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짧은 평: 중요한건 생각하는 방식이야!

들어가는 말

칼 세이건이 쓴 이 책은 유시민이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가져가겠다’고 했다는 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주의 광대함, 그리고 인간의 보잘것 없음, 그리고 그 인간의 위대함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태양계의 바깥쪽을 향해 우주 탐사선을 쏘아올리던 시대에, 2020년에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해 고생하고 있을거라고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우주로 가는 노력들은 충분한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서 좀처럼 뉴스에 나오는 일이 없고, 우주를 향한 위대한 도전을 아낌없이 지원하던 미국 정부 대신 테슬라의 괴짜 CEO가 상업용 우주 여행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가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관계가 없다.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이야기하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이 스스로의 한계와 약함을 깨닫게 되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가설의 장점을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것이다.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

물론 오래 전에 쓰여서인지 구체적인 부분에서 동의하기 힘든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내용들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정확하게 따지기는 힘든데, 내 전문 분야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잘못된 표현들이 꽤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100억개가 넘지만, 이 중에서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약 50종 뿐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약 몇 억개 수준이다. PubChem에는 현재 대략 1억 1100만개의 화합물 구조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무기 분자도 있으니 유기 분자의 수는 이보다 적다고 볼 수 있다.”알려진”을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으로 바꾸면 100억개는 너무 작은 숫자가 된다. 이 논문에서 C, N, O, S 그리고 할로겐 원소 17개까지만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화합물의 개수가 1664억개 정도로 보고하고 있고 (이 화합물들의 데이터베이스가 GDB-17이다), 사용 가능한 원소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숫자는 엄청나게 커지는데다가 P(인) 같은 원소를 더 넣으면 숫자는 더욱 커진다. 단순한 enumeration으로 가능성 전체를 세는 것은 참으로 큰 숫자를 따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약 50종 뿐이라는 것도 사실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아마도 DNA나 RNA의 기본 조각인 핵산과 단백질의 기본 조각인 아미노산, 지방에 사용되는 지방산, 탄수화물의 기본 조각인 당 정도를 합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유기 분자는 이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일 것이다.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와 양성자의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enumertion하면 우주에서 셀 수 있는 어떤 것의 숫자와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 달려있는 “유용한”이라는 형용사이다. 핵산을 단순히 조합하는 것만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겠지만 그것이 유용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특징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용함”의 정의가 달라질 것이니 지구에서 유용한 것만이 유용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환경에 따라 특정한 문법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힌두교가 이야기하는 순환적인 우주론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대의 서구인들이 고대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동경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시대에 칼 세이건이 이 책의 내용을 수정한다면 아마도 이 부분을 가장 손대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정보를 한때는 귀하게 여길지 모르겠으나,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세대를 거쳐 반복해서 구전되는 동안에 점차 변질되게 마련이고, 결국에 가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퇴색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시간 구전되어 내려오며 그 생명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경전, 설화, 신화 같은 것들인데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변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사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사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도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구전이 아니라 활자의 형태로 정확하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면 새로운 세대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반면, 어떤 (사실 대부분의) 책들은 활자의 형태만 남을 뿐 인류의 기억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 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이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더 이상 도서관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롭게 생성되는 정보의 양은 이제 도서관 같은 것으로 보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인간이 유용성을 평가하는 시대를 넘어서 인공지능에 의해 이해되고 해석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빅데이터의 시대에는 개별 사건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고, 그런 수많은 개별 사건 사이의 비선형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인공지능이 활약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의 가치, 기억을 모으고 보존하는 것의 가치는 절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과율이 초래한 진화의 결과는 얽히고 설켜 있다. 우리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해한 것 같으면 이해하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인간이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자만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자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자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수백년 후에 지구는, 그리고 인류는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랜 기억과 역사에 기대어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연과 다른 인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잡하다’는 현실이지만 ‘그러므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해석이고 철학이다.

맺는 말

철학책을 읽으면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시를 읽으면 감성적이 되고 과학 책을 읽으면 분석적이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그 내용이 철학이건 과학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상관없이 종합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구체적인 어떤 부분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삶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종합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은 좋은 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여러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은이의 생각과 스스로의 생각을 비교하며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그 다른 부분은 내 삶의 어떤 요소에서 기인했는지 생각해 보고 책의 내용과 스스로의 생각 모두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더욱더 훌륭한 독서의 태도이다.

