙은 다름을 넘어서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기본이어야 한다. 그 기본은 결국 그걸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독서가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독서 일기: 인간 본성의 법칙

올해 들어 지금까지 147권의 책을 읽었고, 5월 이후에는 꾸준히 한 달에 15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으니 이틀에 한 권 정도의 속도로 책을 읽어온 셈이다. 물론 이 중에는 100 페이지 내외의 짧은 책들도 많이 있고 (주로 범우문고나 살림총서 같은 시리즈물) 장편 소설도 있기 때문에, 생각할 것이 많은 인문 서적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북트리라는 iOS 앱 덕분에 각 책을 언제 읽기 시작해서 언제 마쳤는지도 모두 기록을 할 수 있다)

마이클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은 8월 24일에 읽기 시작해서 11월 17일까지 읽었으니 (물론 그 중에 틈틈이 책을 읽어오기는 했지만) 거의 석 달을 꼬박 이 책에 투자를 한 셈이다.

말이라는 것, 글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적절한 정도를 찾는 것이 참 어려운 법이다. 너무 짧아지면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너무 길면 장황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제목은 (특히 법칙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레토릭 같은 면이 있는데, 그 법칙이 세가지, 다섯가지, 열가지 정도까지는 그럴 듯 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서처럼 18가지나 되면 그 법칙을 외우는 것도 힘든 상황이니 법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비하면 꽤 장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열 여덟가지의 법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기술 방식은 각 법칙마다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유명한 인물의 사례를 들고 이로부터 각 법칙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사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내게는 꽤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책이 꽤 긴 책이기도 하지만 (거의 63만자인데,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우울할 땐 뇌과학>이 약 18만자 정도 되니 이런 책 세 권이 넘는 분량이다) 이런 기술 방식의 단순함 때문에 빠르게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솔직히 책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서로간에 잘 들어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끼워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어서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 특히 모든 사람이 인간의 본성을 배우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있어서만큼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고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단순한 내용을 좋아하기 쉽지만 진실이란 항상 그것보다는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법칙이라는 말이 주는 단순함과 가벼움에 비해 그 내용은 훨씬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자세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제안을 따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마이클 그린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단 평생동안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이상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전제를 동의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펼쳐보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진지하고 세밀하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반대로 가볍고 빠르게 읽는 편이다) 곱씹고 생각할 부분이 많이 있는 책일 것이다.

전자책으로 책 읽기

2019년 들어 지금까지 8개월 동안 모두 107권의 책을 읽었다. 2006년에 쓴 블로그 글 중에 1년에 50권 책읽기라는 글이 있는데, 이걸 보면 1년에 50권의 책을 읽는게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50권이라는 목표에 성공을 하기도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지나왔다.

2012년에 리디북스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전자책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독서 생활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휴대전화나 태블릿으로 책을 읽었고, 리디북스 페이퍼라는 전용 기기가 나온 후로는 페이퍼 라이트, 페이퍼, 페이퍼 프로까지 모두 구매를 하면서 여기서 모든 독서를 하게 되었다.

