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보이를 보다
사실 올드보이가 칸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아니었으면 그게 아무리 잘된 영화라고 해도 시간을 들여서 보고 싶은 마음은 아마 생기지 않았을거다. 근데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참 간사한거라 왠지 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은 원래 바쁘면 더 딴짓이 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_-;
대강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주인공이 15년간 군만두만 먹으면서 한 곳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원인이 근친 상간과 관련된 무언가라는 사실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고, 최민식이 무지하게 연기 잘한다는 말, 그리고 유지태가 그 역을 연기하기 위해 살을 많이 찌웠다는 말도 들었었다. 영화 자체의 짜임새는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두 시간 동안 사람의 신경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런 부분에 너무 적응이 되어 있는 것인지, 그냥 보아 줄 수 있는 정도였다.
정작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그처럼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라는 말에서 복수라는 단어였다. 누나와의 금지된 사랑을 통해 저질러서는 안되는 범죄를 저지른 유지태, 평범한 삶을 사는 듯 했지만 결국 딸과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는 최민식. 결국 사람이란 그런게 아닌가. 하나 하나 까발리고 풀어헤쳐 놓으면 추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는 복수를 낳고 피는 피를 낳게 되어 있다. 근친간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혹은 그래 보이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데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자식이 태어나는거야 성경책을 봐도 나오는 이야기이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아버지 유다를 일부러 취하게 만들고 밤에 조용히 아버지를 순서대로 겁탈하는 유다의 두 딸 이야기가 훨씬 더 엽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더러운 모습이 복수라는 단어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복수가 되었건 용서가 되었건간에 사람은 어쨌든 참 약하고 간사한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동을 무의식 중에 따라하고 모방하게 되어 있다. 모방은 실제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의식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복수심이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올드보이의 두 주인공은 결국 같은 사람이다. 모래알이건 바위이건 물에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말인즉 맞는 말이라는 뜻이다. 1미터를 뛰건 2미터를 뛰건간에 10미터를 뛰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과 같다.
결국 사람은 더럽고 추악한 존재다. 그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다.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고 산다면 세상은 그냥 복수로 가득차 버릴 것이다.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차 있지만 복수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그냥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할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상태란 더 나빠질래야 더 나빠질 수가 없는 상태니까... 수레바퀴를 반대로 돌리는 것은 돌아가는 방향으로 돌리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복수보다는 용서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그런 면에서 올드보이의 잔인함에 비해 훨씬 더 잔인한 장면으로 연속하고 있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훨씬 더 솔직하게 용서를 말하고 있음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더러운 사람의 모습으로 살면서 그냥 그렇게 더럽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 차라리 솔직한거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 사람의 모습을 알고 있으면서도 용서하고 사는 것은 참으로 더 어려운 일이다.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난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해병대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렇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자신의 모습이 더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삶 속에 거룩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냥 본성에 따라 솔직하게 사는 것보다 수만배는 더 어려운 길이다. 그냥 느낌대로 솔직하게 사는 것에 머물러 있다면 그게 바로 늙은 아이, 그러니까 올드보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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