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도구에 대해 - 주로 이메일 이야기

들어가는 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좋은 도구들이 사용 가능해진다. 컴퓨터로 일을 하는 지금 시대에, 좋은 생산성 도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런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에버노트가 처음 나왔을 때가 아마 2000년대 후반일텐데, 그 때는 이 프로그램이 최고의 혁신 중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이)는 구시대의 도구처럼 치부되고 있다. 나는 지금 옵시디언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다보면 '이전에 에버노트를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메일

이메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제대로된 (나우누리나 천리안 시스템 계정이 아닌) 이메일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7년에 대학원에 들어가고 학과 서버에서 운영하는 이메일 주소를 받았을 때인데, 그 때는 이메일을 elm 프로그램으로 확인했었고, 그걸 제대로 써보기 위해서 vi 에디터 사용법을 배웠다. elm은 마지막 버전이 2014년에 나왔고 vi의 경우에는 vim 같은 변종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기는 하지만, 괴짜 프로그래머가 아닌 다음에야 굳이 이걸 매일 쓰고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에 hey.com에서 이메일 계정을 만들고 일년에 $99의 돈을 내고 사용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은 HEY 유료 사용자들만 사용이 가능한 World라는 플랫폼에도 공개되어 있다. 지메일이나 네이버 메일을 쓰는 것이 너무 당연한 상황에서 굳이 돈을 내고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수 있다. 아무리 많은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유료와 무료의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메일이 지금은 매우 구닥다리 도구인 것 같지만, 결코 그 사용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업무의 형태와 도구들이 많이 변해가고 있지만 항상 그 중심에는 이메일이 있다. 그래서 이메일의 사용 경험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개인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네이버나 지메일 같은 이메일 서비스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굉장히 놀라운 점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많은 스팸 메일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메일은 보내는 사람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서, 읽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적은 양의 꼭 필요한 정보를 읽어볼 수 있게 된다는 점 역시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다.

Hey는 여러 무료 이메일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메일 시스템이다. 스팸으로부터 본질적으로 안전한 이유는 내가 누구로부터 이메일을 받을지를 받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이다. 그리고 Imbox, The Feed, Paper Trail 등 달랑 세 개의 편지함만을 제공하고 모든 이메일을 이 셋 중의 하나에 분류해서 받게 된다. 쉽게 생각하면 편지함, 광고전단함, 영수증함이라고 보면 되고, 이메일이 갖는 기능을 생각해 볼 때, 굳이 더 많은 분류는 필요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성이다.

나가는 말

좋은 생산성 도구를 갖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이상적으로는 가장 좋은 시스템을 쓰면 되는건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최신의 좋은 도구와 오래된 불편한 도구, 그리고 쓰지 않을 수 없는 고만고만한 도구를 모두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싹 다 갈아 엎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지 않을 언젠가를 상상하며 편리함과 불편함 그 사이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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