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통령 후보 토론을 보고

미국 대선이 아주 가까워졌고, 나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이번 미국 대선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 지난번에 있었던 해리스와 트럼프의 대선 토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봤고, 이번에 있었던 부통령 후보들인 팀 월즈와 JD 밴스의 토론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을 했다. (전체 유튜브 링크: CBS News VP debate between JD Vance and Tim Walz)

전반적인 느낌은 생각보다 두 사람 간에 일치하거나 멀지 않아보이는 지점들이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닌가보다 하는 약간의 기대를 갖게 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예상과는 달라서 이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았을 수 있다.

60세의 주지사와 40세의 상원의원이라는 두 사람의 배경을 감안하면, 팀 월즈가 미네소타 주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디테일에 강하고 어떤 주제에 대한 배경과 맥락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JD 밴스가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유연하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꽤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의 역할 분담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감안해 보면, 부통령 후보로서 트럼프의 강하고 고집스러운 면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런 측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사람들에게 재평가의 필요를 느끼게 해 주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팀 월즈는 아마도 트럼프의 이미지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JD 밴스와의 토론을 준비했을 것 같고, 그런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지 않자 계획한 방식이 아닌 ‘원래 자신이 잘 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한 것 같다. Weird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모습이 재현되지는 않았다. 한방이 없었던 것은 맞지만, 대통령 유고시에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부통령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월즈가 JD 밴스에 비해 낫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TV 토론이 중요한 것은, 인물과 그들의 의견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는 정치 저관여층이나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택의 계기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입견을 강화하는 것은 선거 결과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볼 때, 종합적으로는 JD 밴스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거둔 반면 팀 월즈는 이런 면에서 점수를 따지 못한 것 같다.

내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JD 밴스가 ‘토론 진행자가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은 미리 합의된 룰을 어기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팀 월즈는 ‘내 말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해도 좋다’는 취지의 말을 몇 번 했던 것이다. 이 부분은 양당의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트럼프가 (폭스뉴스를 제외한) 기존 미디어와 언론을 불신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 장면이다. 밴스가 낙태 관련된 토론에서 미네소타의 법을 비난한 부분은 이런 태도의 차이가 불러올 수 있는 두 사람의 위치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의견이 명확하게 갈린 부분 중 하나이고 월즈가 사인한 법이니만큼, 월즈의 말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월즈에게 큰 부담이 되겠지만, 월즈가 맞다고 해도 밴스에게는 그저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이걸 확인하는 것은 내 의무이다’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에게는 큰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내게는 큰 해가 되지 않는 당장 확인하기 어려운 폭탄을 얼마나 던질 수 있는가가 토론의 주요 기술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토론회 쟁점들의 사실 확인 내용은 Fact checking VP debate claims from Walz and Vance's 2024 showdown - CBS News에서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는 밴스의 주장에 거짓이 많다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사실 트럼프 캠프에게는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이라는 지점이 가장 방어하기 어려운 지점일 것이고, 밴스 역시 공화당이 2020년 대선에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치에서도 대선 불복이라는 것은 매우 큰 이슈이지만, 최소한 1987년 이후 지금까지는 부정선거와 같은 이유로 대선 불복을 선언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했고 있다 하더라도 그걸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예외없이 정치적 생명을 잃어왔다. 그런 면에서 미국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심지어는 사람이 죽는 폭력 사태가 일어났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인데, 그런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점은 더욱 놀랍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은 트럼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고, 최소한 트럼프 자신에게는 이게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정치적 후계자들에게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에너지를 등에 업으려면 정치권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이런 태도는 결국 정치의 실종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정치권이 겪고 있는 정치의 실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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