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웨이홈: 어른을 위한 동화

Home은 그냥 '집'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의미를 표현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곳은 내가 돌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그 안정감이 home이라는 단어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속감은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그래서 돌아갈 집이 없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피터 파커로서의 삶과 스파이더맨로서의 삶, 이렇게 두가지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갖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 두 삶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히어로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아이언맨의 죽음은 아마도 스파이더맨에게는 너무나 큰 손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 두 가지 정체성의 고리가 발각되고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스파이더맨이 더 이상 개인의 삶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많은 연예인들이 겪는 것과 같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숙모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큰엄마였던) 메이 파커를 잃게 되는 사건은 '피터 파커'로서의 삶에 대한 정체성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 사건이다. 그의 삶을 지탱하는 두 가지 정체성의 수호자들, 아빠 같았던 아이언맨과 엄마같았던 메이를 모두 잃은 스파이더맨에게는 더 이상 home을 찾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돌아갈 home이 없는 것이다.

 

두 개의 세상을 사는 히어로, 그리고 그 두 개의 세상을 지탱해주던 두 기둥을 잃은 히어로. 그래서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냥 밝고 철없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세상에 홀로 떨어져서 어른이 되듯, 이제 스파이더맨은 (마치 토니 스타크가 스스로를 아이언맨이라고 밝혔던 것처럼) 두 세계를 자신의 힘으로 조화시키며 사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두 세계를 완벽허게 분리해서 살 수 있다면, 그건 아마 동화 속 세상일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그 세계들 사이의 갈등을 인지하고 그걸 감당해 내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제 피터 파커는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그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서, 처음에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이 사람들만은 나를 잊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던,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잊혀지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월세방에서,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준 최첨단 수트가 아닌) 스스로 만든 수트를 입고 스파이더맨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기억이란 그렇게 간단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기억은 존재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존재라고 해도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건 세상을 다 바꿔놓는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은 닥터 스트레인지가 (심지어 자신도 포함한) 모든 이의 기억에서 피터 파커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동화인 이유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잊고 완전히 새로 시작해 보고 싶다고.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가 했던 이 바보같은 일들이 다 없어져 버리면 좋겠다고. 이런 동화같은 꿈이 이루어지고 피터 파커는 두 어른에 의해 지탱되었던 어린 시절을 벗어나 어른이 되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이제 스파이더맨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자신의 둥지에서 home을 만들 자격이 있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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