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어릴 적, 링컨을 존경했던 것 같다. 그래봐야 낡은 통나무집에서 성경을 읽으며 혼자의 힘으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고 결국 대통령까지 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시킨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에서 필요한 내용은 다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업적을 이룬 것이니 말이다. [genie 8952200861] 그 러나, 이 책에 나오는 링컨의 모습은 그런 도식화와 일반화가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사람이란 역사나 상황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부대끼면서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인 상황과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링컨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이 탈역사화된 모습만을 봐서는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나름대로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링컨의 삶을 기술했다고 한다. 이런 집필 태도가 최소한 <위인전>의 수준은 벗어난 평전을 읽는다는 느낌을 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책을 쓴 이와 번역한 이의 태도가 이렇게 달라서는 혼란스러움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의 번역자가 앞머리에 써 놓은 글을 읽어보면 이 책을 번역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링컨은 분명한 선이었고 남부 연맹은 분명한 악이었다"이 말은 곧바로 "남한은 선이고 북한은 악이다"라는 말로 연결되고, 그래서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처럼, 중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역이 지나칠 정도로 엉망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나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링컨의 삶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 "링컨은 보수 중의 보수였다"라고 말하는 그 용기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어 쨌든 역사와 유리되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면, 어떤 면으로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번역자의 생각의 간극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책이 번역되어 출판된 날짜가 2003년 1월이다. 지금 2008년 2월에 내가 느끼는 절망감을 번역자가 이 때 느끼고 있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