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올해 다섯번째로 읽은 책은 전병욱 목사님의 자신감이라는 책이다. 사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Humble Little Ruby Book을 먼저 읽기 시작했지만, 마치기는 "자신감"이 먼저였다. 사실, 이 책은 내가 그다지 읽고 싶어했던 책은 아니었다. 나의 1년에 50권 책읽기를 후원하는 아내가 특별히 구입해 준 책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다. 전병욱 목사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 분의 설교와 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들은 적이 있었고, 그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는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 자체가 큰 글씨와 적은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비판적인 견해라는 것은 내가 직접 그 분의 책을 읽고 그 분의 설교를 듣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고, 책이 글씨도 크고 페이지 수도 적다는 점은 도리어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도 1호선 동묘역에서 개봉역에 이르는 45분여 동안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신앙 서적과 관련해서만큼은 내가 좀 비판적이 되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사실, 신앙 서적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들 중에 상당히 많은 책들이 별다른 고민이나 성찰이 없는 기복신앙을 담고 있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어떤 책들은 양이나 외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언젠가 복음과 상황 이라는 월간지에서 자끄 엘룰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 복음과 세상에 관한 두 가지 극단적 견해에 대한 비판에 크게 공감을 했다. 복음과 세상이 상관 없다는 이원주의적 생각이 한 쪽 극단이라면, 세상을 정복하라고 가르치는 이른바 고지정복론이 반대편 극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끄 엘룰은 이원주의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역을 제한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고지정복론은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의 권세를 과소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 외에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런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전병욱 목사님의 자신감은 이런 고민의 흔적이 많이 나타나 있다는 면에서 꽤 성찰해볼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부 부분에서 나타나는 성급한, 아니 최소한 매우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판단되는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잡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제목이 책의 전체 내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주제 의식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와닿지 않았다. 설교집으로서, 혹은 저자의 생각을 나타내는 수필집으로서 편안하고 재미있는,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여러번 읽으면서 생각을 반추해야 하는 명저까지는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 쯤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좀더 깊은 생각과 사유로 이끄는 힘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듯 하다. 처음부터 그걸 기대하지 않는다면 뭐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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