2020년 8월 독서일기

창세기 설화

개신교 교회와 지도자들은 창세기가 설화로 되어 있다는 지식에 반대하여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이 지식이 없다면 창세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짧은 평: 창세기를 ‘설화’라는 단어로 해석해낸 책. 창세기 뿐 아니라 성서를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관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하다!

성서의 시작이면서 태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세기.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도 믿음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을 대할 때 가장 일반적인 태도라면, 이 책을 다른 책들과 다를 바가 없는 동일한 기준으로 읽는 것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일점 일획도 바꿀 수 없는’ 방식으로 읽게 되면 이 책을 일종의 관찰 보고서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책을 모세가 기록했다는 전통적인 이해와 책 안의 연대 기록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더라도, 요셉의 이야기는 모세로부터 최소한 400년이 지난 이야기이고 노아의 이야기나 그 이전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지금 시대로 생각을 해 봐도, 수백년 전의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 바로 역사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일어난 일로 생각한다는 것은 지나친 오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궁켈은 몇 가지 중요한 분석을 통해서 창세기를 모아서 편집한 편집자가 서로 다른 종류의 전승으로부터 수집된 자료를 솜씨있게 배열하였으며, 자신의 생각에 배치되는 자료라고 하더라도 널리 알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포함을 시키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가장 분명한 예라면, 아마도 서로 다른 두 가지 창조 설화를 그대로 실어 놓은 창세기 1장과 2장일 것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교양 필수 과목인 ‘성서와 기독교’라는 수업을 들을 때, 문상희 교수님 (1998년에 돌아가셨다. 내가 1993년에 수업을 들었으니, 그 분의 거의 마지막 강의를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께서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 설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논하는 숙제를 내 주신 것이 기억이 난다. 누가 보아도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세오경이라면 3천년을 읽어온 책인데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오면서 이에 대한 의구심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이런 질문은 ‘신약에서 서로 다른 네 개의 복음서가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는 질문이 된다. 어떤 사건을 바라볼 때 단 한 가지 시선과 해석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그것은 해석되어야 하며, 그 해석은 해석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생명력이 있는 이야기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심적인 가치는 유지된다는 것이 또한 그 생명력의 놀라운 점이다. 그것이 바로 궁켈이 ‘설화’라는 단어에 담은 뜻이며, 시대와 장소에 상관 없이 인간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원형적인 이야기들이 설화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야기가 바로 창세기인 것이다.

이 책은 궁켈이 쓴 ‘창세기 주석’의 서론을 번역한 것이다. 성서를 깊이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주석 전체를 읽고 싶겠지만, 이야기의 상세한 해석보다 창세기 (또는 성서)라는 책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로서는 이 서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말씀으로 읽는 욥기

그러므로 제 잘못된 말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에 관한 생각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욥 42:6, 저자의 번역 제안)

짧은 평: 욥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지혜서로 해석하면서 이 책의 특징을 잡아낸 점이 신선하다.

욥기 42장 6절을 개역개정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로, 새번역에서는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로, 공동번역에서는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로 번역하였다. 모두 후반절의 내용을 ‘회개’로 번역한 것이다. (NIV, KJV 등의 영어 성경에서도 모두 repent를 사용함) 이렇게 하면 욥기 전체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던 욥이 하나님의 연속적인 반문을 듣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원문을 다시 해석하여 “티끌과 재에서 회개”가 아닌 “티끌과 재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티끌과 재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의미하므로, 결국 욥은 하나님과의 질의 응답을 통해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두번째 응답에서 베헤못이나 리워야단에 대한 찬사는, 인간이 그런 존재들보다 못하지 않은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욥이 인과응보, 상선벌악, 또는 신명기적 신학에 대해 묻고 따지는 그 행위 자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패망과 포로됨이라는 역사 앞에서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현실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우리의 죄 때문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신명기적 해석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이해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욥의 이야기를 통해 교리적인 순종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항변에 가치가 있음을 말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성경을 관통하는 신학이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룻, 요나, 욥, 아모스 등은 이른바 이스라엘의 정통 신학에서 벗어나 있을지 모르지만, 숨막히는 교리와 기계적인 인과응보에서 벗어난 곳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생각과 외침 속에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은 단순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을 보게 되는 역동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런 이해 없이 한 곳에 머무르는 신학은 욥의 친구들로 표현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책을 읽을 때 떠오르는 궁금증은 현대 유대교에서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봄으로써 지금의 내 생각의 지평을 많이 넓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 5월 독서 일기