전자책 전용 기기를 사용하면서부터는 1년에 50권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이제는 100권을 훌쩍 넘는 상황이 되었다 (수치상 올해는 150권도 가능한 상황). 그리고 올해부터는 북트리라는 앱을 이용해서 독서 로그를 남기고 있는데 이 덕분에 읽은 책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전자책이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많은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내 페이퍼 프로에 64기가 micro sd 카드를 넣어두고, 책 수천권을 모두 넣어서 들고 다닐 수 있다. 긴 호흡의 책을 읽다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경우에 재미있는 짧은 책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시작한다던지, 여러 권의 책을 교차로 참고하면서 읽는다던지 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빠르게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전자책이 좋은 또 다른 점은 기록이 정확하게 남는다는 점이다. 언제 읽었는지는 물론이고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거나 메모를 남긴 것들을 언제든 빠르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전자책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는 책의 내용에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책의 조판이나 종이의 질감 같은 (어쩌면 책의 본질일 수도 있지만) 텍스트 자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꼴, 자간 간격, 줄 간격, 페이지 여백, 컬러 삽화 등 다양한 책의 요소들이 전자책에서는 변환 가능 또는 불가능하게 된다. 책 제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 마음대로 이런 요소들을 조절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책의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특징이 된다. 많은 경우 이런 텍스트 외적인 요소들은 내용의 부실함을 덮기 위해 사용되고 나는 이런 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책의 물리적인 제작 상태 자체가 책의 존재 가치인 경우가 있다. 사진이나 그림이 많이 들어있고 그게 중요한 요소인 책들. 종이 자체의 성질을 이용하는 책들. 그런 책은 전자책의 제한된 사용자 경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책이 가진 물리적인 한계 자체가 가치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책은 활자화된 텍스트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니 전자책이라는 형식이 그 가치를 충분히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전자책으로만 책을 읽기로 결심했지만 이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전자책으로 제작되는 책의 숫자가 종이책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기 때문이다. 책도 상품이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에는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는 종이책의 수가 너무 많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들을 읽게 되다는 것인데, 이런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들은 전자책으로 제작할 이유가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된 책의 경우라면 더욱 답이 없다.

앞으로 전자책이 먼저 출판되고 종이책은 필요에 따라 나오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 믿지만, 그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전까지는 깊이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도서관을 잘 활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어지간한 도서관으로는 어렵고 규모가 있는 곳이어야 하겠지만.

독서 일기: 마음의 탄생 (레이 커즈와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낙관론과 비관론. 물론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데에도 이 두 가지 관점이 있을 것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긴 책은 팩트풀니스였다.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사실에 의거해서 보도록, 그래서 더욱 낙관적으로 보도록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쨌든 인류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마음의 탄생 역시 낙관론을 기저에 깔고 있는 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 순진하게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의 경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술적인 내용에서 보자면, 모든 디테일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않고서도 전체의 기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기능을 모사하는 시스템을 만들 때 내부적인 구성 요소들이 모두 일대일로 일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로서 모사가 가능한 시스템이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여기서 기능의 모사가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를 잊으면 안된다) 세부 구성 요소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은 그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부분과 전체 사이의 어떤 지점에 부분의 합과 전체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어떤 포인트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예를 들면 나노 입자의 성질) 그런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조차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과 관점으로 생각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시스템이 생각처럼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순한 방식의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배우게 된다면 이 책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커즈와일이 보여준 낙관론을 조금 끼얹는다면 미래 사회를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레이 커즈와일만큼 낙관적이지는 않고 그보다 아주 조금 뒤쳐져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더 앞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려고 한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https://ridibooks.com/v2/Detail?id=672000075

김세윤 교수님의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이 책 내가 쓴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정도로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누군가가 내 신앙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냥 이 책을 소개해 주면 될 것 같다.

2016년을 보내며 (1) 독서 정리

2016년을 보내는 시간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년이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올해를 맞이하면서 했던 생각 중에 역시 중요한 생각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자게 되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세울 수 있는 목표이기도 했고,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페이퍼 라이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목표이기도 했다.

올해 읽었던 책들은 (읽은 순서와 상관 없이) 플루언트 (조승연), 그릿 (안젤라 더크워스), 백설춘향전 (용현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곽재식), 엑시덴털 유니버스 (앨런 라이트먼), 앵무새 죽이기 & 파수꾼 (하퍼 리), 마션 (앤디 위어), 나의 한국 현대사 (유시민), 해방 후 3년 (조한성), 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식원, 황금희), 본삼국지,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장자, 근원수필 (김용준), 살며 생각하며 (미우라 아야코), 아멜리 노통브 시리즈 8권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왕자의 특권, 생명의 한 형태, 아담도 이브도 없는, 제비 일기, 적의 화장법, 앙테크리스타, 살인자의 건강법), 보르 코시건 시리즈 2권 (명예의 조각들, 바라야 내전), 깊은 강 (엔도 슈사쿠) 그리고 헬로월드 시리즈의 거의 모든 책 (약 90권) 정도 되는 듯 하다. 헬로월드 시리즈의 책들은 대체로 매우 짧고 한정된 주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숫자를 그대로 세기에는 좀 우스운 측면이 있지만 굳이 권수로 따지자면 약 100여권 정도이다.

