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2024년 11월에 리디셀렉트에서 읽은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펜타곤 출입기자가 파헤친 미국의 본심이다.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서 도널드 트럼프가 2025년 2월에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는 시점에서 좀더 의미가 있는 내용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한반도 천동설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모든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는 천동설처럼 모든 사안을 한반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르는 단어로 만들어서 사용한 듯 싶다. 한국인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 시각에 갖혀 있으면 세상의 다른 나라들이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염려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거대 세력 간의 냉전이 끝나고 미국이 하나뿐인 슈퍼 파워로 남게된지도 30여년이 지났다. 이제 미국은 하나의 적을 상대하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 여러 잠재적인 적들을 신경써야 하는 좀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MAGA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말고 자국의 이익에 집중해 줄 것을 요구하는 환경이 명확해졌다.
대한민국에게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이 가장 큰 위협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코밑에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스스로의 생존을 유지하고 담보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는 북한과의 관계보다는 중국의 견제라는 측면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를 볼 때 미국의 우방으로서 상당한 역할을 요구해야 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이 책이 중심 생각이다.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이 중국과 러시아라고 할 때, 대한민국이 중국-대만 관계에 대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고, 한반도 정책은 이런 큰 그림의 하위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이 담겨 있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피를 흘려가며 지켜준 우방국이 미국의 가장 큰 적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질적인 배신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미국이 모든 어려운 일을 맡아서 하는 대신 여러 우방국들에게 기여를 요청하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지난번에 읽은 한국인의 탄생에서 한국의 환경은 여러 중국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라고 정리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대에서 조선에 이르는 시간을 중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한 생존의 역사라고 보면,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는 여기에 서구 열강과 러시아를 더한 다양한 위협에 대항해야 했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세력 간의 균형 속에서 자주성을 찾으려고 했던 몇몇 노력들은 거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좌절했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중국 또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의존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변화된 세계 정세, 특히 미국의 정치적 변화는 우리나라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도전을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미국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이라 말할 수 있다. 발전하는 경제와 문화에 발맞추어 이런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긴 안목의 투자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대한민국의 현 상황이 이런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을만큼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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