이번 달에는 모두 13권의 책을 읽었다. 가능하면 다양한 독서를 하고 싶지만 이미 구매한 많은 책들 중에서 ‘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샀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위주로 읽고 있고, 그런 의무감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면 일전에 읽었지만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들도 꾸준히 읽어 나가려고 한다.

  1. 소설: 호수살인자, 쇠못살인자, 쇠종살인자 이 세 권은 지난 4월에 읽었던 황금살인자에 이어서 디런지에 시리즈의 나머지에 해당된다. 서구인이 쓴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회에 대한 설명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서양 추리소설의 문법조차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동서양의 안좋은 점을 합쳐 놓은 셈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추천할 정도는 되지 않는 듯. 양쯔강은 ‘대지’ 3부작 시리즈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등을 수상한 펄 벅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대지’ 시리즈도 너무 어릴 때 읽어서 지금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서야, 사실 펄 벅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지’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는 도리어 퇴보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거나 펄 벅이 스스로를 ‘정신적인 동서 혼혈인’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지만,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서양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청년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가족과 이웃의 기대와 역사적인 소명 속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아편에 손을 대고 마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근현대사 변혁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로 이야기되는 아Q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그러나 그보다 더 그 시대의 중국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2. 역사: 지난달에 시작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4권까지 읽었다. 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이야기이고, 4권은 4.19를 포함한 4월혁명에 관한 내용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치열한 역사 전쟁을 기억하는 면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현대사에 관한, 그것도 이승만 정권에 대한 긍정적인 역사 서술이 나올 수 있으며 그것이 전쟁이라는 단어로 표현될만큼 격렬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이다. 국내의 상황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환경과 좀더 긴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그런 방대한 내용을 모두 다룰 수는 없었을 것 같고, 작년에 읽었던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50년대의 내용을 겹쳐서 생각하면 195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들은 거의 섭렵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인문: 수축사회는 리디북스에서 진행한 메디치미디어 무료 대여 행사 덕분에 읽게 된 책이다. 엄청나게 성장하는 경제를 배경으로 자라온 내게 수축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그렇게 와닿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10대 혹은 20대를 이해하기 위해 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장이 정체된다는 말은 결국 모든 활동이 제로섬 게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이런 생각은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문화와 생활을 영위해온 유럽인들 또는 북한 사람들에게 도리어 더 익숙하고 유리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대한 진단은 같아도 그 대처 방법은 생각의 방향에 따라 정 반대로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인데,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들은 그 기본적인 생각의 뿌리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최소한 나 자신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역전은 수축사회의 저자 홍성국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의 저자가 각 분야에서 힘의 역전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 부분은 피해자 우선주의로 바꿔라는 이수정님의 글과 수도권 중력에 맞서는 메기시티 구상이라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글이었다. 증거의 오류는 내가 구매할 때 생각했던 데이터증거 사이의 간격을 보여주는 책으로서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에 대한 생각을 주로 가지고 있지만, 저자는 사회과학의 측면에서 특히 설문조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4월 6일에 읽기 시작해서 5월 16일에야 다 읽을 수 있었으니 꽤나 오래 걸린 셈이다. 그래도 읽는 중에 실제로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에 직접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읽기가 가능하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는 아마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것 때문에 더 유명해진 책일 것이다. 사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게 그 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이 책이 그렇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른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공허’ 또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믿고 있었던 것의 공백’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공허 또는 공백의 문제가 삶의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내 자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4. 경영: 애자일,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의 비밀이라는 이 책은 애자일 경영에 대한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내가 느끼기에 조금 번잡하게 쓰여진 측면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시작된 애자일이라는 개념과 문화가 어떻게 경영에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깊이있게 설명한 것은 분명하다. ‘애자일’하지 않은 조직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애자일’이 필요한 것인지,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애자일’인 것인지, ‘애자일’ 방식으로 경영을 하면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등 생각해 볼만한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애자일’이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행동의 원칙은 (이 책의 첫머리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면에서 구체적인 행동 양식보단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이 애자일하기 위해서는 애자일을 교육하는 것보다는 애자일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일거라고 생각한다.
  5. 종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버트런드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학자로서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만을 놓고 보면 왜 그를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렀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번역이 엉망인 것도 있겠지만… 그 시대에는 지성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의 관점에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역사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이다. 그의 책이 언제나 그렇듯이 읽기 힘들고 (이북이면서도 가독성을 올리기 힘든 편집도 한 이유일 수 있지만), 모호하고 어려운 많은 단계를 지나가야만 간명하게 정리되는 결론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중간의 어려운 단계를 충실하게 따라오지 않았더라도 부정하기 힘든 매력적인 것이라는 사실이 그의 책을 자꾸만 읽게 되는 이유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되어 있다. 에수를 죽음의 자리까지 끌고 간 것은 로마의 잔악함이 아니라 그 정상성(normalcy)이었다.