올해 읽기를 시작했지만 포기한 책은 홍루몽과 대망이 있다. 둘 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긴 호흡의 소설이기는 한데, 그런 이유로 따라가기에는 호흡이 너무 길다는 느낌이 들어서 몇 권 읽다가 중단한 상태이다.

올해의 책 읽기를 분석해 보면, 서점에서 책을 살 때와는 달리 베스트셀러의 비중이 늘었고 기독교 관련 서적이 많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이북으로 나오는 책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또는 출판사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게 충격을 준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고 해야겠다. 가장 최근에 읽은 조승연의 플루언트 같은 경우에는 내가 오랫동안 머리 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내용들을 너무 비슷하게 다루고 있고 너무 잘 정리해 놓아서 약간은 놀랍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이북에 편중되다보니 주제가 한정된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내년에도 유사한 패턴으로 지속적으로 책읽기를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 생활의 패턴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생각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나는 이유

리디북스에서 헬로월드 시리즈를 구매해서 읽고 있다. 일년에 5천원의 돈을 내고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드는 기획 중의 하나다. 웬만하면 이 시리즈로 새롭게 나오는 책들을 다 읽고 있는데 며칠 전에는 <윤동주>와 <슈퍼히어로 전성시대>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슈퍼히어로 전성시대>의 내용에 실려 있는 마블 코믹스 같은 것은 내가 관심을 갖던 분야가 아니어서 그냥 심심하게 읽어내려갔지만,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슈퍼히어로들이 더 이상 선을 지키는 용사 같은 존재가 아니라 결점과 단점을 지닌 개성있는 존재들로 그려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누구나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을 하곤 하지만, 사실 세상을 구한 영웅조차도 그냥 평범한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는 나같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게 70년대 슈퍼히어로와 지금 시대의 슈퍼히어로가 갖는 차이이다. 더 이상 천편일률적이고 전형적인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한 면에서는 영웅적이지만 나머지 많은 부분에서는 한없이 찌질한 사람들이 만화이건 영화이건 소설이건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고 그것이 더욱 현실적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제시대를 온 몸으로 살았던 윤동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독립 운동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본 그였을테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과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창씨개명을 받아들이고 일본으로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내야 하는 삶의 모습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 사이의 커다란 간격은 그것을 정직하게 바라볼수록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내게 윤동주가 자신의 시 속에 표현했던 그 부끄러움이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인 듯 하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전제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명확하다. 이 땅의 어두운 곳, 소외받은 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일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내 생각이 관념적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적인 차원으로 구체화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아름다운 거울이다. 문익환 목사, 장기려 박사, 김교신 선생, 문정현 신부, 그리고 이름 없이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나는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지 알면서도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하는 비겁한 면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긴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을 이미 살아내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그들의 뒤를 따르기 보다는, 그분들에게조차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연약한 모습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위하는 비겁함은 그 생각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더욱더 비겁한 일이다. 이런 비겁함 때문에 스스로가 부끄럽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움을 시로 승화시켜낸 윤동주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의 차디찬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는 찬란한 별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동기였던 문익환 목사만큼이나 오랜 삶을 살았다면, 그에게도 수많은 영욕의 굴레가 씌워졌겠지. 그리고 이런 생각이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위로하는 비겁한 변명이 되어 주었겠지… 윤동주의 시는 이런 내 마음을 너무나 부끄럽게 노래하고 있다.

2016년을 시작하며

2015년이 지나고 2016년을 맞이하게 된다. 많은 일이 있었던 지난해였지만, 무엇보다도 큰 일이라면 역시나 직장을 옮긴 일일 것이다. 작년 이맘때는 지금 다니는 직장에 다니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 조금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이나믹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더욱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결국은 비슷비슷하고 정말 새로운 것이란 잘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고민이 나만의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고민임을 알게 되는 것만큼 경험할 때마다 새로운 일이 없는 듯 하다.

