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감상기

 

오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봤다. 설 연휴 기간같은 특별한 때에만 주어지는 영화 감상의 자유를 누린 것이다.

문소리가 공항에서 돌아서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결말을 알고 스토리도 어느 정도는 상투적인 면이 있었지만,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다운 법이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금메달을 차지한 덴마크 선수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덴마크에는 1000개가 넘는 여자 핸드볼 팀이 있다고 한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되는 나라에서 1000개가 넘는 팀이 있다는건 (유럽인들의 생활에 스포츠가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인기가 많은 스포츠라는 뜻일게다. 그렇게 많은 팀 중에서 선발된 선수들이라면 그야말로 많은 경험과 실력을 고루 갖춘 사람들일거고. 또 그 선수들의 상황을 잘은 모르지만, 평생 죽어라 하고 핸드볼만 해 온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핸드볼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핸드볼은 그야말로 삶의 일부분일 뿐인 그런 선수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들이 <우생순>을 보며 동감할 수 있을까? 자신의 평생을 한 운동에 바쳐야 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 속에 맺혀 있는 한을 운동을 통해 푸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마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섬찟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죽어라 뛰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땀방울에는 눈물이 섞여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서도 선수들이 뛸 팀이 없다는 걱정을 인터뷰에서 해야 하는 감독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열심히 한다. 그건 좋은데, 열심히 하는 이유가 가끔은 참 스스로 안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성공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렇게 일해왔고, 그 속에서 자신을 희생해 온 것이다. 그리고 IMF 사태를 겪으면서, 그런 경쟁에서 뒤쳐지면 그야말로 냉혹하게 버려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아 온 것이다. 그래서 남들에게 뒤질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며 유럽의 선진국들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그들을 배워야 한다고. 그렇지만, 정신력을 강조하는 우리의 지도자들은 앞을 보기보다는 뒤를 보고싶어한다. 중국애들은 밤을 새워가면서 휴일도 없이 일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이 논다고들 한다. 여름 휴가를 한달씩 노는 유럽애들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놀 수 있는 이유가 뭐고, 중국애들이 밤을 새워 일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른다. 우리가 지난 시절에 그렇게 죽어라 하고 개인을 희생해 가면서 일을 해야 했던 이유를 성찰해 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어쨌건간에 과학적으로 한답시고, 혹은 인권을 존중해 간답시고, 혹은 원칙을 지킨답시고, 과거의 그런 무대뽀식 결전의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생순>에서 엄태웅은 틀렸다. 선수가 창의적으로 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식 훈련을 도입하니 뭐니 해 봐야 그건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정신력이며 체력만 강조하면서 선수들을 혹사하고 스스로를 무리하게 채찍질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성찰과 분석 없이 남의 것을 베껴오는 것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에 필요한 것은 차분한 성찰과 분석일 것이다. 차근차근히 생각하고 따져가면서 스스로의 상태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해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많은 성찰들이 있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위기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보다는 영어 하나만은 잘 해보자 따위의 카피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한국 사회의 현실이 이렇게 지속되는 한, 우리의 아줌마들이 삶에서 겪는 온갖 한을 핸드볼을 통해 풀어내고 그 속으로 도피해 들어갔듯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이 되지 않으면 죽을거라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무한하게 경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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