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고
나는 시간에 대한 책을 오래전부터 읽어온 것 같다. 대학교 때 같은 과 사람들과 함께 독서 모임 같은 것을 했었는데 그 모임에서 시간에 관련된 책들을 서로 추천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외에는 그 독서 모임에 대한 어떤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중의 한 권이 앨런 라이트맨이 쓴 아인슈타인의 꿈이라는 책이다. 시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아름답게 묘사한 책이고, 한국에서는 1993년에 처음 출판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지 30년이 다되어서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미 그의 전작인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고 그가 설명하는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의 내용에 대해 깊이 빠져들었던 바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거기서 생각을 시간으로 확장한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양자물리학은 입자성과 파동성, 즉 사물이냐 사건이냐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이 효과들이 모두 열역학적으로 평균화되어 있어서 이 효과를 느낄 수 없지만, 세계의 스케일을 아주 미시적으로 또는 아주 거시적으로 바꾸어 보면 인간이 감각으로 느끼는 세상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사실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대학원에서 화학을 공부하면서 현대물리학이나 양자화학과 같은 수업을 통해 90년대까지의 이론을 배운 적이 있어서 기본적인 용어 정도는 이해하는 편이다. 예컨대 불확적성의 원리에 의해 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이나 전자나 광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플랑크 상수와 연관지어 배워서 알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의 양자성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사실 시간이 공간과 얽혀 있다는 것은 그것을 장(field)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인데, 시간을 입자나 파동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그것을 양자화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도 당연히 해 보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은, 이런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과학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철학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풍부한 인문학적 이야기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통찰을 남긴 여러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그 의견들이 비록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남긴 것은 아닐지라도 저자가 생각하는 이론과 어떻게 연관되었는지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시간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 세 가지, 즉 유일성, 방향성, 독립성을 기초로 만들어진 시간에 대한 설명, 즉
이 우주에는 유일한 단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하고 (유일성)
그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한 방향으로 흘러가며 (방향성)
다른 어떤 존재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흐른다 (독립성)
는 이 관념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미 현대물리학에 의해 증명된 것이라면, 이런 관념을 벗어나서 시간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자가 연구하고 있는 양자중력 이론을 기반으로 제안하고 있고,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앞서 언급한 시간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앨런 라이트맨의 아인슈타인의 꿈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세심하고 아름답게 서술된 것인지 한 번 더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한 발자국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카를로 로벨리의 다음 책인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을 읽지 않고 넘어갈 방도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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