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해 (5) 시공간과 독서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은 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발견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의 사고 실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놀랍기 그지없고, 그걸 지금에서도 많은 과학자들조차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일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현대 물리학의 여러 주제들이 그렇듯이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라는 책을 추천한다. 내가 적은 독서평은 아래와 같다.

고대 자연 철학에서 시작하여 물리학의 역사를 훑고 나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이야기한 후에 빅뱅과 루프양자이론으로 블랙홀의 신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를 내놓더니 섀넌의 정보 이론을 끌어내고 관계성 그리고 겸손함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라니!!!

시간과 공간은 오랫동안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여겨져 왔다. 과거로 더 거슬로 올라갈수록 공간의 제약이 매우 컸기 때문에 시간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삶의 양상에 변화가 있으려면 새로운 삶의 양상과 만나야 하는데 공간적인 제약이 크기 때문에 새로움과 만나는 확률이 매우 낮아지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삶의 양상이 거의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 간의 간격이 몇 세대가 지나는 시간적인 간격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 거리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예외적인 새로움을 더하게 되고, 세대를 거쳐 전수되는 지혜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세대 차이보다는 지역 차이가 사람의 생각을 더 잘 구분하는 요소인 것이다. 이야기들은 그 구체적인 상황들은 다양하게 변용되지만 핵심적인 플롯만 유지한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 책은 이런 이야기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고, 다른 집단의 상황에 대한 궁금증은 먼 거리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현대는 빠른 이동수단 덕분에 공간적인 한계가 별로 없고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서 시간 축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역 차이보다는 세대 차이가 사람의 생각을 더 잘 구분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언어의 장벽조차 AI 기술의 발달에 따라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니 지구에서 어느 곳이든 그곳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매우 빠르게 전 세계에 공유될 수 있다. 수많은 매체들 덕분에 매우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받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다른 곳으로부터 받고 있는 셈이며, 세대 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량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세대 간의 생각 차이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과거의 책이 '내 지역에 살게 될 후손들'을 독자로 생각하고 쓰였다면, 현대의 책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동세대'를 독자로 가정하고 쓰여졌다고 봐도 될 것이다. 과거의 책이 '교육' 또는 '보존'을 목표로 쓰여진 경우가 많았다면 현대의 책들은 거의 예외없이 '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제 더 이상 독서는 과거의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나면서 자신의 생각을 성장시켜 가는 것이 독서의 기쁨인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동일한 주제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읽는 시간의 독서, 동일한 시대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는지를 읽는 공간의 독서가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시간이 갈수록 시간의 독서보다는 공간의 독서에 집중하게 된다. 십여년 전에는 특정한 주제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의 집중적 읽기를 의식적으로 많이 했었다. 동일한 생각에 대한 생각의 변화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주제에 대한 내 의견을 더욱 깊이있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제에 따라서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읽을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천착했던 주제들은 '기독교인 과학자가 보는 진화론', '역사적 예수', '역사 해석 방법론', '효율적인 업무 처리 방법' 같은 것들이 있었다. 대체로 한 주제 당 십여권의 책들을 미리 정하고 (목록이 중간에 바뀌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것들을 연대별로 정리한 후에 오래된 것부터 읽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보통은 해당 주제를 잘 개괄하고 있는 책을 한두 권 먼저 읽고 주제에 대한 독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독서의 시작은, 해당 주제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있기 마련인데 열 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읽어나가야 하는 만큼 꽤 강한 자극을 받아야 시작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공간의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것은 아무래도 독서 방식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 전자책이라는 특성상 앞에서 이야기한 시간적 독서를 하기에는 원하는 책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는 베스트셀러들이 전자책으로 이용 가능한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현 시대의 작가들이 쓴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친구들과의 대화의 경우에는 1991년생인 샐리 루니가 2017년에 쓴 책이다. 최근 읽은 국내 도서들의 경우에도 어떤 물질의 사랑을 쓴 천선란은 1993년생이고 바로 전 포스팅에 남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는 1990년생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주제, 형식, 장르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90년대생 작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공간적 변주로 읽을 수 있다는 정도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주 작은 공간을 다룰 때는 시간을 독립 변수로 생각해도 되지만 공간이 아주 커지면 (그러니까 빛의 속도와 비교해야 하는 정도의 크기) 시간은 더이상 독립 변수가 아니게 된다. 독서를 통해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면 시간을 바라보는 견해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는 상황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읽는 책의 양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의 크기이다. 생각의 크기가 커지면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경험이 아니라서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나같은 보통 사람은 시공간이 얽히는 물리적 상황을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넒이와 깊이를 아우르는 생각의 수준에 다다르면 어떻게 될지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런 경지가 있음을 믿고 꾸준히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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