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올해 읽은 두번째 책은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이른바 몽골비사라고 하는 책의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금기시되어 왔던 몽골의 역사를 이 책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고 탐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칭기스칸은 역사상 가장 넓은 대제국을 완성한 사람이며, 많은 서구인들로부터 두려움과 경원의 대상이 되어왔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역사상 어떤 인물을 탐구하는 것보다도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유목민 대 농경민과 같은 큰 흐름으로 역사를 해석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에 많이 좌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유목민들이 칭기스칸과 같은 정복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칭기스칸에게 단순히 유목민의 특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음을 예상하게 해 주지만, 저자는 그 특별한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있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에게는 유목민이 가지고 있는 특징 자체가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유목민 대 농경민이라는 주제가 내게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주제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 주제가 카인과 아벨이라는 성경 역사상 가장 오래된 대립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인데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의 민족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도 바로 이런 대립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유목민을 택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의식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인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에 이 노마디즘이라는 말이 나름대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유목민의 특징은 호전적이고 침략적이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보다 좀더 호의적인 분석이라면 진취적 이라거나 개척 정신이 뛰어나다는 식으로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분석이든간에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유목민으로 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특별한,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뭔가 다른 삶의 형태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유목민의 특징은 완전한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정착은 항상 타락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정착지에서의 예측 가능한 삶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유목민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예측 불가능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태도를 요구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예측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어하며, 가능한 한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한다. 통제 가능한 부분이 줄어들수록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2006년 하반기에 가장 화제가 된 기독교 서적 중의 하나인 내려놓음의 저자인 이용규 선교사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내려놓음으로서 얻게 되는 새로운 평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시작점일지 모른다.
여전히 칭기스칸의 생애는 음미할만 하며, 그의 삶에 등장하는 너무나 현대적인 원칙들은 지금의 우리를 반성하게 만드는 측면이 많이 있다. 어쨌든 모든 삶에는 배울 점이 있으며, 모든 역사에는 진리가 숨어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칭기스칸이 이룩한 거대한 제국조차도 결국은 영원할 수 없었다는 점이며, 사람의 역사에 있어서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