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버스

올해 열 세번째로 읽은 책은 에너지 버스라는 책이다. 내 오픈유어북 사이트에는 신나고 공허한 책이라는 메모를 붙여놓고 별 세 개를 줬다. 사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책을 신나게 읽었다. 분명 이 책에는 사람의 흥미를 끄는, 그리고 몰입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에너지로 충만해지기를 원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이 책의 주인공인 조지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삶을 멋지게 반전시키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은 어려운 것이니까. 에너지로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은 뭘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전적으로 틀렸다. 열 개의 경구 정도로 피곤하고 지친 삶이 에너지로 가득찬 삶으로 변화될거라고 생각한다면, 삶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삶에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고갈시키는데 전문인 에너지 뱀파이어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긍정 에너지의 근본이 사랑에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근데 뭐가 문제인가? 첫 번째 룰이 틀렸다.
당신 버스의 운전사는 당신 자신이다.
이 룰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한 나머지 아홉개의 룰이 지켜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하는 (지극히 뉴에이지적인) 이 생각이 나머지 아홉개의 룰을 무색하게 만드는 생각이다. 정말 내 삶의 운전사는 내 자신일까? 내 삶이 내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 내 삶 중에 내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을 따져본다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내 주변 환경에 의해, 그리고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 내가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을 때 조차도 그러하며, 그런 순간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오랜 시간 지속되지는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라고 되뇌이는 것만으로는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을 집어넣을 수 없다. 책에 나오는 붓다의 이야기처럼 우리 마음 속은 항상 두 개의 세력이 싸우고 있다. 심지어는 사도 바울조차도 항상 마음 속에 선과 악이 싸우고 있음을 고백했다. 성경은 사람이 모두 죄인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의지만으로 마음 속의 선과 악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내가 싸우고 내가 승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이 그 싸움에서 결국은 패배하고 만다. 책의 표지에 이런 말이 있다.
그 버스에 올라탄 순간, 내 인생에 기적이 시작되었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는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변화라면 그건 절대 기적이 아니다. 기적은 내 결심과 노력으로 절대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다. 기적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사람을 완전히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말도 안되는 승리를 거두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기드온이 300명의 군대를 가지고 수만의 미디안 군대를 이긴 것, 어린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죽인 것, 비참한 상황에 있던 12명의 무지한 사람들이 로마를 뒤흔든 것, 이런 것이 바로 기적이다. 죄악의 굴레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거룩한 절대자의 존재 속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순간, 가장 완전한 내 삶으로 주어지는 역설이 바로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음, 긍정 에너지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우리의 삶을 바꿔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차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에너지는 우리가 뭔가를 해서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도 없는, 아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바벨탑을 쌓는 것이 위대한 일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세상에 있는 어떤 탑보다도 높이 쌓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하늘에 닿을 수 없다는 면에서는 작은 개미집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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