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책을 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이진민 작가가 쓴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을 읽고 나서와 같은 경우이다.
“그 어떤 백과사전보다 흥미롭고 그 어떤 인문한 서적보다 나를 배우게 한 책”이라는 평가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단어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게 된 저자의 경험을 따라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언어가 서로 다른 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나는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하지 못하는데다가 (고등학교 3년 동안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Eres tu 라는 노래 가사 뿐이다), 영어라는 언어에서 어떤 사회의 특성을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러기에 영어는 너무 국제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차라리 싱글리시라면 생각해볼 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것은 서로 다른 사회를 경험하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닐텐데, 저자처럼 다른 언어와 다른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걸 자신의 것과 비교하고 성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그런 면에서 한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와 그런 교류와 이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얼마전에 읽은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특성이 왜 그런지를 이해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 책은 그런 노력이 나와 맞닿은 다른 사회로 연결되어야 더 풍성한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익숙함은 안전함의 감각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습관적으로 사는 사람은 좁고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다. 사회가 나아지도록 기여하면서 살아가려면 이 공간을 벗어나서 다른 사회와 부딪히고 교류하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냥 이루어지는 성취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고, 그곳을 탈출함으로서 독립적인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나그네였으니 그 안에 있는 이방인들을 차별하거나 험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이 시조로 생각하는 아브라함은 모든 나라의 아비로서 모든 민족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차별과 배제를 기본으로 하는 이스라엘 극우주의자들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사회를 차별하려는 모든 생각은 같은 이유로 잘못되었다. 그 차별이 불러온 끔찍한 결과를 기억하고 그걸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독일인과 그들의 사회는 그런 면에서 본받을만하다. 한 사회가 가진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경우가 많아서 하나씩 떼어내 장점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최소한 가해자로서 역사 경험을 반성하고 재현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지점은 모든 사회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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