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독서법
최악의 독서법?
'유시민이 말하는 최악의 독서법'이라는 제목을 가진 유튜브 쇼츠 영상이 있다. 짧은 영상이니 보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겠지만, 더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내 생각에 일치하면 느낌표 붙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개소리'라고 적는 (스탈린의) 독서법이 최악의 독서법이다
독서는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많은 것을 주고받지만, 독서만큼 이 교환이 밀도있게 일어나는 행위는 많지 않다. 그리고 독서에 있어서 나를 변화시키는 생각에 대한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한 독서는 최악의 독서법일 수 밖에 없다.
기독교인의 성경 읽기
놀랍게도, 이런 독서법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내가 아는) 직업군 중의 하나가 목사이다. 성경을 읽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토대가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는 경우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해놓고 그 메시지를 강화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을 찾는 방식으로 구성된 설교를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다. 성경 본문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설교하는 강해설교가 아닌 이상,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설교들은 이렇게 짜여질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최근에 <집밥 바이블>의 저자인 송봉운님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고 어렵게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다. 바로 베드로전서 3장 19~20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본문은 다음과 같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이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고 기리는 추석 전통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자세 때문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고 추모하는 것이 전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이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복음을 선포해 주신다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신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말일 수 있지만, 그 신학에서 무슨 말을 하던지 간에, 예수님이 노아의 때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죽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다는 베드로의 말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체계적인 책이 아니고, 신학이 아무리 훌륭해도 누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체계를 만들 수는 없다. 기독교 안에 수많은 종파들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고, 내가 무슨 믿음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 겸손하고 포용적이 되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어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더 낫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성경 속에 있는 그럴듯한 구절을 찾아 헤매는 것을 성경 묵상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내 신앙의 한계, 내 이해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마음을 열어 놓는 사람만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델타를 지향하는 독서
무슨 책을 읽던지간에, 그 독서가 끝나면 나는 달라져 있어야 한다. 三人行必有我師焉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테니 이 달라진 만큼을 𝛿 (delta)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이 𝛿를 쌓아서, 너무나 정직하게도 그걸 적분한 만큼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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