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조각] 하나님의 침묵을 받아들이는 세 가지 생각

이스라엘의 철학자 요람 하조니(Yoram Hazony)의 책 두 권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에스더서로 고찰하는 하나님과 정치』 이다. 성서라는 오래된 텍스트를 현대적인 철학적 언어로, 특히 '정치적 결단'의 서사로 풀어내는 그의 통찰에 꽤 깊이 공감하며 페이지를 넘겼었고, 지금도 그 책의 주요 부분들이 내 Screvi 데일리 리뷰에 가끔씩 올라온다.

그런데 오늘 종교전쟁광④라는 제목의 오터레터 기사를 읽다가 발견한 요람 하조니의 이름은 내게 일종의 지적 충격이었다. 내가 감명 깊게 읽은 두 책을 저술한 이 철학자가 현재 미국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인물인 JD 밴스(JD Vance)를 비롯한 '신우파(New Right)' 세력의 핵심 지적 설계자라는 사실이었다.

1. 텍스트가 정치가 될 때의 충격

하조니가 에스더서를 통해 말한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의 인간의 결단"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국가 보수주의(National Conservatism)라는 강력한 정치 전략으로 변모해 현장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내가 읽은 '지혜'가 누군가에게는 '권력 쟁취를 위한 작전 지시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영향력을 조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전제를 공유했던 다른 두 거장의 책들이 떠올랐다. 바로 자끄 엘륄(Jacques Ellul)『잊혀진 소망』엔도 슈사쿠(遠藤周作)『침묵』이다.

2. 같은 전제, 너무나 다른 세 가지 길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하나님은 무대 뒤로 물러나 계시며(침묵), 이제 공은 인간에게 넘어왔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그 '공'을 처리하는 방식은 경이로울 정도로 다르다.

  • 요람 하조니의 '권력': 하나님이 침묵하시기에 인간은 더욱 치밀한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권력을 쥐고, 전통을 수호하며, 적대적인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정치적 현실주의'.

  • 엔도 슈사쿠의 '연대':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 곁에서 함께 울며 밟히고 계신다. 강한 자의 승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실패와 배교 속에서도 흐르는 긍휼에 집중하는 '내면적 영성'.

  • 자끄 엘륄의 '저항':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는 인간이 기술과 효율이라는 우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으려 애쓰기보다, 시스템의 부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비능률적인 자유'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저항'.

3. 흥미로움과 위험함 사이에서

같은 '신의 침묵'을 두고 한쪽은 검(Sword)을 들라고 하고, 한쪽은 눈물(Tear)을 닦으라 하며, 다른 한쪽은 멈춤(Halt)을 외친다.

이 지적 스펙트럼은 대단히 매혹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조니의 논리는 자칫 배타적인 힘의 논리로 흐를 위험이 있고, 엔도의 논리는 현실의 악에 무력할 수 있으며, 엘륄의 논리는 고립된 순결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나의 선택: 왜 자끄 엘륄인가?

세 가지 길을 곱씹어본 결과, 내 마음이 가장 깊이 머무는 곳은 자끄 엘륄의 지점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하조니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결국 그 권력 또한 '기술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인간을 억압하기 마련이라는 엘륄의 경고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효율과 성과가 지배하는 인공지능 세상을 살아가는 컨설턴트로서 기독교인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산다는 것은 결국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않는 '거룩한 고집'을 지키는 것이고, 이게 가장 본질적인 저항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숨어 계신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를 증명할 책임을 주신 것이다."

한 뉴스레터의 작은 글씨에서 시작된 고민이 하조니, 슈샤쿠, 엘륄을 거쳐 오늘의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침묵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