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나는 원래 베스트셀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독서를 전자책으로 바꾼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베스트셀러를 더 많이 읽게 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 내 취향은 베스트셀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내 독서 일기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그런 면에서 보면 구독형 서비스에 가입한 덕분에 읽게 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에게도 이 책의 제목은 꽤 인상적이었는지, 가끔씩 서점을 갔을 때 본 표지로부터 이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스24의 북클럽에서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북 기준으로 146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많은 좌절을 겪고 낙담하신,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시는, 이 책을 읽게 되신 여러분들, 이제까지 간과하고 있었지만 본인으로부터 나오고 있을지 모를 또다른 소리에 귀 기울여 보셨으면 합니다. 죽고 싶을 때도 떡볶이는 먹고 싶은게 우리의 마음이니까요. -정신과 전문의의 말- 불완전함이 불완전함에게 중 (112페이지)
이 책의 판매고 절반은 아마도 귀에 꽂히는 제목 덕분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제목이 된 문구는 저자의 글이 아니라 저자를 상담했던 정신과 전문의의 말에서 온 것이었다. '죽고 싶다'는 표현이 관념적인 표현이라면 '떡볶이는 먹고 싶은'은 감각적인 표현일 것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사유의 영역이라면 무엇을 먹고 싶은가는 좀더 본능에 가까운 영역일 것이다. 사람이란 복잡한 여러 층위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한 영역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여기에 담겨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사람은 그 순간 가장 절실하고 가장 아픈 부분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죽을만큼 또는 죽고 싶을 만큼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도무지 상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내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과 동일한 경험일 수는 없는 것이니, 결국 우리는 남의 이런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는 것은, 지금 아픈 부분 말고 아프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다'라는 것은 죽을만큼 아픈 그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은 너무나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무슨 거창한 이론이 아니어도 우리는 누구나 잘 이해하고 있다.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는 옆에서 훈수두는 사람이 더 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창호나 이세돌, 아니면 최근 신진서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의 큰 그림과 자세한 그림을 모두 꿰고 있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내 삶을 살펴보고 훈수를 둬 줄 수 있는 애정과 여유를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야기는 내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도 너무나 많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쳐다보고 훈수를 둘 수 있으려면 그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애정을 가지고 하는 충고도 관계를 망치는 결과를 불러올 때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더 그렇다. 환자로서 의사를 바라보는 마음이든, 자식으로서 부모를 바라보는 마음이든, 아니면 제자로서 스승을 바라보는 마음이든 간에 합당한 신뢰관계가 있다면 내 삶을 향한 훈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바보같은 건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도 불편하다는 거다.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고, 그 사람들에게 내 보잘것없음을 들키고 무시당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순수하고 단순한 이들에게 더 마음이 가나보다. -삶의 과제- (119 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순수하고 단순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잘 모르겠지만, 불완전함이 불완전함에게 이야기하는 그 대화가 가능한 것은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사람을 향한 믿음만이 관계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그 말을 믿을만하게 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옳은 말로 가득차 있는 그럴듯한 책보다 자연스럽게 믿음을 만들어내는 소박한 책이 더 낫다.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책이라면 이미 그 사람들의 수만큼의 가치를 발휘한 것이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보다는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사람의 두꺼운 외투를 벗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