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에 대한 생각

나는 이제 입주한지 2년도 되지 않는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청약을 통해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이 많아서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아이가 많은 가정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세 아들이 있지만, 윗층과 아래층 이웃이 모두 아이가 셋이다. 아파트 여기저기에 아이들이 많고 너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이 아닌 한 언제나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듣고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반려동물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저녁 시간에 산책을 나가보면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반려동물용품을 파는 24시간 무인 점포도 가까이에 있다. 아주 어릴 때 개와 고양이를 한 번 키워본 이후 평생 반려동물과 함께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즈에 One of the Loneliest Countries Finds Companionship in Dogs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제목에 있는 One of the loneliest countries라는 표현이 눈에 띄어서 클릭을 했다. 그런데 그 안에 실려 있는 다양한 사진들은 더욱더 눈길을 많이 끌었다.

기사 내용은, 한국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반려 동물을 가지고 있으며, 동물 장례 서비스가 정착되면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문화가 확립되었다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자신의 자녀처럼 여기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서적 지지를 받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외로온 나라 중의 하나라는 표현은, 낮은 출생률과 높은 1인가구 비중 때문에 쓴 표현일 것이다. 낮은 출생률은 ‘이 사회가 얼마나 살만한 곳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높은 1인가구 비중은 지나친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주택 문제나 노인 세대나 청년 세대의 상대적 빈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힘들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황에,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까지 더하면 반려 동물의 정서적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누군가를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점점 더 파편화되는 개인의 삶은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더 많은 유기적 관계를 원하게 만든다. 사회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안전지대 안에 자신을 숨기게 되어 있고, 그럴수록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연습할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일정한 에너지의 투자를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에너지 투자를 하지 않고 정서적 도움도 받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이 어느 정도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인간)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는 덜 힘든 일일 수 있다. 문제는 반려 동물을 유지하는 것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누군가는 이걸 감당하기 어려워서 더 저렴한 대안을 찾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저렴한 대안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반려 동물이 주는 정서적인 도움이 사람간의 관계에서 오는 것보다 뛰어날 수는 없는 것처럼, 다른 어떤 대안도 사람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도움을 대체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정서적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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