2020년 4월 독서 일기

이번달에는 모두 12권의 책을 읽었다.

소설

이것 저것

람세스 시리즈를 모두 읽었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네 번째 책으로 완결이 되었다. 황금살인자는 네 권으로 구성된 디런지에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중국을 배경으로 관원인 주인공이 각종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이다.

탕자 돌아오다

앙드레 지드의 (정말) 짧은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잘 알려진 성서의 탕자의 비유를 도전적으로 다시 쓴 우화라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그가 1907년에 연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지드의 나이 38세에 쓴 소설이다. (최근에는 작가의 나이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아래에 적을 비유의 위력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도전적인 비유에 대한 예로서도 훌륭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다시 재창조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멋진 예라고 생각한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일정 정도 이상 상상력을 동원해서 열심히 따라가야만 하도록 하는, 그러면서도 그 길이 힘들거나 소득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유도하는 지드의 솜씨는 칭찬할만했다.

비소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이 책은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 중에 거의 가장 위에 있는 책이다. 그런데 4월 중에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두 권의 책을 무료로 대여해 주는 이벤트가 있었고, 이런 기회에 내가 살 것 같지 않은 책을 대여해서 읽어보기로 하고 이 책을 빌려서 읽었다. 읽고 나서 내가 쓴 평은 이렇다.

이런 책이 인기를 끄는 지금 시대란… 그렇지만 나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내가 무뎌진건가 아니면 작가가 글을 잘 쓴 것인가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베스트셀러는 예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서평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그의 전작과 비교해서 이렇게 평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전작인 다윗과 골리앗이나 아웃라이어같은 책의 인기는 어디서 온걸까? 결국 그 책들이 주는 (또는 준다고 믿어지는) 핵심 메시지가 어떤 것인가가 중요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앞의 두 책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 또는 평균을 뛰어넘는 상위 1%의 비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반면에 타인의 해석의 경우에는 낯선 이를 신뢰하지 말라와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작들이 믿을 수 없이 성공적인 사례들을 보여 준다면 이번 책은 믿을 수 없이 어처구니 없는 사례들을 보여 준다. 누가 뭐라도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사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에서 끝나지 않고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행동 수칙들을 개선해야 한다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직 내에 또는 개인적으로라도 이런 잘못된 가정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조직 또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권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었으니 이제는 현대사로 넘어간다. (물론 그 중에 들어 있는 일제시대를 다룬 박시백의 35년도 읽어야 하지만, 이 시리즈는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으므로 뒤로 미루기로 했다. 2019년 중순에 나온 5권이 1935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아직 완결되려면 시간이 꽤 남은 듯 하다.) 언제나 역사란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견이 갈릴 수 밖에 없지만, 현대사는 그것이 현대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분야이다. 지금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가 어렵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현대사를 일관된 시각에서 꿰뚫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저술한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덕분에 쉽게 잘 읽힌다는 장점도 얻었다. 이제 1권을 읽은 것이니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긴 했지만, 해방 후 3년의 시간을 막연하게 혼란의 시기라고만 평가하는 많은 책들에 비해서 어떻게 그 시기에 그렇게 풍성한 논의들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주요 사건과 논의들을 잘 정리해 두어서 좋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과거 시대를 혼란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비유의 위력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들은 내게 도전적이고 좋은 내용과 그에 못지않게 읽기 힘든 문체, 이상한 번역으로 기억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전에 내가 읽었던 그의 책들을 모두 김준우가 번역하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출판했다 것을 감안하면 그게 작가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번역자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즐거운 책읽기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깨달음과 의미들이 너무 분명하기에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국내에 ebook으로 나와 있는 그의 책이 이제 몇 권 남지 않았으니 몇 번 더 이 정도의 고생을 하는 것은 뭐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예수가 가르친 비유들을 수수께끼 비유, 본보기 비유, 그리고 도전하는 비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협동하도록 도전하는 비유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정의를 복음서 자체에 적용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전통적인 복음서 해석자들이 들으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오래된 텍스트를 전통대로 읽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생각을 감옥에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사유를 만나는 것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배움의 발견

