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공감과 연대의 힘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어른을 위한 동화에서 나는 스파이더맨이 두 개의 단절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겪게 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국 동화같은 방식으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초보 어른 스파이더맨.

결국 그는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기억을 머리 속에 넣고 사는 그에게 브랜드 뉴 데이는 이미 시작된 것이지만, 사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과거를 살고 있다. 언제 그는 진정한 의미의 브랜드 뉴 데이를 살아가게 될 수 있을까?

이전 편에서 그가 맞닥뜨렸던 위기는 개인의 삶과 히어로의 삶이라는 ‘두 개의 세계’였지만, 엔딩 크레딧 장면에서 그의 위기는 좀더 근원적인 정체성, 즉 인간과 돌연변이(거미) 사이의 갈등으로 바뀐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정교한 과학 기술로 만들어낸 Inhibitor(억제기) 로 한쪽을 억누름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 배너 박사가 감마 복제를 제어하는 장치를 통해 헐크를 억제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는 이 기술이 특정 누군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범용성이 있음을 알아낸다. 첫 번째 실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고, 진 그레이에게도 이 기술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Inhibitor 디바이스를 달고 다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배너 박사가 이 장치를 건네주며 “도대체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을 때, 피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과학적으로 ‘돌연변이’라는 것은 문제가 주어지면 곧바로 답이 나오는 명확한 범주화가 불가능한 영역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윤리와 가치의 문제가 더해지면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실제로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흑백으로 가려내기 힘든, 백만 단계의 그레이스케일인 것이다.

마지막 전투 씬에서 스파이더맨은 inhibitor가 제거된 상태에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던 거미 유전자의 과도하게 활성된 감각의 힘을 이용해서 위기를 극복해 낸다. 그 과정에서 이전처럼 지나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과도하게 올라오는 거미 유전자의 힘을 고통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그 힘을 길들여낸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전조나 설명도 없이 그걸 갑자기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가 슈퍼히어로이기 때문이겠지.

사실 스파이더맨에게 자신의 힘을 통제해낼 수 있다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존재, 즉 진 그레이를 위로하고 품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그의 큰 엄마가 그에게 해준 이야기는 사실 이미 그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일부분으로서 사실은 그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삶으로 체득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일부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일부가 되어버린 이야기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스파이더맨의 정신에 침투한 (혹은 스파이더맨이 침투하라고 일부러 길을 열어준 것일 수도 있지만) 진 그레이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메이 파커가 아니라 사실은 피터 파커이다.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경험의 어려운 순간들을 극복해낸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진짜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진 그레이는 “이런 고통을 겪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고립감“이 고통을 주는 모든 존재를 증오한다”는 복수심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모든 돌연변이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개별적인 것이지만,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에는 공감과 연대가 가능한 지점이 있다. 그 개별성 때문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해결이 존재할 수 없지만, 공감과 연대라는 인간의 특징 때문에 실존적인 해결이 가능하기도 하다. 어떤 문제가 가장 개인적인 실존의 문제이기만 할 때 인간은 서로를 미워하고 고립될 수 밖에 없지만, 그 문제로부터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래서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면 새로운 형태의 관계와 공동체성이 발현될 수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잿더미로부터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가능하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고 새출발을 하는 것은 그저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과거의 기억 때문에 새로운 관계의 출발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저 동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마음 속에 앙금이 남아 있고, 모든 말이 모든 관계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 공감과 연대의 정신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공감과 연대의 정신은 매일을 새로운 날로 만들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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