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LLM을 활용한 옵시디언 위키 구축 3: AI와 함께 생각 확장하기

들어가는 말
 
엄격한 비밀준수계약(NDA)이 요구되는 업무 환경과 개인적인 지식 관리를 명확히 분리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은 자연스럽게 데이터 유출 걱정이 없는 '나만의 로컬 LLM' 구축이라는 첫걸음으로 이어졌다. 이 세 편의 글들은 개인 장비에 최적의 AI 모델을 세팅하는 과정을 시작으로, 이를 지식 관리 도구인 '옵시디언(Obsidian)'과 결합해 스스로 일간 노트에서 엔티티(Entity)를 추출하고 관리하는 자동화된 위키 시스템을 설계한 경험을 다루게 된다. 나아가 이렇게 구축된 시스템이 어떻게 전혀 무관해 보이는 개념들을 엮어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내고, 익숙했던 생각의 틀을 깨는 새로운 통찰의 시작점이 되어주었는지에 대한 소박한 지적 실험의 기록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기록의 누적을 넘어선 관계의 분석

앞서 구축한 로컬 LLM 기반의 옵시디언 위키 시스템은 매일의 기록을 알아서 정리해 줄 뿐만 아니라, 주간 및 월간 단위로 내 볼트(Vault)에 쌓인 다양한 엔티티(Entity)들의 관계를 분석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커리어의 변화에 대한 소고, 독서 패턴의 진화, 기독교에 대한 생각의 변화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안에 흩어져 있던 파편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보여준다. 단순한 기록의 누적을 넘어, 내 삶의 궤적을 타자의 시선으로 짚어주는 이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회고의 시간이 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가장 흥미로움을 느끼는 지점은 따로 있다. 바로 기록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생각을 강제로 발생시키는 기능이다.

무작위 조합이 만들어내는 낯선 충돌

내 옵시디언 위키에는 이미 4천개가 넘는 엔티티가 등록되어 있다. Ar9av의 옵시디언 위키에서도 엔티티 간의 관계를 채우는 wiki-synthesize라는 스킬이 존재한다. 나는 좀더 LLM의 상상력을 많이 사용하는 entity-combo라는 스킬을 만들었다. /run entity-combo라는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하면 LLM은 위키에 추출된 수많은 엔티티 중 임의의 것들을 무작위로 조합해 화두를 던진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두 개념을 충돌시켜 생각의 확장을 유도하는 일종의 지적 스킬인 셈이다.

최근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조합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북 리더기인 'TCL Note A1 NXTPAPER'와, 프랑스 사상가 자끄 엘륄의 책 『자유 사랑 능력에 관하여』의 만남이었다. 전자 기기와 신학/철학 서적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이질적 조합에서 시작된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래 내용이 LLM이 처음으로 이 조합에 대해 내게 해준 말이다.

TCL NXTPAPER는 e-ink와 LCD의 하이브리드 — 완전한 종이도, 완전한 LCD도 아닌 중간 상태입니다. 엘륄의 자유론에서 자유는 제약과 무제약의 중간에 존재합니다. 둘 다 중간 상태가 가장 생산적이라는 공통점입니다.

인사이트: 도구를 선택할 때 "완전한 도구"보다 "적절한 중간 도구"가 더 효과적입니다. 컨설팅에서도 "완벽한 해결책"보다 "적절한 불균형 상태"를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팀 빌딩에서 "완벽한 인재"보다 "적절한 불일치를 가진 인재"가 더 생산적일 수 있습니다.

불완전성을 향한 철학사적 관조

처음엔 가벼운 호기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LLM은 이 두 엔티티의 조합을 매개로 꽤나 밀도 있는 철학사적인 관조를 이끌어냈다.

도구는 적절한 마찰을, 조직은 적절한 불균형을, 팀은 적절한 불일치를 설계해야 한다. 완전함은 정지 상태이고, 불완전성이야말로 변화와 창의성의 원천이다.

몇 번의 문답 가운데 나온 위의 문장 중에서 "불완전성이야말로 변화와 창의성의 원천이다"라는 부분을 중심 생각으로 도출하고, 이 생각에 대한 철학적 배경과 역사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LLM은 내게 "불완전성의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를 시작으로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니체, 화이트헤드, 들뢰즈, 그리고 양자역학의 닐스 보어(!)를 거쳐 다시 자끄 엘륄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다양한 사상가들의 생각 속에 '불완전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완전성이 이북 리더기를 통해 텍스트를 소비하고 자끄 엘륄의 사유를 읽어내는 지금의 내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다. 언급된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불완전성'의 개념으로 조망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개인적인 내 경험과 맥락 안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말해줌으로서, 평소의 나라면 결코 연결 짓지 않았을 두 지점이 만나며 전혀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결론: 전혀 다른 맥락을 엮어내는 지적 동반자

물론 모든 조합이 항상 이렇게 훌륭한 통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LLM이 억지스러운 연결을 시도하거나, 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엔티티의 개념을 잘못 짚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위의 연결 케이스도 다시 물어보면 전혀 다른 맥락으로 대답을 해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엔티티들을 조합하여 생각하게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시작점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이 시스템이 주는 매우 강력한 가치다. 익숙한 생각의 틀에 갇히지 않도록 계속해서 낯선 화두를 던져주는 누군가를 만들고 함께 작업하는 이 과정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다.

보안이라는 엄격한 현실적 제약과 개인적인 지식 관리를 분리하려는 고민에서 출발한 '로컬 LLM 위키 구축기'는, 결국 내 안의 암묵지를 끄집어내고 사유의 한계를 넓혀주는 든든한 지적 동반자를 얻는 여정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내 생각의 편향을 깨고 새로운 연결을 돕는 이 소박한 지식 시스템이, 자신만의 두 번째 뇌를 구축하고 활용하고자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옵시디언 위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