이 책은 읽으면서 참 희귀한 경험을 했다. 책의 절반까지는 정말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는 것이 힘들어서 책장을 넘기기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절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되었다. 조울증과 이상한 종교적 신념에서 오는 망상에 빠져있는 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가족들, 그 안에서 탈출을 꿈꾸는 아이들… 아버지의 신념이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앞 부분은 정말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혹시라도 이런 종류의 억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성찰하는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지은이가 이제 다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갈등에 내가 꼭두각시로 이용되도록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하는 장면에서부터는 좀더 마음을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 자아. 타라 웨스트우드는 그것을 교육(educated)이라고 불렀다.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읽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을 어떻게 독립적이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눈부신 반면교사로 읽었다. 그리고 어떤 환경도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간증으로 읽었다.

독서 일기: 베조스 레터

이 책은 우리 회사의 경영진 및 팀장들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두 권의 책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한 권인 존 도어의 OKR 책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지금 당장 도입해서 사용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베조스 레터는 이보다도 더욱 강렬한 느낌으로 기억될 책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우연이나 행운이 많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상거래 사이트인 것도 맞고 베조스가 세계 최고의 부자인 것도 맞는데, 나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 동안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 인물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나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베조스가 이야기한 일과 성공의 원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리되지 않은 채 내가 그 동안 생각해 왔던 여러 가지 생각의 단초들이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내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것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생각을 해 보았는지가 아니라 실행하고 체화했는지이다. 생각을 해 보는 것으로는 아무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다시 피드백을 얻어서 개선하는 노력이 반복되어야만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회사가 나름대로의 상황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다름이 다른 전략과 다른 실행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혼자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원칙이 필요하고 그 원칙은 다름을 넘어서서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기본이어야 한다. 그 기본은 결국 그걸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독서가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이다.

독서 일기: 인간 본성의 법칙

올해 들어 지금까지 147권의 책을 읽었고, 5월 이후에는 꾸준히 한 달에 15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으니 이틀에 한 권 정도의 속도로 책을 읽어온 셈이다. 물론 이 중에는 100 페이지 내외의 짧은 책들도 많이 있고 (주로 범우문고나 살림총서 같은 시리즈물) 장편 소설도 있기 때문에, 생각할 것이 많은 인문 서적의 경우에는 이보다는 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북트리라는 iOS 앱 덕분에 각 책을 언제 읽기 시작해서 언제 마쳤는지도 모두 기록을 할 수 있다)

마이클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은 8월 24일에 읽기 시작해서 11월 17일까지 읽었으니 (물론 그 중에 틈틈이 책을 읽어오기는 했지만) 거의 석 달을 꼬박 이 책에 투자를 한 셈이다.

