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올해 열네번째로 읽은 책은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시라니! 소설의 시대도 아니고 영상이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이 시대에 시라니. 그렇다. 내게도 시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정윤의 홀로서기 그리고 도종윤의 접시꽃 당신 같은 시들은 편지로 마음을 전해야 했던 어린 시절에는 (폼 좀 내기 위해) 반드시 외워두어야 했던 필수품이었다. 이유가 어떤 것이었든간에 시를 읽고 외우는 것, 그리고 가끔씩 치기어린 시를 짓던 것은 그 시절에는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기도 했다.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국어 혹은 문학 과목 때문에라도 시를 읽고 분석(!)해야 했다. 80년대 후반의 내 사춘기가 그러했다면 그 이전에 사춘기를 보내야했던 내 윗 세대들에게는 시가 더욱 친숙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지금의 영상 세대에 있어서는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들어오고 세대가 인터넷 세대로 바뀌면서, 그리고 긴 전공 서적에 묻혀 살게 되면서 시는 내게 더욱 먼 존재가 되어갔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오던 안도현의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정도가 잠깐 흥미를 끌기도 했고, 정호승의 시가 마음을 때린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지속적으로 시를 읽지는 않았다. 신경림 시인이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라는 부제를 달아 엮은 이 책은 독특하게도 하드박스 안에 하드커버 한권과 소프트커버 한권, 내용이 정확하게 동일한 두 권의 책이 들어있다. 그리고 각 시마다 신경림 시인의 짧은 감상평이 붙어있고 화가들의 그림이 들어있다. 부끄럽게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시들 중에 한 70% 정도는 처음 읽어보는 것들이었다. 읽으면서 가끔은 신경림 시인의 감상평에 동감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면서 읽어갔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감 이라고 한다면, 시인의 감상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일터, 다양한 삶의 경험이 쌓일수록, 그리고 생각과 감정의 폭이 넓어질수록 시를 느낄 수 있는 능력도 늘어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엮은이의 말처럼
시를 즐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어가 주는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폼으로라도 멋진 시 몇 개쯤 외워두고 있는 것은 내게 즐거운 일일 것이다. 언제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무런 방비도 되어 있지 않은 마음을 거세게 후려치고 가는 것이 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