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에 관한 생각

FTA 협정과 관련된 협상이 얼마전에 끝이 났다. 사실 FTA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고, 각각의 내용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분석하는 것은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FTA에 대한 태도는 완전 찬성이 아니면 극렬 반대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중요한 협상이니만큼 협상 내용을 다 공개해서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정확한 내용보다는 추측이나 옆 이야기를 가지고 진행을 해온 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FTA 체결이라는 문제는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인만큼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냉정한 분석을 통해 의사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봤는데, 보면서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협상단이 애국심도 능력도 없는 친미사대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정치적으로 하등의 도움될 것이 없는 FTA를 굳이 추진하려는 대통령의 의도 역시 진지하고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정치적인 성향은, 한나라당은 일단 싫고,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는 않고,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은 뚜렷한 정치적인 색채를 가진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냥 그나마 이쪽이 낫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고 하고, 민노당이나 열린우리당 일부에서는 매우 강하게 반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지금까지 벌어지던 정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화되었다거나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공조를 하고 있다거나 이렇게 과대 해석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내 생각에 개방이라고 하는 대전제는 분명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농업 분야, 특히 쌀 부분에 대한 많은 반대가 있었고, 정부에서도 쌀 부분을 지켜냈다면서 좋아하고 있지만, 사실 쌀 문제로 홍역을 겪으면서 농업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해온 것은 이미 우루과이라운드 때 부터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함없이 개방 관련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동일한 논리였다. 개방하면 죽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개방하면 죽는 상황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다. 한-칠레 FTA를 통해 한국의 포도 농사는 끝장이라고 떠들어댔었지만, 지금 보면 분명 그렇지 않다. 농업도 경쟁력을 길러야 하고, 그 경쟁력은 (토인비의 말대로 하면) 강한 도전에 직면에서 강하게 응전할 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관련이 있는 제약업계를 놓고 보면 좀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업체들은 많은 경우에 복제약을 기반으로 영업을 해 왔고, 기술 개발이나 신약 연구 등에 있어서는 영세성을 면하지 못해왔다. 의사들한테 로비 잘 해서 안전하게 돈을 벌어왔다면, 이제 연구 역량을 키우고 근본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임계 규모 이상의 규모를 지닌 대형 업체도 나와야 하고, 그런 회사를 통해 훌륭한 연구 결과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제약산업은 무너지게 되고 말 것이다. 어쨌든, 언제쯤이면 한국에서 흑백논리에 의한 편가르기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