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증명 - 도서관 연체료 관련 글을 읽고 나서

도서관 연체료를 없앴더니 나타난 놀라운 변화 - 슬로우뉴스라는 글을 읽었다. 정말 좋은 글이다. 글의 내용에 대해서 더 하고 싶은 말은 없고, 그냥 이 페이지에 가서 글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나는 슬로우뉴스 매체 자체를 매우 좋아한다.)

내가 중요하게 본 부분은, 빌려간 책을 연체하는 사람에게 금전적인 페널티를 주는 것이 연체라는 행동을 개선할 것이라는 믿음이 100년 넘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증명된 적이 없는 믿음이다. 증명된 적이 없는 이유는, 그 증명에 필요한 비용이 증명의 효과보다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의 연체료와 반납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제대로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릴레이가 한 피사의 사탑 실험의 경우는 비용이 크게 드는 실험이 아니었다. 무거운 물건이 가벼운 물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믿음을 반증하는데 큰 비용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걸 증명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미 그런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퍼져나가지 않아서 대중의 생각을 바꾸는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증명된 사실만을 믿겠다는 자세는 과학의 기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이 모르는 선언을 보면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명확하게 입증되기 전까지는 의심을 하는 것이 건전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가장 훌륭한 법칙 중의 하나인 아서 클라크의 과학의 3 법칙 중 1번, 즉

When a distinguished but elderly scientist states that something is possible, he is almost certainly right. When he states that something is impossible, he is very probably wrong.

이 법칙은 미지의 것에 대해 과학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다 증명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세상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는 모든 분야에 정통한 레노나르도 다빈치적인 지식인이 많았지만, 현대에는 아무리 대단한 과학자라고 해도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일반인이 되어버린다. 나도 유기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내가 깊이 아는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면 화학이라는 학문에 있어서조차 그걸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나은 점은 용어를 좀더 잘 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 100가지 있다면, 그 중에서 스스로 증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한두가지에 불과할 것 같다. 박학다식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십수개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증명해서 아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가 중요하지, 실제로 증명한 사실의 비율이 얼마나 높으냐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의심하고 회의하는 태도가 중요하지만, 얼마나 그렇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중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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