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짧은 평: 중요한건 생각하는 방식이야!

들어가는 말

칼 세이건이 쓴 이 책은 유시민이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가져가겠다’고 했다는 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주의 광대함, 그리고 인간의 보잘것 없음, 그리고 그 인간의 위대함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태양계의 바깥쪽을 향해 우주 탐사선을 쏘아올리던 시대에, 2020년에 인류가 바이러스로 인해 고생하고 있을거라고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우주로 가는 노력들은 충분한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서 좀처럼 뉴스에 나오는 일이 없고, 우주를 향한 위대한 도전을 아낌없이 지원하던 미국 정부 대신 테슬라의 괴짜 CEO가 상업용 우주 여행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가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관계가 없다.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이야기하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이 스스로의 한계와 약함을 깨닫게 되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가설의 장점을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야 하는 것이다.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

물론 오래 전에 쓰여서인지 구체적인 부분에서 동의하기 힘든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내용들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정확하게 따지기는 힘든데, 내 전문 분야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잘못된 표현들이 꽤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100억개가 넘지만, 이 중에서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약 50종 뿐이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기 분자의 수는 약 몇 억개 수준이다. PubChem에는 현재 대략 1억 1100만개의 화합물 구조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무기 분자도 있으니 유기 분자의 수는 이보다 적다고 볼 수 있다.”알려진”을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으로 바꾸면 100억개는 너무 작은 숫자가 된다. 이 논문에서 C, N, O, S 그리고 할로겐 원소 17개까지만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화합물의 개수가 1664억개 정도로 보고하고 있고 (이 화합물들의 데이터베이스가 GDB-17이다), 사용 가능한 원소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 숫자는 엄청나게 커지는데다가 P(인) 같은 원소를 더 넣으면 숫자는 더욱 커진다. 단순한 enumeration으로 가능성 전체를 세는 것은 참으로 큰 숫자를 따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약 50종 뿐이라는 것도 사실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아마도 DNA나 RNA의 기본 조각인 핵산과 단백질의 기본 조각인 아미노산, 지방에 사용되는 지방산, 탄수화물의 기본 조각인 당 정도를 합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유기 분자는 이 숫자보다 훨씬 많은 숫자일 것이다.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와 양성자의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enumertion하면 우주에서 셀 수 있는 어떤 것의 숫자와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 달려있는 “유용한”이라는 형용사이다. 핵산을 단순히 조합하는 것만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오겠지만 그것이 유용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특징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용함”의 정의가 달라질 것이니 지구에서 유용한 것만이 유용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환경에 따라 특정한 문법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수가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힌두교가 이야기하는 순환적인 우주론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대의 서구인들이 고대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동경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시대에 칼 세이건이 이 책의 내용을 수정한다면 아마도 이 부분을 가장 손대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로부터 주어진 정보를 한때는 귀하게 여길지 모르겠으나,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세대를 거쳐 반복해서 구전되는 동안에 점차 변질되게 마련이고, 결국에 가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퇴색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오랜 시간 구전되어 내려오며 그 생명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경전, 설화, 신화 같은 것들인데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변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사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사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도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구전이 아니라 활자의 형태로 정확하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면 새로운 세대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반면, 어떤 (사실 대부분의) 책들은 활자의 형태만 남을 뿐 인류의 기억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 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이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더 이상 도서관이라 부르지 않는다. 새롭게 생성되는 정보의 양은 이제 도서관 같은 것으로 보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인간이 유용성을 평가하는 시대를 넘어서 인공지능에 의해 이해되고 해석되는 시대에 이르렀다. 빅데이터의 시대에는 개별 사건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고, 그런 수많은 개별 사건 사이의 비선형적인 관계를 파악하는 인공지능이 활약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의 가치, 기억을 모으고 보존하는 것의 가치는 절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과율이 초래한 진화의 결과는 얽히고 설켜 있다. 우리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해한 것 같으면 이해하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인간이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자만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자만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자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수백년 후에 지구는, 그리고 인류는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랜 기억과 역사에 기대어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자연과 다른 인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잡하다’는 현실이지만 ‘그러므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는 해석이고 철학이다.

맺는 말

철학책을 읽으면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시를 읽으면 감성적이 되고 과학 책을 읽으면 분석적이 된다. 그런데 어떤 책은 그 내용이 철학이건 과학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상관없이 종합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구체적인 어떤 부분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삶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종합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은 좋은 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여러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은이의 생각과 스스로의 생각을 비교하며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그 다른 부분은 내 삶의 어떤 요소에서 기인했는지 생각해 보고 책의 내용과 스스로의 생각 모두를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더욱더 훌륭한 독서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