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genie 8925503026] 장정일의 공부 지난번에 장충동 김씨의 책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와 최근 작가들의 질투어린 선망의 대상인 장정일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다. 제목도 참 잘 지었다. 공부! 아직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의 뒤표지에 나와있는 저자의 공부에 대한 정의, 그리고 한 두 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우선 장정일의 공부의 정의.
공부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무엇보다 개념과 논리를 서로 이해하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모르면 남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서로 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라는 것은 내가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교양을 쌓는 일이라는 말과 바꾸어 써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공부다. 내가 중학생 때, 교양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 중 한 가지로 정한 일이 있다. 그리고 그 교양이라는 것의 정의를 나름대로 내려보았었고,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정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삶의 모든 문제에 있어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내가 정의한 교양은 생각과 판단의 기준이 외부에 있어 사안에 따라 외부의 환경에 따라 흔들리고 변화하는 불안정한 단계를 벗어나서, 스스로의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극적인 의미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장정일은 달랐다 그는 이미 이런 단계를 넘어서서 서로 이해하고 있는 단계를 상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 이후에서야 그 차이를 인정하든 아니면 내 견해를 수정하든, 혹은 상대방을 설득하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장정일의 교양은 스스로의 가치 기준을 세우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그 견해의 요지를 파악하여 스스로의 견해와 비판적으로 대조하는, 그리고 그 자양분을 흡수하는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양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르면, 당연히 교양을 쌓기 위해 하는 노력에도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제의 정의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달려 있다. 많은 경우에 적절한 질문은 적절한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장정일의 공부 방법은 내 공부 방법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장정일의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책이 장정일의 독후감 모음이라는 점이 1년에 50권 책 읽기를 하고 있는 내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해서 글을 써 볼 예정이다) 교양의 정의를 스스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목표 하나를 수정한다는 것이고 그런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가야 하는 길이 있는데 가지 않는 것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삶은 정체된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최소한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거기에 덧붙여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이해하고 그 견해와 내 견해의 차이점을 분석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내가 바로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강명식의 <십년 후엔>이라는 노래에서 말하듯이) 그 때까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십년을 하루 같이 황소 걸음으로 걸어간다면 그 곳에 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