말이라는 것, 글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만 적절한 정도를 찾는 것이 참 어려운 법이다. 너무 짧아지면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너무 길면 장황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는 제목은 (특히 법칙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레토릭 같은 면이 있는데, 그 법칙이 세가지, 다섯가지, 열가지 정도까지는 그럴 듯 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 책에서처럼 18가지나 되면 그 법칙을 외우는 것도 힘든 상황이니 법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에 비하면 꽤 장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열 여덟가지의 법칙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사용하는 기술 방식은 각 법칙마다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유명한 인물의 사례를 들고 이로부터 각 법칙의 내용을 풀어서 설명하는 방식이다. 사실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내게는 꽤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책이 꽤 긴 책이기도 하지만 (거의 63만자인데,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우울할 땐 뇌과학>이 약 18만자 정도 되니 이런 책 세 권이 넘는 분량이다) 이런 기술 방식의 단순함 때문에 빠르게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솔직히 책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서로간에 잘 들어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끼워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어서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 특히 모든 사람이 인간의 본성을 배우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있어서만큼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고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단순한 내용을 좋아하기 쉽지만 진실이란 항상 그것보다는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법칙이라는 말이 주는 단순함과 가벼움에 비해 그 내용은 훨씬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자세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제안을 따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쓴 마이클 그린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단 평생동안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이상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전제를 동의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필요할 때마다 한 번씩 펼쳐보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진지하고 세밀하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반대로 가볍고 빠르게 읽는 편이다) 곱씹고 생각할 부분이 많이 있는 책일 것이다.

전자책으로 책 읽기

2019년 들어 지금까지 8개월 동안 모두 107권의 책을 읽었다. 2006년에 쓴 블로그 글 중에 1년에 50권 책읽기라는 글이 있는데, 이걸 보면 1년에 50권의 책을 읽는게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50권이라는 목표에 성공을 하기도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지나왔다.

2012년에 리디북스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전자책을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독서 생활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휴대전화나 태블릿으로 책을 읽었고, 리디북스 페이퍼라는 전용 기기가 나온 후로는 페이퍼 라이트, 페이퍼, 페이퍼 프로까지 모두 구매를 하면서 여기서 모든 독서를 하게 되었다.

전자책 전용 기기를 사용하면서부터는 1년에 50권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이제는 100권을 훌쩍 넘는 상황이 되었다 (수치상 올해는 150권도 가능한 상황). 그리고 올해부터는 북트리라는 앱을 이용해서 독서 로그를 남기고 있는데 이 덕분에 읽은 책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전자책이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많은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내 페이퍼 프로에 64기가 micro sd 카드를 넣어두고, 책 수천권을 모두 넣어서 들고 다닐 수 있다. 긴 호흡의 책을 읽다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경우에 재미있는 짧은 책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시작한다던지, 여러 권의 책을 교차로 참고하면서 읽는다던지 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빠르게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전자책이 좋은 또 다른 점은 기록이 정확하게 남는다는 점이다. 언제 읽었는지는 물론이고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거나 메모를 남긴 것들을 언제든 빠르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전자책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는 책의 내용에 집중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책의 조판이나 종이의 질감 같은 (어쩌면 책의 본질일 수도 있지만) 텍스트 자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꼴, 자간 간격, 줄 간격, 페이지 여백, 컬러 삽화 등 다양한 책의 요소들이 전자책에서는 변환 가능 또는 불가능하게 된다. 책 제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 마음대로 이런 요소들을 조절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책의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특징이 된다. 많은 경우 이런 텍스트 외적인 요소들은 내용의 부실함을 덮기 위해 사용되고 나는 이런 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책의 물리적인 제작 상태 자체가 책의 존재 가치인 경우가 있다. 사진이나 그림이 많이 들어있고 그게 중요한 요소인 책들. 종이 자체의 성질을 이용하는 책들. 그런 책은 전자책의 제한된 사용자 경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책이 가진 물리적인 한계 자체가 가치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책은 활자화된 텍스트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니 전자책이라는 형식이 그 가치를 충분히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전자책으로만 책을 읽기로 결심했지만 이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전자책으로 제작되는 책의 숫자가 종이책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기 때문이다. 책도 상품이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에는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는 종이책의 수가 너무 많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들을 읽게 되다는 것인데, 이런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들은 전자책으로 제작할 이유가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된 책의 경우라면 더욱 답이 없다.

