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게 신기하게까지 느껴지는 책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리디셀렉트에서 읽은 <일생에 한 번은 헌법을 읽어라>라는 책이다.

소설가 김훈과 관련된 글이나 정치평론가 조갑제의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해서 글을 쓴 적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가장의 역할, 예수는 위대한 시장경제론자?), 이런 느낌 때문에 글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아래 인용한 문장들은 모두 이 책에 나오는 문장이고, 내가 굳이 다른 색으로 표시를 해둔 것들이다.

나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것을 아쉬워한 적은 있어도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아쉬워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나는 나의 말을 정연하게 하기 위해 ‘나’에게는 모든 말을, 소중한 ‘너’에게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이외의 모든 사람에게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세상은 진-선-미 순으로 아름다움을 매기지만 나는 미-선-진의 순서에서 더 감동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 상처받지 않고 배신당하지 않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타인을 신뢰하지 않으면 배신을 당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언젠가 있었을지도 모를 나의 양심을 지금도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국회가 스스로 제장한 법률을 위반해 민주적 절차를 어기는 것이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정치인에 대한 시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나는 ’이성적으로‘ 이성을 믿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합니다

헌법의 조문을 읽으면서 마지막 단락에 인생철학을 적어놓는 것이 생뚱맞게 느껴지는데, 그 인생철학이 이런 상황이니 헌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도리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사실 첫번째로 마음에 걸린 것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것을 아쉬워한 적은 있어도‘라는 표현이었다. 한국어라는 독특하고 어려운 모국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게 생각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50여년의 평생 동안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본 일이 없다. 이게 영어 공부 하기 싫어서 하는 농담이면 모르겠는데, 이 문맥은 그렇게 읽히지도 않는다.

나는 남의 철학을 평가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어떤 글을 읽고 그 저자의 생각과 말투를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예측하고 그걸 확인해볼 수 있을 정도로는 독서를 해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관점에서도 이 책의 저자와 마음을 나누는 친구 가 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도 이 사실을 아쉬워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저자에 대해 모르고 독서를 시작하고 마쳤는데,궁금해져서 이 분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서울법대 80년대 초반 학번 정도에 황교안 전 총리 밑에서 공안검사로 일을 했었고 지금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분이다. 내 느낌이 그리 틀린 것은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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