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3부작을 읽고

닐 셔스터먼이 쓰고 이수현이 번역하였으며, 2023년 1월에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수확자 3부작을 모두 읽었다.

책에 대한 소개

이 책의 출판사 서평에 나오는 이 한 줄이 사실상 이 책에 대한 가장 완벽한 소개가 될 것이다.

죽음이 없는 세계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이 소설은 인공지능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굶주림과 질병, 전쟁, 죽음이 사라져버린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사람이 죽음을 경험할 수는 있지만 바로 재생이 되고 (게다가 처음 한번은 무료이다) 원한다면 특정한 나이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재생시킬 수 있다. 극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인 선더헤드는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절하고 유지해 낸다. 규칙을 어길 수 없는 신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이 완벽한 세계에 주어진 제한 조건은 지구가 유지시킬 수 있는 생명의 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인구가 계속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고, 수확자는 양심에 따라 주어진 숫자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사함으로서 이 목표를 이루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이 수확자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떠오른 질문들

수백년(그 이상)을 산다는 것

소설에서는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이 대체로 수백년 정도 살아온 것으로 묘사된다.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초기 인류들이 900년 이상을 살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첫번째 후손을 출산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그 후로는 그냥 많은 아들 딸을 낳으면서 살았다고 언급하는 것이 전부이다. 인간이 출산 능력을 수백년 동안 유지할 수 있다면 한 인간이 낳을 수 있는 인간의 수는 꽤나 많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고, 원하는 신체 나이로 돌릴 수 있다는 소설의 내용을 감안하면, 출산을 하는 여성들도 출산의 횟수에 관계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사회는 처음은 있지만 마지막은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처음 아이를 갖고 그 아이의 웃음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기쁨이자 이해하기 힘든 선물이지만, 그것이 다른 조건을 희생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러니까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런 기쁨은 아마도 쉽게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요소는 유한한 세계와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몇 번 경험하기 힘들어서 처음이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차 있다.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은 삶의 한 순간 한 순간들을 가치있고 귀하게 만든다. 그리고 처음은 있지만 마지막이 없다는 사실은 이 모든 가치를 결국 0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은 적당한 위치에 만족하는 종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할 수 없는 상황, 처음 인간인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졌던 그 상황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조건인데, 인간은 그런 조건을 견딜 수 없었다. 과연 인간은 기술로 이루어낸 이 완벽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죽은 인간을 되살릴 수 있는 소설의 배경에서도 그게 불가능한 상황들이 있다. 물리적으로 몸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데, 몸이 불에 타버리거나 다른 생물들에게 먹혀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결국 서로 다른 인간의 몸을 결합하는 일이 생겨나게 된다. 머리는 A의 것인데 이외의 몸은 B라면 이 사람은 과연 A인가 B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선더헤드는 모든 사람들의 뇌를 일정 시간마다 백업해 두기 때문에 뇌에 저장된 모든 정보는 완벽하게 A의 것이므로 A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뇌는 몸의 모든 부분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정보가 사람을 이루는 요소 중의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신체 나이가 60 정도가 되었을 때 다시 서른살의 몸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서른살일까 예순살일까? 예순살의 뇌와 서른살의 몸을 가진 사람의 나이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뇌 속에 들어 있는 정보와 몸의 불일치는 어떻게 해소해낼 수 있을까?

선더헤드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주어져 있는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망각이다. 망각 대신에 불완전한 기억이라고 말을 해도 되겠지만, 망각은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 가지고 살아가는 기억의 양에 한계가 있다면, 오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잊을지를 매순간 결정하는 일이다. 실제로 인간의 삶은 기억이 늘어나는 시기와 기억이 줄어드는 시기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 늘어나는 시기는 정해져 있는데, 그 시기 이후로 인간의 삶은 그저 늘어나는 기억 대신에 어떤 기억을 잊을지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 없이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나라는 것을 판별하는 요소는 아마도 기억의 총합이 얼마나 유사한가로 정의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든 기억이 다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닐테니, 나의 기억 중에서 내가 나임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 기억은 무엇일까? '이 기억이 유지되는 한 다른 기억과 상관없이 나는 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데이터베이스와 하드디스크

소설에서 선더헤드는 후뇌를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프로세스되지 않은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다. 마치 데이터베이스에 정리되어 올라가지 않고 하드디스크에 던져놓은 파일들과 같다. 이 후뇌에 저장된 정보들은 누구나 볼 수는 있지만 쉽게 찾아낼 수는 없다.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가 있다는 것이다. 선더헤드는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가 있는 데이터만으로 죽음이 없는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더헤드도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 한계와 관련된 데이터는 모두 후뇌에 쌓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 속에 세상의 운명을 결정지을, 또는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요해진 정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충분한 정보와 1년 후에 충분한 정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foundation model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를 갖는 새로운 데이터는 생성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앞에서도 이미 언급한대로 인간의 특징이 바로 '적당한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바로 에덴동산으로 상징되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곳에도 반드시 틈은 있고 헛점은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틈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 완벽한 세상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그 세상은 아마도 인간이 없는 세상일 것이다. 인간이 있다면 인간은 그 세상을 완벽한 곳으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인가를 물어보는 질문과 정확하게 동일한 지점에서 이 세상은 어제와 같은 세상인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제도 완벽하고 오늘도 완벽하다는 것이 가능한 명제일까? 새로운 인간의 삶이 시작되고 새로운 경험이 쌓이고 있는데 완벽함이 유지될 수 있을까? 어제를 완벽하게 만든 데이터는 오늘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하드디스크에 파일이 쌓이고 있는데, 그 파일을 지속적으로 프로세스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돌아가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을까?

책에 대한 평가

책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재미이다. 재미가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나는 이틀에 걸쳐서 3부작을 모두 읽었는데, 중간에 다른 책을 펼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을 하고 읽었다.

그리고 책을 평가할 때는, 그 책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질문들을 많이 던지느냐를 보아야 한다. 위에서 대략 세 종류의 질문에 대해 적어 보았지만, 이거 말고도 내게 주어진 질문들은 더 있다. (사실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나도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여기에 명식적으로 정리해서 적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서 다양한 질문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질문들은 결국 정체성에 관한 것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이 책을 청소년 도서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내 기준에서 어떤 책이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불어넣어주면 그 책은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소설책들이 그렇지만 (소설은 그 자체로 완결된 내용인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그런 생각을 불어넣어주지는 않았다. 다만 3부작의 마지막에 나온 장면에 이어지게 될 여러 개의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운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면에서는 작가에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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