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식품에 대한 생각

약과 식품에 대한 생각

뉴욕 타임즈에 Is Green Tea ‘Nature’s Ozempic’? The Beverage’s Link to Weight Loss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최근 틱톡에서 “녹차는 자연의 오젬픽”이라는 내용이 많이 회자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된 내용이다. 참고로, 오젬픽은 노보 노디스크에 의해 개발된 2형 당뇨병 치료제이고, 후에 비만 치료제로 허가받아 판매되고 있는 위고비와 같은 성분이다. 위고비는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와 함께 비만 치료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이 약물들의 성공에 힘입어 시가 총액으로 세계 최대의 제약사들이 되었다.

나는 천연물 화학을 연구하는 연구실에서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로 20여년 간 신약 발굴 분야에서 일해왔으니 ‘녹차’로 대표되는 천연물과 ‘오젬픽’으로 대표되는 약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먼저 말해야 할 것은, 나는 녹차를 꾸준히 마시는 것이 체중 감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이걸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기는 하지만.

식품으로 사용되는 천연물들은 사실 정부 규제 기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섭취해 온 것을 막을 이유나 근거가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식품에 대한 임상적인 데이터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고, 대부분의 경우 음식을 섭취하는 것 자체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식품은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고 건강에 명백한 위해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면 금지되지 않는다. 물론 건강에 명백한 위해를 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금지되지 않는 술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약은 경우가 완전히 다른데, 그것은 식품과 약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이다. 약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건강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치료 효과를 갖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분명한 치료 효과라는 것은, 시간 측면에서는 섭취 후 즉각적인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효과 측면에서는 병의 증상이 눈에 띄게 호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시간 내에 큰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당연히 더 높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신약들은 대부분 명확한 작용 기전을 가지고 있고 실험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결과와 동물 실험 결과, 그리고 사람에게 보이는 임상 효과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을 요구한다. 연관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도록 최선의 과학적 방법을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가능한 한 잘 통제된 상황에서 명백한 통계적 유의성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과학적 방법이 그렇듯이, 이미 입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반박하는 새로운 데이터가 나올 때 그 데이터를 통해 결론이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런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을 제도화해 놓았다.

어떤 식품이 약으로 사용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눈에 띄는 효과가 약에 비해 낮으면서 더 안전한 것은, 생리 활성을 나타나는 물질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양한 물질들이 나타내는 효과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효과를 가진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 반드시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녹차를 오젬픽이 거쳤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했을 때 체중 감소 효과를 가진 약으로 허가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녹차가 체중 감소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약물 대신에 밀가루를 받은 플라시보 그룹에서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니,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식품을 홍보하면서, 여기에 들어있는 어떤 성분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의미있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라스베라트롤은 포도과 식물의 껍질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으로서, 항산화 효과를 포함한 다양한 생리 활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와인을 적당량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할 때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 물질을 가지고 실험을 하면 아마도 다양한 생리활성을 확인할 수 있을테지만, 문제는 다양한 생리활성을 갖는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너무 복잡하면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러면 과학적 검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물질의 생체 이용률이 낮다거나 함유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거나, 혹은 함께 섭취하는 다른 성분에 따라서 모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물질을 사용해서 큰 규모의 신약 개발을 하는 회사가 없다는 사실은, 최소한 현재의 의약품 관련 패러다임에서는 이 물질의 효과가 증명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식품이 약과 비교될 수 있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 명백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식품이 그런 효과를 갖고 있지 않다고 명백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신약 발굴은 ‘명백한’ 결과를 규제 기관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일이므로 그 관점에서 명백하지 않은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XX를 먹었더니 XXX가 좋아졌어”라는 경험담은 엄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평가하기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평가한다면 그 원인과 결과에 명백한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건강기능성 식품의 허가가 쉽지 않은 것이다.

“녹차는 자연의 오젬픽이다”라는 말은 틀린, 또는 최소한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명제이다. “녹차는 자연의 위고비다”가 좀더 나은 버전일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틀린 또는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은 명제임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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