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피아노 구입 후기

나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다. 국민학교 6학년 1년 정도 학원을 다녔고, 대략 체르니 30번의 초반 정도까지 치고나니 중학생이 되어 까까머리가 되었는데, 까까머리 하고 피아노 학원 가는게 싫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어머니가 “너 평생 후회한다”며 말리셨는데, 역시나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는 일이다.

집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하나 있었는데, 오랫동안 잘 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가 팔아버려서 집에 피아노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좀더 오랫동안 피아노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었고, 세 아이 모두 피아노 학원에 보내서 잠시라도 피아노를 배우게 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셋째가 피아노 학원을 막 다니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집에서라도 연습을 시키는게 좋겠다 싶어서 가지고 있던 25키 크기의 작은 건반을 컴퓨터에 연결해서 연습을 하게 했다. 25키는 사실 프로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쉽게 작업을 하는 용도라서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는데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시 61건반인 Roland JV-30을 꺼내서 사용하게 되었다.

Roland JV-30은 오래 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usb connection이 없는 관계로 usb-to-midi 케이블을 구매하고, 아이패드와 연결을 위해 라이트닝 usb 카메라킷을 구매한 후 이 둘을 연결해서 사용했다. 원래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IK multimedia의 iGrand Piano같은 앱을 사용하였다. 사실 소리로는 다른 비싼 악기 못지 않은 소리를 내 주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어떤 음악을 어떻게 연습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고민하다가 어차피 지금 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으니 그 돈을 아껴서 좀더 앱에 투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Simply Piano 앱을 써 보기로 했다. 사실 막내가 이걸 꽤 좋아해서 열심히 연습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보드의 거치와 악보 거치 같은 자잘한 것들이 좀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애플 정품이 아닌 usb 카메라킷이 말썽을 부리기도 했고.

결국 그냥 디지털 피아노를 한 대 사는 것으로 결정. 이 시점에 일본 제품을 사기는 싫었기 때문에 야마하나 코르그 등은 자동 탈락했고 결국 커즈와일을 사기로 했다. 관련 제품들을 살펴보던 중에 M130W라는 모델이 눈에 들어왔다. 중급형 라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국내 전용 모델이기는 하지만 나무 건반이라는 장점이 있고 홈페이지에 게시된 가격이나 다나와 최저가에 비해서 많이 싸게 살 수 있는 루트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좋은 가격에 구매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저녁에도 다른 집에 피해갈 것을 신경쓰지 않고 헤드폰을 끼고 연습할 수 있으니 도리어 내가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하농, 체르니 100번, 부르크뮐러 25번 정도를 치다가 요즘에는 진도가 좀 나가서 체르니 30번, 쿨라우의 소나티네, 슈만의 젊은이를 위한 앨범 같은 것들을 연습하고 있다. 악보 책을 산건 아니고 이 정도는 이미 모두 public domain에 나와 있기 때문에 IMSLP 같은 곳에서 스캔된 pdf 파일을 다운받아서 아이패드 piascore 앱을 이용해서 보고 있다. 이제는 손가락도 많이 굳고, 그동안 내 마음대로 피아노를 치면서 나쁜 습관도 많이 들어서 그걸 고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차피 앞으로 평생 할거라고 생각하니 급한 마음이 있을리도 없고 그냥 속 편하게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