그래서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해 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사람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 것이 고민하는 순간 답을 주는 것도 아니며, 모든 책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것만큼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를 알아보는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시간을 투자한 것에 대한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에 ‘1년에 50권 책 읽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그 목표를 세웠던 해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지난해에는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70여권의 책을 읽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열심히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세어볼 수는 없었다. 올해에도 많은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리디북스에서 네 번에 걸친 이벤트에서 얻게된 책이 거의 1000권에 다다른다. 물론 읽어본 책도 많이 있지만 읽어보지 않은 책이 더 많은 것 같다. 기숙사에서 지내는 날이 꽤 될 예정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에 비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는 더 늘어났기 때문에 이 책들 중에 상당수를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중학교 시절에 세웠던 인생의 목표인 ‘교양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목표는 40이 넘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목표인 것 같다. 그래도 10대에 생각했던 내 삶과 지금 40대가 되어 생각하고 있는 내 삶이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기도 하다. 강명식은 ‘그 때까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10년을 하루같이 황소 걸음으로 걸어간다면…’이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대략 30년 정도를 그렇게 걸어온 것 같다. 앞으로도 수십년을 그렇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가다보면 ‘그곳, 그곳에 더 가까워 있겠지…’.

왠지 조금은 더 감상적이 되는 2016년의 둘째날 저녁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책을 두 권 읽고…

최근에는 주로 리디북스를 이용해서 책을 읽고 있다. 아이폰 5s와 아이패드 3를 쓸 때는 사실 전자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베가 시크릿노트와 HP 슬레이트 7 태블릿을 사용하게 되면서는 전자책을 읽는 빈도가 많이 늘어났다. 전자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실 책의 부피와 무게 문제도 있고, 독서를 하면서 줄을 치거나 메모하는 것을 싫어하는 습관 때문에라도 나는 전자책을 매우 좋아한다) LCD 화면으로 읽는 것은 눈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달 전 쯤에는 리디북스 전용으로 쓸 생각으로 교보 Sam을 구매했고 편안하게 전자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꽤 만족하고 있다.

리디북스에서 꽤 많은 책을 구매했는데 최근에는 그 중에서도 How to read 시리즈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시리즈에 포함된 책은 마르크스, 니체, 데리다, 프로이트, 라캉, 히틀러, 다윈, 셰익스피어, 성경, 푸코, 융, 사드,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그리고 마키아벨리 등 모두 16권이다. 첫번째로 How to read 마르크스를 읽었고 다음으로는 How to read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How to read 다윈을 읽고 있는 중이다.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고. How to read 시리즈의 책은 몇몇 원문에 해설을 붙여놓은 식으로 되어 있는데,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사상에 대해 그저 수박 겉핥기 식의 지식밖에 없었던 내게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았다. 사실 다 읽고 난 지금도 마르크스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감은 전혀 잡을 수가 없다.

반면 성경의 경우는 정 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평생 읽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생각해야 할 새로운 것이 발견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How to read 성경‘의 저자인 리처드 할로웨이 주교의 해석과 견해를 읽으면서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비교도 해 보고 내 나름대로 평가도 해 보면서 꽤 많은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었던 독서였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 개신교식의 성경 이해에 좀더 익숙한 상황에서 유럽 가톨릭식의 성경 해석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고.

평생 마르크스를 진지한 마음으로 읽어온 사람의 견해를 읽으면서 그걸 한번에 이해해 보자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얄팍한 생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저작을 제대로 읽고 다시 한 번 깊이있게 이해해 보자는 결심이 선 것은 아니다. 이 방대한 시리즈의 책들을 한 번씩은 읽어보고 나서야 다음 독서의 주제가 어떻게 될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깊이있는 인문학 개론서를 읽고 실제로 더 깊이있는 인문학 독서를 하게 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