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투란도트 2006 취리히 공연 감상기

호세 쿠라와 파올레타 마로쿠가 각각 칼라프와 투란도트 역을 맡은 2006년 취리히 공연을 유튜브로 봤다. (화질이 360p인 것은 함정) 이제 투란도트도 1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오페라라서 어지간한 해석은 다 나오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사실 류의 죽음 이후 마지막 장면을 베리오가 다시 작곡한 경우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기사 참조) 이 공연에서 호세 쿠라가 보여준 해석은 그 동안 본 적이 없었던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푸치니의 투란도트라는 오페라에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그걸 푸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상징과 해석을 사용할 수 있는 장면인데 음악으로는 아주 짧게 표현되고 있으니 그 긴장감을 몰입도 있게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이 장면을 드라마틱 소프라노와 드라마틱 테너의 소리 대결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유명한 비르기트 닐손과 프랑코 코렐리의 대결), 이 소리 대결이 어려운 플라시도 도밍고는 자신의 연기력을 활용해서 이 장면에서의 어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호세 카레라스는 도리어 변함이 없는 표정이 "미스테리한 왕자"라는 해석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연기를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수께끼는 세 개, 죽음은 하나'를 외치는 공주와 '수수께끼는 세 개, 삶은 하나'를 외치는 왕자의 high C 대결은 두 주인공의 대립을 가장 격렬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므로, 3막에서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이전에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에 비하면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는 장면은 엄청나게 격렬한 수수께끼에 비해서 왕자가 너무 쉽게 정답을 맞추기 때문에 이미 왕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고 조운 서덜랜드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주역을 맡은 데카 음반에서는, 수수께끼를 맞춘 이방인에게 자신을 넘겨주시겠나며 왕에게 탄원하는 공주의 두 번의 high C를 왕자가 무시무시한 단 한 번의 high C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왕자의 high C는 악보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가수의 (또는 지휘자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왕자에게 주도권이 넘어와 있는 것을 무대 장치나 연출이 아닌 노래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너무 멋진 장면이었다. 이게 내가 이 녹음을 최고의 투란도트로 꼽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호세 쿠라의 푸치니 아리아집에서 Nessun Dorma는 내가 들은 이 아리아 중에서도 거의 수위를 다툴 정도로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 오페라 실황을 흥미롭게 본 것인데 (게다가 호세 쿠라 정도면 최근 테너 중에서는 가장 드라마틱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의외로 수수께끼 장면을 도리어 너무 위트있게 해석을 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검색을 하는 칼라프 왕자에게 그깟 수수께끼 세 개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노트북을 들고 쉽게 답을 맞춰 버리는 왕자라면 이제 수수께끼를 맞추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 버리고 (앞에서 언급한 파바로티의 high C는 쿠라에게는 필요 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이제 공주를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만 남게 된다. 푸치니가 가장 고민했다던 마지막 사랑의 이중창 부분. 가장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공주가 배경을 알 수 없는 떠돌이 왕자와 한 번의 키스로 (그것도 그 왕자의 아버지의 종을 고문으로 죽이자마자) 사랑에 빠질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걸 표현해 내려면 도대체 어떤 음악을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그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다. 키스는 두 사람의 육체적 결합으로 해석되고, 성인의 일은 성인의 방식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공주는 빨간 원피스를 드러내고 왕자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건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처럼 그냥 취미로 음악을 듣는 사람과, 관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성공시켜야 하는 프로페셔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직업이고 돈을 버는 일이라면 최소한 아마추어 애호가보다는 뭔가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