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철학과 최신물리학의 만남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요즘 나는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대작 <과정과 실재> 를 읽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읽었던 많은 책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난해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문장 하나하나가 낯설고 비직관적인 개념들로 뒤엉켜 있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보다 머리가 아파오는 속도가 더 빠른 수준이다. 그래서 이 책을 직접 읽기보다는, 이를 요약하거나 해설한 책을 먼저 읽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주 느린 속도로 진도를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험난한 독서 과정 속에서 마주한 한 가지 개념이 나를 멈추게 했다. 바로 시간의 양자성(Quantization of Time) 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통찰이다.

1. 시간을 흐르는 강이 아닌 ‘입자’로 보라

화이트헤드에게 우주는 고요하게 놓인 물체들의 집합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건(Event)’들의 과정이다. 그는 시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매끄럽고 연속적인 강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분할할 수 없는 최소 단위인 ‘실제적 존재(Actual Entity)’들이 불연속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이러한 개별적인 사건들이 빠르게 연쇄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만들어낸 ‘연속성의 환상’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읽고 있자마자, 최근 읽었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등) 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2. 대학 1학년 시절의 <아인슈타인의 꿈>

로벨리의 이름을 떠올리자, 또 다른 기억이 고개를 든다. 바로 대학 1학년 때 화학과에서 했던 독서모임이다. 당시 우리는 ‘시간’을 주제로 한 책들을 연속적으로 읽었는데, 그중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 은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아인슈타인이 꿈꾸는 다양한 ‘시간’의 세계들을 그린다. 시간이 멈추는 세계, 시간이 과거로 흐르는 세계, 시간이 연대기 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 세계들. 그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느끼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주는 시간의 주관성에 대한 서사는 기억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문학적 직관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최신 물리학의 핵심 문제들인 일반상대성이론양자역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3. 90년대 말, 배웠던 ‘최신 물리학’의 기억

화학을 전공한 나에게 물리학은 낯설지 않았다.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인접 학문으로서 필수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도 머리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시공간이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큰 중력에 의해 찌그러질 수 있다는 것과, 양자역학을 표현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시간 변수를 가진 편미분방정식이라는 사실 정도이다.

당시에는 이 두 가지 이론이 충돌한다는 사실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이 바로 이 두 개념이 충돌할 때 마주하게 되는 휠러-디윗 방정식(Wheeler-DeWitt equation) 을 다룬다. 우주 전체를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하려는 이 방정식은 놀랍게도 시간 변수를 완전히 배제한다. 즉, 수학적으로 우주는 ‘영원히 멈춰 있는 정지 상태’처럼 보인다.

4. 시간이 사라진 뒤 남는 것: 세상의 ‘이산성(Discreteness)’

카를로 로벨리가 여러 책에서 연속적으로 다룬 것이 바로 시간의 양자화다. 시간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플랑크 시간(Planck time)’ 이라는 최소 단위의 픽셀(Pixel)로 본다면, 이 세상은 연속적인 도도한 흐름이 아니라 ‘프레임(Frame) 하나하나가 고정된 사진’ 을 빠르게 재생하는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상태인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실제적 존재의 연쇄’와 로벨리가 말하는 ‘시공간의 양자 그물망’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연속적인 배경 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건들(사건들 간의 관계) 자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20세기의 최신 물리학 성과들을 알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의 철학적 사유가 단순히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천재들의 생각은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해서 결국 동일한 진실을 건드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이런 통찰은 단순한 학문적인 호기심을 넘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놀라운 발견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시간이 지나고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물리법칙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사건들의 연속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생겨난 ‘부산물’ 이라면, 우주는 고정된 무대 위의 배우들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관계들의 네트워크 그 자체가 된다. 우리는 과거로 인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형성(Concrescence)’하고 있는 사건 그 자체인 셈이다.

<과정과 실재>의 두꺼운 분량이 주는 피로는 아직 가시지 않았고, 도대체 언제 끝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100년 전의 철학자가 남긴 낯선 문장들과, 2000년대 초 내가 공부하던 물리학 방정식들이 한 자리에 모이며 ‘시간의 양자성’ 이라는 새로운 지적 모험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모험조차도 아직 전체 여정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과정철학은 필연적으로 신학과 만나 과정신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흐름은 세상에 대한 이해, 신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변화시키는 일정한 효과를 가져온다. 이런 생각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내 삶의 형식과 실천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배움에 이어지는 실천적 체화 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