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나도 꽤 오랫동안 홈페이지를 운영해왔다. 아마 시작은 97년 정도였을 것이다. 그 때만해도 홈페이지는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간단한 html을 배워서 직접 파일을 올리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이지보드, 제로보드 같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프트웨어들이 등장을 하면서, 홈페이지는 게시판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변화가 되었다. 그 이전에 게시판 계를 주름잡던 CrazyBoard의 헤더와 푸터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고서 즐거워할 때도 잠시였고, 거의 곧바로 제로보드의 최근게시물이며 아웃로그인을 배워서 홈페이지에 붙여 놓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이제는 php를 배우게 되었고, mysql을 배우게 되었다. 개나 소나 다 하는 php+mysql 게시판 만들기가 지겨워보이기 시작하고, 여중생 취향으로 변해가는 제로보드 테마들을 보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던 내게 나타난 것이 바로 위키였다. 김창준씨에 의해 소개된 위키는 눈으로 보는 페이지를 누구나 고칠 수 있다고 하는 혁명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데다가 제로보드보다는 훨씬 있어보이는 도구. 그래서 홈페이지를 위키로 바꿨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 위키는 박원규씨에 의해 개발되고 지금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모니위키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뭐니?"에서 따왔다는 이름도 센스있지만, 내가 본 여러 위키 중에서도 가장 괜찮은 위키 툴 중의 하나가 바로 모니위키다. TWiki가 막강한 기능과 방대한 개발자그룹을 기초로 해서 기업용 위키로서 자리잡고 있다면 모니위키는 간단하고 빠르면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개인용 위키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개발자가 한국 사람이고 따라서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한국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꽤 마음이 편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모니위키도 블로그 기능을 지원한다. 블로그라는게 특별한게 아니고 트랙백이나 rss같은 간단한 툴로 인해 그 효용성이 나타나는 것이다보니 위키에서도 트랙백과 rss를 지원하기만 하면 사실상 블로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많은 블로그들이 그런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여전히 예쁜 테마를 중심으로 홍보되다보니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블로그라는 개념으로는 모니위키의 블로그가 블로그같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그 때, 개인적으로 나는 루비라는 언어와 루비온레일즈라는 프레임웍을 알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배운 것은 써먹어봐야 하는건데, 국내의 호스팅 업체에서는 루비나 레일즈를 지원하는 곳이 전무했고 (사실 지금도 국내에서 레일즈를 지원하는 곳은 내가 알기로도 단 두 군데 뿐이다) 어쩔수 없이 해외 호스팅 업체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Site5를 이용하게 되면서 레일즈로 만들어진 typo라는 블로그툴을 이용하여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하한 이유로 인해 워드프레스로 이전하여 운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내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내가 오래 전에 적었던 많은 글들이 이 홈페이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로보드가 되었건 아니면 다른 어떤 툴이 되었건간에, 툴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변화, 그 변화의 족적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홈페이지를 오랜동안 운영을 해 오면서도 이전의 내 생각들이 보존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아쉬워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제로보드를 쓰던 호스팅 업체의 계정을 되살리기로 결정했다. 다행스럽게도 계정이 폐쇄된지 한달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정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촌스러운 제로보드, 표준을 지키지도 않고 보안에도 많은 문제가 있는 제로보드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글 하나하나는 정말 중요하다. 외국의 개인 사이트들을 보면, 그냥 html로 짜여진 홈페이지지만 충실한 내용으로 인해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에 비해 내 홈페이지는 겉모습은 최신으로 변화해왔는지 몰라도 그 내용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처럼 급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참 변화가 중요할 때는 빠르게 변화하는게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고 보니, 한 분야에 오랫동안 꾸준히 매진하는 것이 진짜 힘이라는 사실을 많이 느끼게 된다.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담고 있는 도구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진짜라는 사실을 깨닫고 명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