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영의 <주기도2>

드디어 엄정행이 부른 주기도 찬양을 유튜브에서 찾았다. 주기도 II (나운영 작곡) 테너 엄정행 - YouTub

오랫동안 찾고 싶었던 음원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우연히 찾게 되었는지… 나운영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홈페이지에 게시가 되어 있고 나운영의 생애와 작품 심지어는 악보까지도 올려져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든 채보를 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악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악보는 A flat 장조로 그려져 있고 메조소프라노 추희명의 연주는 악보대로 되어 있지만, 테너 엄정행이 부른 버전은 3도를 높여서 C장조로 부른 버전이다. (엄정행 테너가 경상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부를 때 '사하여'가 아니라 '싸하여' 처럼 들리는 것이 옥의 티와 같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오늘 들어봐도 그 부분이 귀에 꽂힌다.)

이 녹음은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 기념 교회음악대전집이라는 이름의 음반에 실려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은 1984년이었고, 이걸 기념하는 음반이 이 즈음에 녹음되었다고 보면 대략 27년 전쯤에 녹음된 것이다. (나는 이 곡을 카세트 테이프로 들었고, 그 카세트 테이프는 이미 20여년 전에 축 늘어져 버려서 모두 버린 상태였다. 나는 이 곡을 다시 듣고 싶어서, 이 녹음이 들어 있는 카세트 테이프를 중고로 구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엄정행 테너는 1943년생이니 대략 40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녹음한 것이라 할 수 있겠고, 성악가에게 있어서 40이라는 나이는 소리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에너지 넘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때라고 볼 수 있으니, 깊이라는 측면에서는 몰라도 소리라는 측면에서 이 녹음은 엄정행 최고의 녹음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운영은 한국 기독교 음악, 아니 한국 음악계에서 누구 못지 않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음악가이다. 한국적 음악의 모티프를 끊임없이 사용하고 발전시킨 인물이고, 기악곡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성악곡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작곡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얼마나 많은 <주기도>를 작곡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최소한 위에서 언급한 <주기도 2>는 주기도문에 곡을 붙인 어떤 곡과 비교해봐도 단연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많이 알고 있는 Malotte의 버전과 비교해 보면 감정의 고조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지만, 전형적인 온음계의 Malotte 버전이 단순하고 정직한 큰 스케일의 흐름을 보여준다면 나운영의 곡은 미묘하고 섬세하면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부분을 (여덟 마디에 걸쳐서) 훨씬 명징하고 간절하게 표현을 했다. 아무래도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t debtors'라는 영어 가사가 Malotte 버전에서는 겨우 네 마디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어로는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하옵시고' 정도로 줄여서 번역된 것이 그렇게 느껴진 이유일 수도 있다.

이 곡은 분명히 더 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고 해석될만한 가치가 있는 곡이다. 엄정행이라는 훌륭한 성악가에 의해 연주된 버전이 있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죄를 하여 주옵시고...) 분명히 더욱 훌륭한 버전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메조 소프라노 추희명의 연주도 좋기는 하지만, 테너 버전에 비해 메조 소프라노나 바리톤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를 충분히 표현한 것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테너 버전이건 메조 소프라노/바리톤 버전이건 간에 아직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연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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