앞으로 전자책이 먼저 출판되고 종이책은 필요에 따라 나오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 믿지만, 그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전까지는 깊이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도서관을 잘 활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어지간한 도서관으로는 어렵고 규모가 있는 곳이어야 하겠지만.

독서 일기: 마음의 탄생 (레이 커즈와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낙관론과 비관론. 물론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데에도 이 두 가지 관점이 있을 것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긴 책은 팩트풀니스였다.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사실에 의거해서 보도록, 그래서 더욱 낙관적으로 보도록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쨌든 인류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마음의 탄생 역시 낙관론을 기저에 깔고 있는 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 순진하게 상황을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의 경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술적인 내용에서 보자면, 모든 디테일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않고서도 전체의 기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기능을 모사하는 시스템을 만들 때 내부적인 구성 요소들이 모두 일대일로 일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로서 모사가 가능한 시스템이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여기서 기능의 모사가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를 잊으면 안된다) 세부 구성 요소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은 그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정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부분과 전체 사이의 어떤 지점에 부분의 합과 전체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어떤 포인트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예를 들면 나노 입자의 성질) 그런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조차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과 관점으로 생각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시스템이 생각처럼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단순한 방식의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배우게 된다면 이 책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커즈와일이 보여준 낙관론을 조금 끼얹는다면 미래 사회를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레이 커즈와일만큼 낙관적이지는 않고 그보다 아주 조금 뒤쳐져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더 앞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려고 한다.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https://ridibooks.com/v2/Detail?id=672000075

김세윤 교수님의 <바른 신앙을 위한 질문들> 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이 책 내가 쓴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정도로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누군가가 내 신앙은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냥 이 책을 소개해 주면 될 것 같다.

2016년을 보내며 (1) 독서 정리

2016년을 보내는 시간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일년이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올해를 맞이하면서 했던 생각 중에 역시 중요한 생각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자게 되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세울 수 있는 목표이기도 했고,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페이퍼 라이트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목표이기도 했다.

올해 읽었던 책들은 (읽은 순서와 상관 없이) 플루언트 (조승연), 그릿 (안젤라 더크워스), 백설춘향전 (용현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곽재식), 엑시덴털 유니버스 (앨런 라이트먼), 앵무새 죽이기 & 파수꾼 (하퍼 리), 마션 (앤디 위어), 나의 한국 현대사 (유시민), 해방 후 3년 (조한성), 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조선의 정체성 (박석희, 최식원, 황금희), 본삼국지,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장자, 근원수필 (김용준), 살며 생각하며 (미우라 아야코), 아멜리 노통브 시리즈 8권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왕자의 특권, 생명의 한 형태, 아담도 이브도 없는, 제비 일기, 적의 화장법, 앙테크리스타, 살인자의 건강법), 보르 코시건 시리즈 2권 (명예의 조각들, 바라야 내전), 깊은 강 (엔도 슈사쿠) 그리고 헬로월드 시리즈의 거의 모든 책 (약 90권) 정도 되는 듯 하다. 헬로월드 시리즈의 책들은 대체로 매우 짧고 한정된 주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숫자를 그대로 세기에는 좀 우스운 측면이 있지만 굳이 권수로 따지자면 약 100여권 정도이다.

올해 읽기를 시작했지만 포기한 책은 홍루몽과 대망이 있다. 둘 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긴 호흡의 소설이기는 한데, 그런 이유로 따라가기에는 호흡이 너무 길다는 느낌이 들어서 몇 권 읽다가 중단한 상태이다.

올해의 책 읽기를 분석해 보면, 서점에서 책을 살 때와는 달리 베스트셀러의 비중이 늘었고 기독교 관련 서적이 많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이북으로 나오는 책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또는 출판사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게 충격을 준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고 해야겠다. 가장 최근에 읽은 조승연의 플루언트 같은 경우에는 내가 오랫동안 머리 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내용들을 너무 비슷하게 다루고 있고 너무 잘 정리해 놓아서 약간은 놀랍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이북에 편중되다보니 주제가 한정된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내년에도 유사한 패턴으로 지속적으로 책읽기를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 생활의 패턴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생각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