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올해들어 여덟번째로 읽은 책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http://openyourbook.net/isbn/8936506390 이었다. "예수의 생애":http://www.hanjo.pe.kr/wiki.php/%BF%B9%BC%F6%C0%C7%BB%FD%BE%D6 라는 그의 책이 내게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었기 때문에 엔도 슈사쿠의 소설은 내가 꼭 읽어보고 싶은 것이었다. 벌써부터 읽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는데, 진도가 잘 안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마음먹고 다 읽어보기로 했다. 집중을 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책 속에 빠져들어가서, 결국은 바로 옆에서 도람이가 칭얼대는 것도 마다하고 끝까지 읽어버렸다. 2002년이었던가... 욥기를 읽으면서 생긴 의문을 풀기위한 노력을 많이 했던 적이 있었다. 많은 책을 읽었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었다. 결국 욥기에서 갖게 되는 질문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왜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침묵하시는가 라는 것이었고, 내 나름대로 얻었던 해결책은 인과율에 얽매인 하나님은 인간에게 더욱 재앙일 뿐이다 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정의로운 분이라면, 아니 정의롭기만 한 분이라면 죄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정의로움 못지않게 자신을 내던지는 사랑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라는 땅에서 결국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로드리고 신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런 실존적 물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너무나 극한 고통과 부조리 앞에서 '당신은 왜 침묵하십니까?' 라고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너의 아픔을 나누고 있다 라고 말하는 바보같은 신. 성화를 밟지 않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신도들과, 나를 밟으라 고 이야기하는 바보같은 신. 너무나 바보같아서 믿을 수 없는 신. 그런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에 미칠 수 밖에 없다. 일본인에게 하나님의 개념 이 없다는 말이 한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귤을 심었는데 탱자가 되어버리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 모두 진짜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세계에서 창조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나 생각을 접하게 되면 네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믿는 하나님과는 다를거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말을 해도 만족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신앙의 문제들이다. 어쩌면 압도적인 하나님의 모습 앞에 할 말을 잃어버린 욥처럼 그렇게 입을 닫고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