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찬양 11집
이 음반이 1994년에 나왔으니 이제 14년이 지난 셈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지배하며 한국의 CCM을 이끌었던 단체가 바로 주찬양선교단이다. 이 시기에 중등부에서 청년부 사이의 시절을 거친 사람이라면 최덕신과 주찬양선교단을 모를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내가 다니던 오류중학교에서 음악선생님으로 계셨던 노희영 선생님이 주찬양선교단 초기 멤버였고, 최덕신씨가 근처의 교회 출신이라는 점이 더욱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주찬양선교단의 음악과 함께 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음반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구입을 해서 누구보다 먼저 외워버리려고 노력을 했다. 기타를 배우면서 최덕신 음악의 코드 진행을 끊임없이 연마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무엇보다 새로웠고 신선했다. 그런데 그의 음반을 듣지 않게 된게 8집부터였던 것 같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찬양선교단의 음반을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음악을 듣기는 했었는데, 10집과 11집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았었다. 이 두 음반이 나올 때 쯤에는 나름대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골고루 들을 수 있는 환경이었고, 외국 CCM에 대한 관심도 많이 올라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찬양 10집과 11집을 10년도 더 지난 이제서야 들었다. 그 사이 주찬양선교단은 리더인 최덕신 형제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했고, 이 마지막 시기에 그 일원이었던 김명식, 강명식 등의 사역자들은 현재 최고의 위치를 구가하고 있다. 10집을 들으면서는 최덕신 형제의 사건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었는데, 11집에서는 그런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음반을 다 듣고 나서 든 생각은, 최덕신씨가 어쩌면 한국의 Tom Fettke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것이었다. 그의 음악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면 분명 그런 위치에 올 수 있었을 것 같다. 최소한 지금 한국에는 주찬양선교단이 추구하던 그런 종류의 음악을 하고 제공하는 사역자가 없다. 클래시컬 코러스와 CCM의 중간에 있는, 그렇지만 워십과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그런 음악 말이다. 내가 Tom Fettke의 음악을 들으며, 또 그가 만든 음반을 들으며 느끼는 필요성을 주찬양선교단 11집이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이미 14년전에 중단되어 버렸다. 그것도 불미스러운 일로 말이다. 2007년에 출간된 새찬송가를 보면서 분명 최덕신/송명희 콤비의 찬양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그들의 찬양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곡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된 사건이 더욱 안타깝고 아쉽게 느껴진다. 아티스트는 사라질지 몰라도 그들의 음악은 아직도 그렇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