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 속지 않는 법

어쩔 수 없이 많은 게시판의 글을 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그 사이트 회원들의 전반적인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고 착각할 때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첫째,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무리 진입 장벽이 낮더라도 남이 보는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글을 쓰려면 1) 글을 써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2) 내 생각을 스스로의 기준에 맞추어 정리해야 하고 3) 이게 남의 눈에 어떻게 읽힐지를 스스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이 쓸수록 이 과정이 쉬워질 테니, 결국 많은 글을 쓰는 사람은 더 많이 쓰게 되고 쓰지 않는 사람들은 더 안 쓰게 되는 구조이다.

둘째, 댓글을 다는 사람은 대체로 그 글에 찬성하는 사람 중의 일부이다. 댓글을 쓰는 것은 그냥 게시물을 쓰는 것에 비해서는 쉽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게시물을 쓰는 것과 동일한데 1) 댓글을 달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2) 내 댓글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3) 이게 남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평가하게 된다. 만약 게시물의 생각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상대적으로 쉬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게시물의 생각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것 자체가 댓글을 달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게시물의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면 댓글을 달아야 할 이유를 크게 느낄지는 모르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그냥 내 생각을 쓰는 것에 비해 남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찬성하는 댓글은 비교적 단순하게 쓸 수 있지만 반대하는 댓글은 에너지 소모가 더 크기 때문에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셋째, 그래서 눈에 보이는 생각의 흐름은 실제 대중의 생각과 같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건 마치 생산된 물품에 대한 샘플링 조사를 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인데, 그 표본추출이 편향되는 경우로 비유할 수 있다. 전체 의견의 1%만 듣는데 그게 임의 선택이 아니라면, 그걸 통해서 전체의 생각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넷째,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때는 선명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쟁점이 열 가지 있는 주제를 논의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열 가지 쟁점 각각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면 조합상 1024개의 서로 다른 의견이 있게 되니 이런 논의는 실질적으로는 일어나기 힘들다. 결국 덜 중요한 쟁점을 뒤로 미루어 두고 가장 중요한 쟁점에 대해 선명한 의견을 피력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다섯째, 사람의 생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사건도 변하고 모든 것은 변한다. 어제 찬성했다가 오늘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사실 게시판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생각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생각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이 기여한다. 일단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나면 스스로 생각이 변한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생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글을 잘 쓰지 않는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통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게시판의 글은 이미 의견을 정한 소수의 사람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은 굉장히 큰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눈에 보이는 글과 댓글은 그 스펙트럼의 일부만을 과장되게 보여줄 때가 많다. 그러니 게시판을 볼 때는 “여기가 세상의 여론이다”라고 받아들이기보다, “여기서는 어떤 사람들이 더 많이 말하고 있는가”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게시판에 속지 않으려면, 최소한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가? 반대 의견은 왜 덜 보이는가? 선명한 주장 뒤로 미뤄진 쟁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흐름이 정말 ‘대중의 생각’인지, 아니면 ‘말하기 쉬운 사람들의 생각’인지.

이 질문들만 붙잡아도 게시판은 훨씬 덜 위험한 정보원이 된다. 게시판은 여론을 보여주는 창이라기보다, 여론이 만들어지는 방식의 한 단면에 가깝다. 그러니 게시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분위기”이며, 그 분위기는 언제든 왜곡될 수 있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 것이 게시판에 속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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